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김채현

이제 며칠이면 만 두살이 되는 내 딸이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 방안을 쓰레기장 처럼 만들거나, 배고프면 한참 짜증내다가,배불러지면 세상 걱정 근심 싹 잊어버리는 아이.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으며, 가끔 오줌 싸놓고, '떵..떵' 이러면서 갈아달라고 떼쓴다.
(아니, 인생의 진리가 떵떵거리면서 산다는 것을 어찌 이렇게 빨리 깨우쳤을까)

가끔 내가 피곤해서 잠깐 누워서 병든 닭처럼 이 세계와 저 서계를 왔다 갔다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달려와서 '아빠..아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나를 깨운다.
물론 용건이라곤 없다.

그냥 소리질러서 깨우고 다시 자기 할일 하러 간다.
돌아버린다.


채현이가 다닌 곳에는 각종 크레용 자국과, 수많은 밥풀과 그가 억센 두순으로 으깨버린 과자부스러기며 먹다 흘린 유유가 허옇게 마루바닥에 떠서 눌어붙어있다.
그걸 가만히 살펴보면 채현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시간순대로 자세히 알수가 있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늦잠 좀 자려니까, 그 높은 곳에 두었던 내 안경을 어떻게 집었는지  들고 와서 졸린 내 눈 앞에서 얼쩡거린다.
헉!!!
나는 순식간에 군대에서 기상하듯 잠이 확 깨며, 안경이 부숴지지 않도록 조심히 빼앗는다.
어차피 채현이도 순수한(?) 마음에 들고 왔을테지만,
단 한벌의 안경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긴 안경을 찾은 후 고질라처럼 발로 짓밟지 않고 곱게 들고 온것만 해도 어디야.


 


 


2. 채현이의 특기는 밖에 나가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나가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가끔 외출을 하면 나와 심각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를테면 집 근처의 공원가는길에 '개미'를 보고, 웅크린후 한마디 한다.
 
   "아리....다아..." (아리는 일본어로 개미라는 뜻임)
    아마 보육원에서 매일 듣는게 일본어이고, 또 보육원 앞마당에 흙이 있으니, 거기서 개미를 자주 보았던 셈이다.


    "채현아, 저건 아리가 아냐, 개미라고 해...개미!!!!, 한번 해봐 개애미!!"


    일단 여기서 한국어가 밀리면 안된다고 나는 늘 생각하므로, 채현이가 일본어를 배워오면 나는 무조건 한국어로 대칭되는 단어를 말해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채현이는 아직 먹는거, 자는거 싸는거 정도 단어이상 이해를 못한다 ㅜ.ㅜ



    "자...개미"


    "아리...다아..."


    "아니..저건 개미라니까, 아리가 아니고, 개애미!!"


    "아리...다아..."


    "채현아 그건 일본어야. 개미 해봐 개애미"


    (물론 채현이가 이 긴 문장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ㅜ.ㅜ)


    "아리..다아"


    "개미라니까 개미"


    "아리"
    "개미"
    "아리"
    "개미"
    "아리"
     .
     .
     .
     .
     .
    ^^!


   "음...채현아 우리 그냥 가자! ㅜ.ㅜ"  


   결국 우리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나의 항복으로 끝난다. 그래 아리다. 아리. ㅜ.ㅜ


 


3. 그러니까 정확히 2년전


   채현이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을때,
   나는 아직 학생신분이었으므로, 생활의 여유가 거의 없었다.


   나는 '입원조산제도'신청을 위해서 2시간 거리의 새로운 구로 이사를 해야했으며
   (입원조산제도란, 국민건강보험제도에 가입하면, 비과세세대에게 국가에서 출산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것),
   매일 그 복잡한 서류를 준비하러 뛰어나니고 있었고, 처가 만삭이 되었던 7월말 이사를 했다.그때는 또 얼마나 더웠는지...그리고 그 허름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야타 병원'
  역시 세상에 공짜란게 다 그렇지만,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단독병실을 배정받았는데, 출산후 2인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도 가장 낡은 병실이었다.


 나는 그때, 제3세계에서 망명 온 난민처럼 그 병원 한 구석에 터를 잡고 아내와 함께 새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주위에 아이의 탄생을 축복해주려고 대기하던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친했던 친구들도.......모두 동해바다 저편에 있었다.


 


 오로지 둘이서, 그 시간을 견디어 내야했다.
 (물론 아이가 태어난후 몇몇 친한 사람은 찾아왔으나, 원체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이다 보니)
 오히려, 처는 나보다 더  당당하게 병실에서 생활을 했고,
 때마침 내가 여름 휴가여서, 아이 젓병에 분유를 담거나, 매일 끓여놓은 미역국을 자전거에 실어서 날랐다.
 옆 침대에는 중국인 부부가 둥지를 틀었는데, 아이가 밤새 울어대서, 진짜 난민 수용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는 선배가 일본에 왔다.
 정말 몇년만에 만나게 되는 선배여서 약속을 하고 말았는데, 아무도 곁에 없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처가 그날, 내가 병실을 나설때 울고 말았다.
 그 날 결국 나는 선배에게 연락도 못한채 바람 맞게 했다.
 낡은 에어콘은 굉음으로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고 중국인 부부와 우리 부부만 있던 고요한 병실.
 언젠가 처제가 아이를 낳았을 때 한국의 산부인과를 가보니 너무나 화사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리고 온돌방이라니...........현기증이 날 뻔 했다.


 그리고 며칠후 어머니가 오셨다.


  그렇게 태어난 채현이는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만 주었고, 요즘에는 건강하다 못해 아예 잠자는 나를 밟고 다닌다. ㅜ.ㅜ


 


 


4.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요즘 아이의 언어다.


   하루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육원'에서 보내는 아이가 듣는 언어란 일본어이다.
   우리와 고작 보내는 시간이란, 아침 한 2시간과 저녁 한 3시간 정도다. 그것도 반 정도는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고, 나머지는 먹고 자고 씻고 싸는데 시간 다 간다.
 의식주와 관련된 단어 말고는 모조리 채현이는 일본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왕성하게 말을 하는데, 억양은 일본어 억양인데 아직 언어의 형태가 되지 않은 유아어가 시끄럽게, 그리고 끊임없이 나올때면 머리가 약간 아파온다.


  내가 잠 퍼자고 있으면 와서 '아빠 아빠...오끼..오끼!!' (일어나....오키루 라는 동사)
 오줌 싸고 싶으면 '오 싯꼬, 싯꼬....' 그러다 가끔 '어줌,어줌...아 떵..떵' 양국어가  마구 섞여 나온다. 
 무슨 물건을 나한테 건내줄때는 '도져, 도져.....'(어서..어서...도우조) 이런다.
 그럼 나는 채현아 "여기 있어요..여기...해봐" 하며 필사적으로 저항을 해보지만
 말길을 못알아듣는 채현이는 개무시!!!! 그리고 바쁘게 동화책 찾으러 간다.


 가끔 한국말도 하긴 한다..ㅎㅎㅎ
 "뿌뿌...뿌뿌..."(얼렁 뿡뿡이 틀어줘)
 "쪼쪼..쪼쪼..." (쪽쪽이..공갈젖꼭지 찾아내놔)
 꼭 자기가 어딘가 던져놓고 우리보고 찾아내라고 한다.



 가끔 이곳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을 보면,
 거의 자기네 끼리는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볼때마다 이 아이들이 한국아이인지, 일본아이인지 헤깔린다.
 물론 그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전혀 아니다. 아이들은 그게 편한것이고 당연한 거니까. 게중에는 그래도 한국어를 잘 하는 아이도 많다.


 그럴때면 나는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한 민족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5. '사랑'과 '코이'는 같은 뜻의 한국어와 일본어이지만,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내가 겪었던 20대의 설레임과 배신감, 그리고 유치함이 모조리 들어가 있지만, 코이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이다.


   '인생'과 '진세이'에도 한자도 같고, 발음만 틀리거늘, 인생이라는 단어에는 수없이 들었던 무수한 사람들의 사연과 애절한 고민들이 녹아있고, 또 앞으로 챙겨나가야할 방향이 들어있으나, 진세이는 그냥 인생이라는 느낌 뿐이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본 MTV를 시끄럽게 틀어놓기 때문에, 나는 매일 지겹도록 일본노래를 듣는데, 정작 나는 수없이 많은 노래를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추억 하지 못한다. 문화는 키워가는 것이고, 노래는 추억을 담듯이...


  물론 이 시절이 지나면, 일본노래는 나의 현재 겪고 있는 이 시절을 증언해줄 테지만, 나의 '미드나잇 블루'속에 담겨있는 가사 자체는 나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하지만,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의 가사는 20대의 내 설레임이 고스란히 언어라는 징검돌을 건너와 내 눈 앞에 묻어난다.


 그런 것이다.


 언어란 단지 소통의 도구일 뿐 아니라 추억과 함께 삶의 구비구비 우리와 함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 아이와 전투하듯
 똑같은 이야기를 알아듣는 말든 한국어로 떠들고
 아이가 일본어로 떠들면 끊임없이 고쳐주려하며,
 (어차피 일본어는 생활속의 이미지와 함께 알고 있을테니까)
 한국동요를 틀고 광대처럼 미친듯이 같이 춤추며 노래하다,
 동화책을 들고오면 오만가지 액션을 취해가며 수다를 떤다.


 아이는 알까,


 이 세계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부모가 아이에게 전해줄 첫번째 선물은 그래서 언어이다.
 나는 그렇게 아이와 언어로 눈빛을 맞추고 아이의 머릿속 세계를 들여다 본다.


 부모의 인생이 담긴 언어와 아이가 매일 생활하는 세계가 담긴 언어는 그렇게 매일 밤 만나서 부딪히고 떠들며 채현이속으로 들어간다.


 



6. 그런데 정작, 답답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보육원 사람들이다.


   보육원에서 가끔 채현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뜻을 물어온다.


   당연하지.


   우리는 아이가 하는 일본어를 알지만, 그들은 아이가 그나마 떠드는 한국어를 모르므로.


 


   언어를 둘러싼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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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5.06.2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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