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어제 아침, 딸이 일어나자마자 급실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편지 안 읽었나봐!. 선물도 없어!"

아이는 6살때부터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받아왔다.

첫해에는 햄스터를 갖고 싶어했으나, 우리가 산타할아버지가 편지를 줬다고 해서 지금 기르고 있는 토끼를 사가지고 왔고, 작년에는 씽씽카라고 해서 한 발로 탈 수 있는 킥보드를 사줬다.

아빠, 산타할아버지도 한국말 할 줄 알아?(6살때)

그러던 것이 올해는 동물 도감을 갖고 싶다는 편지를 직접 써두었다. 물론 딸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자전거! 유치원때부터 타던 자전거는 너무 작아서 더 이상 못타게 된 상황이라, 중고생이 되어도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사달라고 늘 졸라왔던 터.

그래서 아내와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기로 마음을 먹었고 미리 이곳저곳 가게도 돌아다니긴 했는데, 이것저것 바빴던 관계로 자전거를 사 둘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24일 밤 간단한 케이크를 사고 나서 셋 다 피곤한 나머지 자버리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밤 12시라도 일어나서 대책을 강구했을 텐데, 깨어나보니 실망한 딸의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딸아이는 왜 산타할아버지가 편지를 가져가지 않았을까 생각한 나머지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엄마,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씽씽카! 엄마아빠가 사 준 거 아니지?"

제 나름 논리적으로 추론해낸 결과다. 작년에는 선물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엄마아빠가 바빴기 때문에 못사왔다면 자기가 어제 만들어 놓은 카드도 못봤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린 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당황했지만, 오후가 되면 만날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선물을 서로 받았다며 자랑할 게 분명해, 오전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딸은 자기만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더욱 의기소침해질 것이 뻔했다.

우리는 일단 비상조치에 들어갔다. 물론 딸에게도 함정이 있었다. 먼저 산타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두었지만, 양말에 담아서 걸어두지 않은 것이다. 나는 딸에게 그 점을 강조했다.

"너, 양말에 그 카드를 안 넣어둬서 아마도 산타할아버지가 발견을 못 한 것 같다! 다시 넣어둬봐. 혹시 아니 다시 돌아와서 선물을 줄 지?"

딸은 그런가...?하며, 큰 양말에 편지를 넣고서는 베란다쪽 창문에 크게 걸어두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오전에 내가 아이와 놀면서 시간을 버는 사이에 아내가 시장을 보러간다는 핑계로 주니어용 자전거를 사러 간다. 그리고 아내가 자전거를 사가지고 돌아올 즈음, 나는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할머니에게 보낼 연하장을 사러 가자고 딸을 데리고 나간다. 그 사이에 아내는 자전거를 집 베란다에 놔두고 다시 태연하게 밖에 시장보러 다녀온 것처럼 하고 셋이서 합류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나리오였다.

아내와 나는 수시로 문자로 연락을 하면서, 딸아이와 카드를 고르면서 시간을 벌어야했다. 아무튼, 다행히도 순조롭게 아내는 자전거를 사가지고 왔고 베란다에 잘 두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서야 나는 딸과 함께 할아버지,할머니에게 보낼 연하장을 산 다음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집 밖에서 셋이 만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채현아, 혹시 우리 셋이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산타할아버지가 집에 다녀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이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며 "말도 안돼. 무슨 대낮에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
라며 부정했지만,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순 없었다.

집에 달려들어간 아이는 이내,"앗, 양말 속의 편지가 없어졌어? 어떻게 된 거지?"라고 말하길래...우리가 이렇게 말했다.

"너, 아침에 베란다는 안 뒤져봤지? 한 번 봐 봐!"

딸의 두번째 함정. 아침에 딸이 베란다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방쪽 베란다 문을 열어보더니, "어, 자전거가 있다!"라며 놀라워했다.

크리스마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딸 아이는 아침에 실망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받은 선물에 기뻐했다.

다만,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는지 딸은 이런 말을 꺼냈다.

"근데, 난 카드에 동물도감을 달라고 했는데, 왜 자전거가 왔을까?"

그러자 우리는 이렇게 둘러댔다.

"너, 원래부터 갖고 싶어했던 것은 자전거였잖아! 산타할아버지도 바빠서 처음 바라는 소원만 기억해"

그렇지. 부모가 되려면 이렇게 그때그때 이야기도 잘 꾸며내야된다. -_-;
이렇게 말하자 딸도 납득한 듯 "그럼 동물도감은 엄마아빠한테 사달라고 해야겠다"라고 말해 크리스마스 선물소동이 일단락됐다.

사실,초등학교 2학년이면 '산타는 이제 없다'고 선언할 나이도 되긴 했지만, 내 기억으로도 4학년때까지 받았던 것 같아, 본인이 스스로 산타는 이제 없다고 선언할 때까지는 매해 이런 숨바꼭질은 계속해야할 것 같다.

문제는 딸의 요구가 점차 게임기 등 점점 대형화되는 게 문제다.

아,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


- 딸에게 사준 주니어용 자전거/ 물론 방범등록 등도 다 했다. =+=

관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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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10.12.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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