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어제 딸아이 첫 피아노 연주회를 다녀왔다.

전날 토요일이고 해서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고 잔 탓에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이 무거웠다. 12시부터 시작이므로 서둘러 비디오 카메라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집 앞 꽃집은 문을 닫은 터라 연주회장이 있는 역에 내려서 가는 길에 꽃을 샀다. 

3년전 일본에 혼자 있을 때 아내생일 때 꽃 배달을 시킨 것이 다인 내가 꽃을 사다니...사실, 이것도 아내가 부탁해서 샀다. 물론 연주회때는 꽃다발을 줄 기회는 없었다. 그리 대단한 연주회가 아니니까.

연주회라 봤자 그냥 시민회관 빌려서 단상 위에 놓인 피아노를 순서대로 아이들이 나와서 치는 것이다. 주 관객은 당연히 부모들. 그래도 보육원(일본 어린이집), 유치원 발표회보다는 낫다. 연주회장은 부모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와 있었다.

딸이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것은 6살 때. 재작년 11월부터 시작했으니까 2년 2개월이 됐다. 일본인 피아노 선생님이 한 달에 3번씩 30분씩 집에서 레슨을 받는 식을 진행했다. 피아노는 한국으로 들어가시는 목사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딸이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손을 이렇게 계란을 감싸듯이 모으고 치는 거야."

처음 선생님에게 배운 내용을 내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난 어렸을 때 악보 보기는 죽어라 싫어했지만,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내 결혼상대는 긴 생머리에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여자였다.

아내는 2주 전부터 딸아이 연주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토요일 저녁도 연주복 리본을 마무리하느라 늦게까지 미싱을 돌렸다.

연주회장.
아이들이 차례 차례 피아노, 플룻 연주를 한다. 인어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토토로, 팝 등 익히 알고 있는 곡들이 흘러나온다. 왠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딸아이 차례. 단상에 올라서서 수줍게 웃고 연주를 시작한다. 언제 저렇게까지 쳤냐 싶을 정도로 손가락이 건반위를 부지런히 오간다. 물론 실수도 몇 번 있었지만, 엘리제를 위하여를 끝까지 다 쳤다.

아내는 저녁에 연주회가 끝나니 내가 연주를 끝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딸아이가 2년간 배운 피아노를 일단 이 시점에서 잘 매듭지은 것 같아 뿌듯했다.

한때 내 꿈이 피아노 잘 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었는데, 딸아이가 그걸 대신 해주니 왠지 꿈을 이룬 것 같다. 딸이 앞으로도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피아노를 더욱 즐겼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 추웠고, 나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시 따뜻한 침대속으로 들어갔다. 꿈속에서 피아노의 청명한 울림이 계속 귓속을 맴돌았다. 일요일이 갔다. 1월의 마지막 주말.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11.01.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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