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오늘 아침에 일본 경찰과 실랑이가 있었다.

실랑이의 발단은 지난 월요일.

사무실에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파출소에서 나왔는데, 무슨 카드를 하나 작성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문을 열어줬다. 

경찰정복을 입은 그는 나에게 녹색으로 된 '순회연락카드(巡回連絡カード)'를 내밀면서 이곳에 몇명이 일하는지 등 인적사항을 적어달라고 요구했다. 인상도 선하게 생긴 경찰관이라 순순히 적겠다고 했으나,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같이 적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힘들고 며칠후에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내 이름을 먼저 물어봤다.

나는 순순히 이름을 이야기하자, 이 경찰관이 한글로 적는 게 아닌가. 일본 경찰중에 한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놀랐지만, 다시 생년월일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순간, 나는 갑자기 내가 왜 이 경찰관에게 생년월일을 알려줘야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건 그야말로 개인정보니까. 이미 난 일본 입국관리국, 구청 등 필요한 곳에 다 내 인적사항을 신고했다. 어디서 살고 있고, 비자가 얼마나 남아 있으며 세금은 얼마를 내고 있는지. 그리고 일본에 오랫동안 살면서 자전거 검문 이외에 경찰을 특별히 만날 일도 없는 나였다. 조금 황당한 느낌이 들어서, 일단 이 서류에도 생년월일을 적어내는 공간이 있으므로 적어서 제출하겠다고 답을 했고, 그는 순순히 며칠 후에 올테니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 경찰관 이름은 후쿠자와 씨인데, 순회연락카드, 일명 그린카드 작성은 '사건이나 사고, 화재 등이 발생했을 때 가족들에게 신속하게 연락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내게 설명했지만, 지난 10년간 일본 이곳저곳을 이사하면서도 한 번도 이런 서류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하자, 원래 각 지역 경찰서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후 같이 일을 하는 일본사람이 사무실로 돌아왔고, 이런 서류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 서류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경찰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도 한다'고 말했다.

그도 예전에 제출을 요구받았지만, 안 하겠다고 하고 간단하게 거절했다고 해서, 결국 그 서류는 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출근하는 시간, 사무실 앞에 그 경찰관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곧바로 그는 벨을 눌러서 '서류를 받으로 왔다'고 말을 했다. 나는 서류를 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미 구청이나 입국관리국 등에 전부 내 인적사항을 다 신고했기 때문에 이번 서류는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몇차례 이야기가 오간 뒤 나의 거절의사를 들은 그는 그렇다면 내 생년월일만 알려달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이때까지도 협조해달라는 분위기.

나는 생년월일도 알려주기 어렵다고 했으나, 그 와중에 인터폰이 장시간 대화로 끊어져버렸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그에게 사정이 이러하니 여기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설명을 재차했고, 그는 이야기를 하기 힘들었는지 대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주세요!"

일본에 살면 외국인은 기본적으로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하고 다녀야한다. 사실 특별한 이유 없이 외국인 등록증도 보여줄 필요가 없으나, 상대는 경찰관. 이 이상 이야기를 길게 끌어봤자 피곤해질 것 같아서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줬다. 그는 외국인등록증에 적혀있는 내 '생년월일'과 '외국인등록번호'를 쏜살같이 수첩에 적어내려갔다.

그러더니, 현재 살고 있는 주소를 또 물어오는게 아닌가. 이런....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라..

"아까, 생년월일만 물어본다고 하셨는데, 지금 거주하는 주소는 왜 물어보세요?"

라고 하자, 그는 더 이상은 묻지 않고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경찰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은 주민등록증이라는 게 있으니까 모든 국민을 일련번호 하나로 관리가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경찰이 직접 집까지 와서 그 집 세대주가 누구고 누구와 살고 있으며 본적이 어디인지 따로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그는 "일본에서는 이런 게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적이 아니다, 사고가 났을 때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구청이나 시청을 통해 조회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며 어디까지나 협조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 명함을 내밀었다.

순사부장. 후쿠자와 도오루.

내가 그의 명함을 받아들자, 그는 "앞으로 이런 일 말고 다른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달라"고 하고 돌아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순순히 '순회연락카드(그린카드)'를 써서 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테지만, 무엇보다 법적근거가 없이 일본 경시청 내부자료로 활용할 자료를 자필로 써내야한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말로는 사건이나 화재 등으로 긴급연락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어떻게 보면 범죄 등 사건과 관련해서 관리를 하겠다는 뜻이니까.

일본 살면서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실랑이를 벌였지만, 다음부터는 이사를 하게 되면 절대 문 열어주지 말아야지. ㅎ.ㅎ

이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리니까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그런 서류가 있느냐''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나도 10년만에 처음 들어본 서류라, 좀 황당하긴 했다.

혹시, 나중에 일본에 올, 혹은 살게 될 그 누군가를 위해 이번 일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확실한 것은 굳이 순회연락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사무실 근처 경찰은 할 일이 좀 없는 듯. 도쿄의 어떤 구는 하도 사건,사고가 많아서 경찰이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고 하더만.

그런데, 그는 한글을 대충 쓸 수 있던데 독학했을까? 어디서 배웠을까? 난 문득 그게 궁금해진다. 나중에 혹시 또 보게 되면 물어봐야지!




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일본생활정보 l 2011.02.06 10:22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1 
블로그 이미지 당그니의 일본이야기by 당그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57)
알림 및 공지 (19)
인터뷰 및 기사 (12)
만화 일본표류기 (45)
일본! 이것이 다르다! (153)
일본생활 이모저모 (160)
랭킹으로 보는 일본 (28)
일본은 최근 이슈는? (291)
Photo Japan (61)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34)
블로그속 블로그이야기 (57)
만물상 (47)
당그니 이바구 (249)
인생의 갈림길에서 (141)
당그니 일본어 교실 (87)
당그니 갤러리 (56)
공감가는 이야기 (14)
고물상 (0)

달력

«   2019/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