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일본 도호쿠간토대지진이 발생한지 열흘 이상이 지났다. 나는 주로 트위터에 일본 현지 상황을 올리곤 했는데, 오늘 블로그에 지진발생 당시부터 열흘간 있었던 일을 옮겨 놓는다.

3월 11일 금

오후 2시 46분

땅이 갑자기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 나는 1층 사무실에서 일본인 손님과 있다가 일단 건물 밖으로 대피. 보통 지진이 오면 2-3분 정도 크게 흔들리고 말지만 이번 지진은 2시간 정도 큰 여진이 지속됐다. 이 지진으로 순식간에 모든 전철의 운행이 중단되었고, 같이 있던 일본인 손님은 일단 집(요코하마)으로 간다가 나갔다가 전철이 끊긴 것을 알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기로 함.

신주쿠에 있는 집, 아내에게서 안부전화가 옴. 15층인데 집이 빙빙 돌았다고 함. 다행히 크게 다친데는 없다고.

트위터에 한국에서 일본 현지에 사는 유학생의 안부를 묻는 트윗이 넘쳐남. 지진 후 모든 사람이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다 보니 모든 휴대전화가 불통.

저녁부터 계속 트위터로 한국사람들에게 일본 지진 상황을 전달함.

저녁에 잠깐 나가 보니 평소에 거의 막히지 않던 사무실 앞 도로(도심에서 외곽방향)가 주차장처럼 변해있었다. 수도고속도로 등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가 통행금지됨과 동시에 주요 전철이 모두 운행중지되면서 일시에 시내도로에 차가 몰렸기 때문. 전철이 운행중지되면서 집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신주쿠, 시부야 등 주요 전철역에 눈덩이처럼 불어남. 일본 정부 및 지차체는 임시적으로 묵을 수 있는 시설을 속속 개방함.

결국 이 날 사무실에서 묵음. 밤새 여진에 시달림.

지진은 아무리 겪어도 무섭다. 내가 발딛고 있는 땅 자체가 흔들리는 거니까.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틀쨰. 3월 12일 토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이케부쿠로역으로 가려고 했으나 버스 줄이 너무 긴데다, 오지도 않아서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가려고 역으로 감. 8시부터 운행이 재개된다는 전철은 9시가 다 되어도 오지 않아 다시 사무실로 가서 10시까지 눈을 붙임.

정오 경 24시간만에 겨우 집에 도착.

이번 지진으로 느낀 건데, 일본에 지진에 안전한 지역은 없다. 그동안 내가 일본에 있으면서 봐 온 것만 해도 후쿠오카, 홋카이도, 교토, 시즈오카, 니이가타, 그리고 이번에 미야기,센다이,이와테 등 동북지방 등, 일본 전역에 걸쳐서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이 무서운 이유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망치는 것 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지진은 예고없이 닥치기 때문에 그 도망칠 수 있다는 것도 행운 중 하나다.

TV에서는 무시무시한 쓰나미의 위력을 카메라로 담은 영상을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자동차와 집을 보면서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집은 어제 지진발생후 당일 저녁 늦게까지 가스 공급이 중단되었으나, 오늘은 정상적으로 도시가스가 공급됐다. 정말 일본 생활 11년 동안 이틀 동안 지속되는 지진은 또 처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

그나마 내가 집에 돌아와서 딸하고 아내가 편하게 자는 걸 보니 다행. 어제는 가족들도 불안해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함.

이날부터 하루종일 트위터로 일본 현지 상황 전달.

후쿠시마 원전에서 문제 발생.
후쿠시마에 3명이 피폭 확인, 최대 190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보도를 접함.

사흘쨰 3월 13일 일

여진이 계속됨. 월요일부터 전력부족으로 인한 계획정전이 실시될 수 있음.

후쿠시마 원전 1호기와 3호기 원자로 안 식히기 위해 모두 바닷물 주입.(바닷물 주입되면 더 이상 쓰기 힘듬)

후지 TV의 지진 당일 영상을 보니, 신오오쿠의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던 일본인들이 지진이 일어나면서 일제히 밖으로 나갔는데, JPNews 기사에 따르면 지진이 조금 진정되자 다들 돌아와서 계산을 치루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TV를 틀면 늘 '쓰나미의 우려는 없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었는데,그때는 잘 모르다가 이번 지진을 통해 쓰나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됐다. 일본의 주요 도시가 대부분 해안가에 발달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이번 지진 참사 중 그나마 감동적인 것은 한류를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일본분들이 피해지역 한국인 피해자나 유학생을 위해 일본 내 지진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한국어로 번역해서 트위트에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는 이렇게 세계를 이어준다.

지진 멀미. 지진이 멈췄음에도 때때로 흔들린다는 착각에 시달린다. 그래서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흔들림을 느끼면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정말 흔들리는 건지 확인차. 전등이 흔들리지 않고 있으면 지진이 온 것은 아니니까.

쓰나미는 수심이 깊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에서 더 큰 파도를 만들어 낸다고 함. 즉, 지진으로 밀려온 파도가 연안부에서 더 크게 올라오게되는 것이다. 쓰나미가 무서운 것이 강물과 달리 바닷물이 치고 올라와서 마을을 집어 삼킨 다음, 다시 물이 빠지면서 남아있는 모든 것을 휩쓸면서 바다로 돌아가버리기 때문. 마을 자체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

이번 지진, 지난해 9월 쓰기 시작한 스마트폰이 있어서 다행. 와이파이를 통해 사무실에서 NHK 시청을 할 수 있었고, 휴대전화 통화는 안 됐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카카오톡 등 한국과 연락도 취할 수 있었다.

나흘쨰 3월 14일 월

원전 3호기 수소폭발. 지진 피해에서 원전으로 화제가 급속하게 옮겨 감.

정상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했으나 거리에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도심이 죽은 것처럼 보였음.

편의점에 가 보니 빵 종류는 전멸이지만, 도시락도 조금은 남아 있으며 물도 500리터짜리는 살 수 있습니다. 그 외 식품은 있음. 빵은 지진의 영향으로 제 때 공급이 안되는 게 원인이며 편의점측에서도 최대한 빨리 공급받도록 하겠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음.

대지진여파로 닛케이 평균 주가 1만엔 밑으로 떨어져.

13일 미야기현에서 혼란을 틈타 절도사건이 21건 발생했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미야기현 경찰에 의하면 좀도둑 등 야간에 가게 유리를 깨고 침입한 절도 다발.편의점이나 음식점,가전양판점에서 식료품 외에 내비게이션 및 현금 등도 도난당했다고 함.

프랑스 대사관은 자국민에게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 당장 떠나라고 권고. 그 배경은 앞으로 올 여진 확률 및 후쿠시마 원자로가 폭발할 경우 풍향과 풍속에 의해 수시간 이내에 간토지방에 도달, 방사능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유. 프랑스인 학교 수요일까지 휴교하기로.

5일째 3월 15일 화

다행히 간밤에 여진이 없었다. 도쿄 뿐 아니라 이바라키, 후쿠시마, 이와테, 미야기, 니이가타 등 어제까지 끊임없이 발생하던 여진도 잠잠한 상태.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물질이 도쿄를 지나 미군기지아 있는 요코스카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음. 충격.

집 근처 와이즈마트 슈퍼에 가보니 상당 부분의 칸이 사재기로 비어 있었음.

분단상태인 한반도에서 자란 나는 늘 전쟁에 공포에 시달려야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전상태가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대학도 가고 연애도 하고 그랬다. 일본에 오니 일본인들에게는 한반도에 없는 지진이 삶의 일부였고 지진은 무섭지만 극복하는 것이었다.

세상 어디든 위험과 공포는 존재한다. 한 번도 대형지진을 겪지 못한 도호쿠 지방에 그런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가 닥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본사람들에게 한때 한반도는 늘 전쟁위험이 있는 위험지역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지금은는 상대적 안전지대다.

그러나 어디든 삶은 존재하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터전은 존재한다. 따라서 한 번 잡은 터전을 쉽게 버릴 수 없다. 그게 확실히는 모르지만 지구라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의 숙명이 아닐까.

오늘은 잠잠하다 싶더니 22시 시즈오카에서 강진 (진도 6) 발생.
많은 한국사람들이 한국으로 떠남.

6일째 3월 16일 수

여전히 후쿠시마 원전 위기 상황.

도쿄 도심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평일 밤 10시 40분 도쿄 도심을 다니는 야마노테선 좌석이 많이 비어있다. 아직 도시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뜻. 자영업하는 지인도 지금 일 안 하고 쉬고 있다고 전화연락 받음. 주요 부심 중 하나인 이케부쿠로에서도 사람들이 별로 안 탄다.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

내가 사는 곳 맨션에 사는 한국사람들도 모두 떠났음.

도쿄에서도 방사능 공포 확산. TV에서 CT촬영 및  엑스레이와 현재 나오고 있는 방사능수치 및 건강에 영향 분석한 내용 내보냄.

7일쨰 3월 17일 목

한국사람들이 한국으로 피난가면서 다량의 피난품 주고 감.

오늘 딸이 다니는 도쿄 한국학교의 같은 반 40명 중 8명 등교 ( ̄(工) ̄) 반 영어 수업 담당 영국인 담임은 있었다고 함.

지금까지 축구 생중계, 야구 생중계는 봤어도 원전 누출 생중계는 또 처음.

한국언론에서 원전 48시간이 고비라고, 폭발가능성이 있다고 함.

한국언론의 현 일본 묘사. 1.방사능 수치 최고 기록. 2. 후쿠시마 피난을 일본 엑소더스로 표현. 3. 여진의 강도가 며칠 전 보다 많이 낮아졌음에도, 도쿄 강진으로 흔들. / 오늘도 한국서 전화 꽤 온 이유를 알겠다.


8일째 2011.3.18 금

근 일주일 동안 트윗으로 현장 상황 중계. 피곤이 많이 쌓임.
그때 느끼고 썼던 글

"그냥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듯 모든 것이 대지진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쓸려간 집도 사람도 원래대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전쟁 같은 날이 끝나고 평온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딸 학교 2학년 종업식에 39명 중 6명만 참석했다.

도쿄 도심, 퇴근 시간만 놓고 사람들이 많아 생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내일부터 3일 연휴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러 나온 사람도 꽤 있었고. 사람들이 충격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았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내일은 계획정전 안한다고.

오늘은 정말 여진을 못 느꼈다. 약간 미세한 떨림(?) 빼고. 지구가 그만 노하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원전사태만 끝나도 일상이 찾아올텐데...

여진은 잦아든 경향. 언론에서 원전 주말이 고비라고 하자 사람들이 다시 오사카 등 서쪽 지방으로 피난.

지진 발생 일주일. 오후 2시 46분 피해지역 주민 묵념.

9일째 2011.3.19 토

원전 살수 작업 지속.

오사카, 요코하마, 가와사키 소방대도 원전으로 집결 중. 아울러 도쿄 소방청은 방사능때문에 교체요원을 100명 추가로 현지에 . 또한 리모콘으로 긴 팔을 가진 기기를 조종할 수 있는 차량을 보냄. 이 기기가 있으면 먼거리에서 정해진 장소에 방수 가능

방사능에 피폭당했다고 할 때의 피폭은 한자로 被曝. 폭격을 당했다는 뜻의 피폭被爆과는 그 글자 다른 것으로...이 때의 폭曝자는 '쬐다'는 뜻. 즉, 방사능을 쪼였다는 말.

NHK에서 드디어 대지진 소식 이외에 리비아 소식도 내보내기 시작했다.

누구 말대로 도쿄에 살고 있는 나는 앞으로 웬만한 재난영화는 재미가 없을 듯. 매일 일어나자마자 도쿄의 방사능 수치를 체크하고...지진은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방사선은 대책이 없음.

한국 언론에서 이번 주말이 최대고비라고 말을 바꿨는데 이번 주말이 지나도 별일 없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함.

내일 후쿠시마 비 예정. 이바라키현(후쿠시마 아래) 시금치, 후쿠시마현 우유에서 식품위생법 규제치를 넘는 방사선량이 검출됐다고 에다노 관방장관이 발표. 후쿠시마는 기본적으로 농업과 우유 등 낙농업 지역인데 심각함.

오늘 만난 일본인 지인도 지적한 사항이지만,방사선량(대기중) 방사선물질(채소,우유)에 대해서 '당장 인체에 해를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유냐 채소를 한 번만 먹고 마냐?정말, 도쿄전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함

열흘째 2011.3.20 일

뉴스에서는 원전 관련 심각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때때로 집이 흔들렸다. 나는 종종 도쿄의 방사능치를 체크했다.하지만 딸은 이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학교에서 배워온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고 웃었다.아이의 생명력에 어른이 힘을 얻는다.

아내가 교회를 가보니 교인 150명 중 26명만 왔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 온 사람 빼고는 전부 한국에 갔다는 이야기. 상황이 안정되면 4월초에는 돌아오겠지.

원전사고로 방사능공포가 일본을 뒤덮고 나서, 나는 목이 마를 때 맘껏 컵에 따라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에, 탁한 공기를 갈고 시원한 바람을 집안에 들이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물기가 남은 채소를 맨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

돌이켜보면 지난 열흘간은 얼이 반쯤 나가있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땅과 시시각각 전해져오는 원전, 방사능 소식, 그리고 대탈출을 알리는 뉴스. 뉴스의 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주 걸려오는 한국 친지 전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어제(3/21)는 하루종일 비가 욌다.
 
아직 나와 우리 가족은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원전은 전력공급준비를 하고 있으나 완전히 해결된 상태는 아니다. 3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아울러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가 서둘러 해결되기를 소망한다.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일본단상메모 l 2011.03.22 15:35

1 ··· 44 45 46 47 48 49 50 51 52 ··· 1457 
블로그 이미지 당그니의 일본이야기by 당그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57)
알림 및 공지 (19)
인터뷰 및 기사 (12)
만화 일본표류기 (45)
일본! 이것이 다르다! (153)
일본생활 이모저모 (160)
랭킹으로 보는 일본 (28)
일본은 최근 이슈는? (291)
Photo Japan (61)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34)
블로그속 블로그이야기 (57)
만물상 (47)
당그니 이바구 (249)
인생의 갈림길에서 (141)
당그니 일본어 교실 (87)
당그니 갤러리 (56)
공감가는 이야기 (14)
고물상 (0)

달력

«   2019/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