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의 흑백필름

아이와 동화책

dangunee 2007. 1. 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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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 들어서 싸래기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딸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때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문득 물었다.

"채현아 하늘에서 왜 눈이 내리는 거야?"
"왜냐면요. 날씨가 추우니까"

집에서 씨리얼을 조금 먹이고, 다시 미술학원을 보내러 외출을 했다.

"야...눈이 또 내린다."
"채현아 그럼 이 눈은 어떻게 내리는 거야?"
"음...그거는요. 하늘에서 천사들이 뿌려주는 거에요"

아이에게 요즘 한창 과학동화를 읽어주고 있어서, 나는 수증기가 대기를 타고 올라가서 구름이 어쩌고 저쩌고 라고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천사'가 뿌려준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그럼 천사는 하늘나라에서 뭐 하는 거에요?"
"꽃을 만드는 거에요"

과학지식은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따분한 것이기도 하다.
지면에서 떠돌던 수증기가 대기중으로 올라가서 얼은 후에 무거워져 대기의 흐름과 함께 어느지역에 낙하하는 중력의 법칙보다는 때때로,
천사가 만들어주는 꽃송이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다.


2.
한국에 와서 나는 세가지 담당이 되었다.
아이 어린이집 통학 담당.
미술학원 보내기 담당.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동화책 읽혀주고 재우기 담당.

아이랑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우리집은 나와 처가 텔레비젼을 보지 않다 보니, 딸도 거의 텔레비젼을 보지 않는다.
주로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노래나 종이 접기, 만들기 등을 배운다.
그리고 주로 동화책 읽기.

황석영이 소설가가 되었던 배경에는 날마다 책을 읽어주시던 어머니의 힘이 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여 나도 되도록이면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한다. 특히 한글 책.
한글은 어른인 나도 감정표현하기가 쉽고 더 많은 정보를 아이에게 전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주려다 보니, 이미 사놓은 책은 대부분은 읽은 책이다.
처가 전집을 또 사줘야겠다고 해서 얼마전 세계 창작동화 90권짜리를 주문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인지, 나는 동화책의 그림을 유심히 따져보는 편이다.

얼마전 아이에게 많은 그림동화책 중에서 어떤 것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그림의 완성도가 높은 책만을 골랐다. 꼼꼼하고 세심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은 역시 이야기거리도 많고 아이에게도 인상적인 셈이다.


3.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한국 전래동화 전집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주로 위인전이나 과학만화 이런 것을 사주셨지만, 어머니는 우리 수준에 맞게 전래동화를 사주셨다. 그것도 없는 살림에 할부로 장만해주신 것이다.
집이 좁아서 번듯한 책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한켠에 노오란 방바닥 색깔과 어울려서 놓여진 동화책 박스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형과 나, 동생은 번갈아가면서 읽었던 것을 또 읽고 또 읽고.
나는 그 책을 통해서 구렁이와 까치, 종소리 등...한국의 정서를 읽었다.

나이가 들면서 동화책은 잊었고, 좀더 고상한 척 어렵다는 책만 골라서 읽다가 그것도 30줄에 들어서니 책 잡기도 힘든 나이가 되었다.

이때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다보니, 자연스레 내 유년시절의 기억과 연결되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4.
흔히 결혼은 제2의 인생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서로 양보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야하니..
하지만, 내 생각에 진짜 제2의 인생은 아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가 있으면 처와 함께 호젓한 생활을 즐기기도 힘들고,
모든 것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아이는 그 모든 버거움을 '무'로 만들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동화를 읽는 어른은
어느새 동화를 읽는 아이가 된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꼭 숫자놀음(연봉이니, 아파트 평수니)만 할 필요는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놀라는 것은,
내가 잊고 있는 기억을 아이가 하나씩 재연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아이라는 새로운 우주가 커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분명 가치가 있고 재미난 일이다.

한국에 있을때만이라도 우선은 좋은 아빠가 되기로 했다.
때때로 목욕도 하고, 한글도 가르쳐주고, 동화도 읽어주고...
밀린 원고와 줄어든 수입을 생각하면 한켠으로는 답답하다가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는 것이야말로
진짜 '수입'이 생긴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5.
그제 카드 결제로 시킨 창작동화가 내일 모레면 도착한다고 한다.
어째 아이 보다
어른인 내가 더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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