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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라아멩

dangunee 2007. 4. 24. 01:22

1.
그때 난 와이프와 함께 도쿄 신쥬쿠에 있는 모 중국집을 찾았다.
어학연수생에서 유학생으로 바뀌고, 일본생활도 1년 이상 지났을 즈음,
우리는 그렇게 자장면이 먹고 싶었던 거다.

주위에 아무리 찾아도 짜장면 집은 없고 서울에서 공수해오는 짜파게티로는 도저히 향수병을 달래기 힘들었던 그때, 신쥬쿠를 샅샅히 (사실은 금방 알아냈지만) 뒤져서 한국 자장면을 하는 집을 찾아냈다.

신쥬쿠와 신오쿠보 사이에 있던 집으로 실은 중국사람이 하는 가게였는데, 조선족이 일하고 있었다.
가게는 허름했고, 웬지 B급 영화에 나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었는데,
우리 말고도 몇명의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자장면을 시켜서 먹었다.

우리는 근 1년만에 자장면을 먹는다는 생각에 가게에 들어설때부터 군침이 돌았지만, 막상 먹고 나니 한국에서 배터지게 먹던 자장면 생각이 더 간절해지곤 했다.
게다가 약간 매운맛이 도는 쟁반짜장은 없지 않은가.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세이부 신쥬쿠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안은 한산했고,
우리는 전철을 타기전에 역 근처 남대문시장에서 한국 음식 거리를 몇개 사왔다.

향수병은 멀리서 오는게 아니라, 이렇게 목구멍 아래서 갑자기 찾아온다.

그때는 그냥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날 전철창가에 내리던 햇살의 색깔하며,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표정하게 앉아서 급행열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2.
한국에 와서 구한 집 옆 건물에 자장면 집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자장면을 시켜서 먹었다. 물론 짬뽕도 시켜먹었다.

대치동 작업실을 구한 뒤에도 친구와 쟁반짜장을 먹었고, 이제 짬뽕, 자장면은 질려버렸다.

3.
신쥬쿠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한 다음에는 다들 꼭 라멘집을 찾았다.
일본사람들은 술을 한잔 걸치고, 가라오케에 들러 노래를 부른 후에
파장 직전에 라멘을 먹고 속을 풀어야 하루가 제대로 마무리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도 덩달아 라멘집을 갔다.

지금은 나와 절친한 사이인 사코다상도 신쥬쿠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도 그와 갔던 곳이 라멘집이었다.
그는 큐슈출신이라 일부러 후쿠오카쪽 돈코츠(돼지뼈)라멘을 시켜줬다.

그때만 해도 한참 일본음식에 맛을 들였던터라 나는 맛있게 라멘을 먹었고, 한국에서 누군가 오게 되면 나도 맛있는 라멘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출출할때는 나도 모르게 라멘집을 찾아서 한끼 때우는 게 일상적으로 되었고, 가끔 내가 향수병 이야기를 하면 일본사람들도 한국에 오래 체류한 사람은 일본카레, 일본라멘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는 서로 같은 경험을 가졌다고 위안을 한 셈이었다.



4.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본에 있을때 한국음식은 정말이지 먹어도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한국음식점에 가서 김치찌게를 먹어도, 설렁탕을 시켜먹어도 히딩크가 이야기했듯이 '나는 아직 배고프다'같은 정서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본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데도, 일본사람 처럼 별로 땡기지가 않는다.
초밥이나 라멩, 쯔께멘, 일본식 돈까스, 회, 오니기리(삼각김밥), 소켄비챠, 오코노미야끼, 야끼소바 등 일본에서 내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이 제법 생각이 날만 한데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문득 이 생각이 들자
나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에 오래 있으면 있을 수록 일본 라멘과 돈까스, 카레가 먹고싶었다고 몇번이고 강조를 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참이슬을 퍼마셔도 별로 취하지도 않고 밍숭밍숭했지만,
한국에서는 조금만 마시면 취하고 알딸딸해지는 기라.

어쩌면 내가 일본에서 느꼈던 한국음식에는 근본적으로 고국에 대한 '허기'가 담겨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허기는 아무리 그럴싸한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던 거 같다.

그때는 그게 허기인줄 몰랐다.
사실 나는 가족하고 같이 살아서 한국음식을 집에서 직접 해먹기도 했으니, 주식을 일본음식으로 때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허기를 달고 살았다.

이제 나는 삼겹살도 자장면도, 짬뽕도, 설렁탕, 순대국도 지겹다.
한국와서 별 비싸지도 않은 이런 음식을 자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익숙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느껴질때면
나는 종종
그때 신쥬쿠의 어느 허름한 중국집을 생각한다.

그때 처와 내가 먹었던 것은 자장면이 아니라, 실은 고국에 대한 허기였음을.
그러고 보니,
그 날 식초를 두른 다쿠앙(단무지)도 참 일품이었지 아마.
하지만 춘장에 양파는 없었다는 거어어어.....


 * 표류기 2권 탈고가 되고 나니 슬슬 이 생각 저 생각이 드는군여...돼지 삼형제 완결해야되는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