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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맑음 13> 가족들과 다시 밥상을 둘러싸고

dangunee 2008. 5. 25. 00:33


1.
나리타 공항에는 오전 11시 반경 도착했다.
정확한 명칭은 '나리타국제공항 제2터미날'
일본항공 JAL이 내리는 곳이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며칠동안 턱수염도 기르고, 다이어트(?)까지 한 나는 약간 덤덤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먼저 나를 발견했다.
아내는 얼마전 msn 화상통화때 '수염기르면 지저분해서 싫다고 했었는데', 의외로 오늘 만나더니 괜찮다고 한다. 의외로 어울린다나...
아마도 턱수염 말고 콧수염이나 구렛나루등은 깨끗하게 정리해서 그럴 것이다. 수염? 의외로 관리하는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 -_-;;
딸은 전철을 타고 나서 그동안 없던 내 턱수염이 재미있다는 듯 자꾸 만지고 난리다.

이로서 작년 11월 한국에서 혼자 건너온 이래 6개월간의 독신생활이 끝났다.
이삿짐이 다음주면 오기 때문에, 현재 집은 좁지만 이제 세명이서 어쨌거나 알콩달콩 살아갈 일만 남았다.

2.
생각해보면, 아내와 나는 일본과 한국에 걸쳐 살면서 두번 떨어져 살았다.
내가 처음 교토로 건너오던 2000년 10월부터 2001년 4월까지 6개월간.
그리고 2006년 한국에 잠깐 귀국해서 1년 살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후 6개월.

국제이사를 총 3번했지만, 두번은 전부 아내 혼자 짐을 꾸렸다.

혼자 살면서 느낀 것이지만 역시 가족이란 같이 살면서 늘 대화하고 이것저것 상의하고 그래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의 칭얼거림도 물건 사러 돌아다닐 때 다리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하는 것도 소소한 생활의 재미다. 그동안 산 적이 없던 아이스크림도 아이 덕택에 사서 입에 물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랑은 그동안 인터넷 전화로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먹고싶었는 고사리 볶음과 가지조짐도 해먹었다.

3.
그러나 혼자 자취한 6개월 동안 모두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잠시 떨어져 살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보이지 않던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취 6개월동안 나는 이것저것 요리를 배우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을 배우고, 싱크대 닦는 법을 배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법을 새로 배웠다.
예전에 나에게 밥은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반찬이 나오면 그저 먹어주는 통과의례였지만 이제 슈퍼에 있는 모든 싱싱한 수산물이며 육류가 그럴싸한 요리의 재료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아내에게 '왜 이리 식사준비'가 늦냐'고 핀잔을 줄 필요도 없어졌다.
배가 고프면 내가 가서 칼로 재료를 썰고 다듬고 도와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가지를 씻고, 썰고, 오이를 깎고...

아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6개월만에 딸아이를 씻겼다. 아이는 물놀이가 좋은지 욕탕에서 한참이나 있다가 밥상이 다 차려지자 그제서야 나왔다.

얼마전 이삿짐 싸느라 손을 조금 다친 아내를 보니, 설겆이도 이젠 자연스럽게 내 몫이다. 손에 상처가 있는 물을 만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게 된 나는 그릇 닦는 일도 그저 즐겁다.

4.
다행히 가족이 다시 만나던 어제.
오후 내내 일기예보와 달리 비는 오지 않았다(5시 이후부터 내림)

하여 나는 딸에게 앞으로 다닐 유치원을 구경시켜준다며 데려갔다.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넓은 운동장과 놀이기구가 있는 유치원을 맘에 들어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있는 공원에 들러 시소도 태워주고, 정글짐도 들어가고...

내가 텅빈 주말을 보낼 때 아이랑 같이 있으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왠지 약간은 좋은 아빠가 된 느낌이었다.

< 오늘 딸아이와 놀아준 동네 근처 공원 1 >

<이렇게 조깅, 산보 코스도 있다>

5.
밤새 짐을 싸고 사람들 인사하느라 잠이 부족한 두 모녀는 현재 깊은 잠에 빠져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나는 오랫만에 '꽃게탕'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아내가 잠든 사이에 쌀을 미리 씻어서 밥통에 예약을 해놓았다.

떨어져 있던 시간은 그저 빈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것을 보는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 가족이 모여서 밥상을 둘러싸고 게껍질을 발라내며, 딸이 흘리는 밥풀도 주워가며, 오랫만에 평온한 일요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다.


진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주 사소한 일상속에 보석처럼 담겨져 있는 것을.

< 다시 도쿄에서 시작 될 우리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