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큐어. 딸래미가 매일 어린이집에서 보기때문에 하나 사준 것.
1.
다음달이면 채현이가 만 4살이 된다.
2년전 딸과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썼던 아빠와
딸을 오랫만에 다시 읽었다. 이글은 그 속편이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는 벌써 소녀가 되었다.
기저귀는 이미
너무나 먼 과거이고, 아이는 머리를 길게 길러서 '프리큐어' 머리를 고집하고, 치마만 입으려 한다. 핑크색 아이들용 매니큐어를 손톱에
바르고, 엄마처럼 딱딱 소리나는 샌들을 신고 다닌다.
2년전과 같은 점은 여전히 방안을 어지럽힌다는 것. 하지만 그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도구를 쓸 줄 아니까 가위로 종이를 잘게 잘라놓는다거나, 점토덩어리를 여기저기 떨어뜨려 놓는다거나.
2.
2년전 나의 고민은 일본땅에서 태어난 딸이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까였다. 그때 쓴 글을 보니 언어를 둘러싼
전투라고까지 표현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고민은 기우였다.
이제 딸은 집에서 일본어를 쓰는 일이 10프로도
안된다.
"얘들 왜 이래?", "아 그래?" "그러면 안되지" "이렇게 하면 될꺼야" "채현이 저기 가고 싶어" 등 나와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훈계까지 한다.
"자꾸 까불래?"
"아...아니.."
그렇다고 특별히 한국인이 많은
곳을 다닌다거나 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어린이집)에서 보낸다.
개미를 지칭하는 일본어 '아리'를
가지고 나랑 입씨름할때, 사물은 하나인데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채현이는 이제 아리는 '일본말'이고
'개미'는 한국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빠 이거 '가부토무시'야 "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내가
"채현아 '가부토무시'는 일본말이고 한국말로는
'투구벌레'라고 하는거야"
이렇게 고쳐준다. 그러면 흔쾌히 이해하고
"이거 투구볼레야" 하고
발음을 따라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에게 주의를 준다.
"여기는 한국말 집이야. 일본말은 밖에서 하는거야"
"아빠 일본말
안했어...."
"어 그래? 알았어"
나를 용서해주겠다는 투다.
내가 집에 오면 한국말로 해야된다고 가이드라인을 잡았기 때문에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배우는 과정이니 틀리기도 한다.
"채현아 아빠랑 엄마. 채현이 다 합쳐서 몇명?"
"하나아, 두울, 세엣!!"
"그렇지!! 그래서 몇명?
"세마리!!"
"....."
3.
채현이가 한국말을 하게 된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에겐 그래서 채현이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는거 같다. 아직 일본말과 한국말에 대한 개념이 없을때 아이는 주로 일본어로 이야기했고, 책을 읽을때도 혼잣말로 '일본어'로
떠들었다. 그럼 나는 옆에서 한국말로 같이 떠들었다.
이때 내가 주로 했던 일은 줄기차게 채현이 뒤를 쫒아다니며, 한국말로 고쳐주는
것이었다.
'채현아 그건 한국말로 이거야....저거야....그건 아니지, 한국말은 이렇게 써....그건
일본말....."
일종의 앵무새다. 중얼중얼....
그리고, 한국에서 동화책을 공수해와, 아내가 지속적으로 자기전에
한국어로 책을 읽어주었다.
그 덕택인지, 아이는 혼잣말을 한국어로 한다. 불과 6개월전만 해도 혼잣말은 일본어로 했던
아이다.
아이에겐 적어도 '한국어'란 집에서 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혹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도구라는
것이라고 알게 된 것이다. 이제 현관문을 들어오면서 아이에게 한국어는 생활이 되었다. 또한 한국어 억양도 1년전만해도 어색한 일본식
억양이었는데, 어른들이 쓰는 토종 한국어 억양에 가까워서 가끔 내가 더 놀라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얘가 언제 이런 억양까지....
4.
내년이면, 아이가 일본 중학교를 들어가는 가정이 있다.
이번에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놀란 것이 그집 아이들은
부모가 일본에 살면서 왜 한국을 응원하는지 이해를 못한다고 한 것이다. 보통 한국사람들의 입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겠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아이들 입장에서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와 일본어로 대화한다. 아이들에겐 일본어가 모국어이자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그런데다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친구들이 대부분 일본아이들이니, 일본을 응원하지 않는 부모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이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적어도 한국어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부모를 이해하는게 어려웠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언어야 말로 부모와 아이가 생각을 나누는 아주 커다란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 정서의 마당을
공유하지 못하니, 서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그집 부모님들도 뒤늦게 요즘에라도 아이들 한국어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여기서도 아이들 문제는 그래서 어른들의 문제다.
5.
'아이에게 살아있는 한국어를 쓰게 하자'라는 고차방정식 중 일부를 푼 지금,
남은 것은 채현이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게 하는가이다.
동화책을 보면서 몇글자씩을 읽히게 하는데 쉽지는 않다.
일본글자를 익히기도 쉽지
않은 나이에, 한국어까지 머릿속에 넣으려면 골치 아플 것이다.
그렇지만, 2년전과 달리 아이에서 소녀(?)가 되어가는 딸에게
한국어라는 친구를 사이에 두고 걸어가는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채현이가 가족과 함께 쓰는 말이 한국어라는 것을, TV나 밖에서는
들을 수 없는 부모가 쓰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빠가 한국어로 느꼈던 감성을 딸에게 물려준다는 것.
그것은 28년의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거대한 공감대의 형성이며, 부모와 아이가 가족이라는 틀에서 함께 나누는 작은 역사이기도 하니까.
앞으로 열쇠는 딸이
한글을 깨칠 수 있을까, 아닐까가 하는 확률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늘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많은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렇게 '육아일기'를 쓰는 일이니 한심하기도 하지만, 이 글을
언젠가 딸도 분명 읽을 것이다. 그때 아빠가 오렌지색 노을이 커텐사이로 빨랫줄처럼 새어나오던 창문가에서, 모니터앞에서 몰두했던 일이
자기에 대한 생각을 옮기는 것이었음을 알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까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단순히 시간적인 문제
말고도, 딸이 한국어 독해 뿐아니라, 어감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이 글은 채현이가 그때까지 그 정도 독해력을
갖게 하기 위해 남겨두는, 미래를 향해 던지는 나만의 숙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를 뒤덮은 구름 일부가 어느새 동해를
건너온 것일까.
빗방울이 나뭇잎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타닥타닥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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