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도쿄맑음 2. 딸래미와 함께 한 퇴근길

dangunee 2007. 12. 27. 02:15
1.
회사 망년회(일본에서는 忘年会라고 함)가 끝나고
외출한 아내와 딸과 함께 중간지점에서 합류해서 같이 집으로 오게되었다.
시간은 이미 9시 반 정도 되어서 전철을 타기 전부터 딸이 자리에 앉고 싶다고 전철에서 징징댈까봐 내심 걱정을 했다.
퇴근길 만원전철에서 아이와 함께 집에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전철에 타자마자 나는 딸에게 회유작전을 편다.

'채현아 집에 가면 아이스크림 있지?'
'응' 채현이 눈이 반짝 빛난다.
'집에 갈때까지 얌전하게 자리타령 안하고 가면 아빠가 아이스크림 주께'
'응' 대답은 넙쭉 잘한다. 그러나 5분을 못간다.
매달렸다가 몇정거장 남았냐고 했다가 난리법썩이다.
조용한 일본전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좀 난감하다.
몇번 주의를 준다. 꼭 한국어로 떠들어서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나는 딸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하라고 주의를 주는 편이었다.

우리가 실컷 떠든다고 뭐라고 할 일본인들은 없지만 눈빛을 보면 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자이선 '가야바쵸'에서 집까지는 8 정거장인데, 3 정거장즘에서
우리가 서 있는 쪽 반대쪽에 자리가 났다.
딸이 그걸 놓칠리가 없다.
'어 자리 났다'
딸이 쪼르르 달려가서 앉는다.
제지하려고 하다가 '그냥 놔둬'라고 애엄마가 이야기 하는 바람에 냅두었다.
문제는 딸 혼자 앉게 하기가 좀 그렇다는 거다.
마침 딸 옆에 아무도 앉지 않길래 나도 따라가서 그냥 옆에 앉았다.
쩝.
아마도 채현이가 앉자 그냥 아무도 앉지 않은 거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딸에게 언질을 주었다.

'채현아. 이 자리는 우리가 서있던 곳도 아니고 반대편 자리인데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리를 이렇게 막 와서 않으면 돼?'

그러자 이제 거침없이 한국말을 하는 딸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앉으면 된 거지! 아빤 왜 그래'

대체 6살밖에 안된 아이가 이 말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것일까.
예쁜 딸의 입에서 나온 당돌한 대답이 갑자기 나를 열받게 한다.
 
나는 다시 차분하게 설득조로 이야기한다.
'이 자리는 우리가 서있는 쪽 반대방향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앉을 차례도 아니고, 이건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리를 뺏는 거라고'
아직 아이라 몇번 딴소리를 하다가 내가  몇번이고 주의를 주자 알았다고 한다.

전철에서 내리자 나는 다시한번 강조를 했다.

'채현아 세상에는 질서라는 것이 있어. 그걸 꼭 지켜야 돼! 알았어?'

딸은 다 알았다는 듯이 '네...'하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아마 잊고 있었던 아이스크림 생각이 다시 났을 것이다.


2.
그러고 보니
딸과 아내를 만나기로 한 환승전철역 화장실에서
소변기에 사람들이 가득하자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줄을 서는 일본인들의 습관이 묘하게 대비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다 질서를 지킨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지키게 된다.

애 키우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내 딸이 자기만 알고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마구 혼낼수도 없는 노릇.
딸이 초등학교 3학년만 되었더라도 눈물을 쏙 빼놓았을 지도 모른다.

이건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는 문제 이전의 이야기이므로.

한국에서 자동차로만 이동하다가 저녁 늦게 전철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게 쉽지 않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