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내 인생의 음악 [미드 나잇 블루]

dangunee 2005. 7. 3. 15:47
1. 미드 나잇 블루 (Midnightblue.....Louise Tucker) 

   루이스 터커의 노래

   이 얼마만에 듣는 노래인가.

 

   나는 깊은 상념에 빠진다.

  이 노래를 밤새도록 들으며.....

  어두컴컴한 독서실 한켠에서, 풀리지 않던 정석을 풀던 소년은

  어느새 자라서, 한때는 변혁을 꿈꾸기도 하고, 한때는 또 자본주의의 밑바닥에서 돈의 힘과 더러움도 느끼다가, 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바다까지 건너와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시간은 그렇게 덧없이 흘러간다.

  덧없다는 것....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정말 짜증나고, 지겹고 남루하지만, 그것도 지나면 가끔 어떤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을....시간이 지나고 나는 깨닫는다.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어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었지만,

  그때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을 들고, 매일 산꼭대기에 있던 학교를 다니던 나에겐

  시간은 너무 느리게 그리고 아주 지겹게 흘러갔다.

 

  늘 따분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내려오던 나의 뒤에서 낮게 깔려서 따라오던 오후의 햇살을

  지금도 기억한다.

 

  가끔 지나가던 집 담벼락이 장미가 피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미친 개가 짖기도 했다.

 

 

2.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담임 선생은 '딱 5년만 열심히 공부 하라' 했다.

   5년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만 가면,

   '여자도 사귈수 있고, 하고 싶은거는 모든 지 다 할 수 있다'며

   우리들의 예민한 사춘기를 강제로 저당잡은 것이다.

 

   나중에 커서 보니, 그런 세계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매일 매일 목까지 잠겨오는,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환상에 대한 질문을 거두고,

  

   주말이면 과천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러 새벽부터 가서 줄을 서있기도 했고,

   평일이면, 어렵다는 살림에서 독서실비를 받아서,

    어두컴컴한 독서실 한켠에서, 단지 두세권의 책만 환히 볼 수 있는 형광등 밑에서

    가끔은 잠이나 퍼자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를 해야했다.

 

    학교 수업의 과목은 왜 그렇게 많고,

    수업 진도는 뭐가 그렇게 빨리도 넘어가는지....

 

    부모님은 '공부만 하는게 뭐가 어렵냐'며 보릿고개와, 70년대 상경해서

    힘겹게 살아오신 세월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아직 머리통이 크지도 않은 나에게 그런 세계란 세상의 쓴물을 좀더 실컷

    쳐마셔야 겨우 감이 들까 말까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기도 한다.

 

 

3. 그때 구입했던 삼성 마이 마이 카셋트.

    어떤 애들은 소니의 얇고 잘빠진 워크맨을 들고 다녔지만,

 

    나는 파란색 문짝에 뒷면은 노란색 칠을 한 스피커를 달고 있던

    '마이마이'가 좋았다.

 

   그리고, 밥먹고, 학교가고, 집에 와서는 다시 독서실 가서

    공부를  해야하는 시늉을 해야했던 나의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테잎을 고르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이 좋다던 '핑크 플로이드'니, '오지 오스븐'이니 도통 귀속에 들어오지도 않던 음악을 들었지만,

    정작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테잎은

    테잎과 함께 딸려온 싸구려 팝송 테잎이이었다.

 

    바로, 이 루이스 터커의 '미드나잇'이 들어있고

    '에어서플라이'의 노래와 '워즈(words)'가 들어 있던 테잎...

 

    사춘기의 예민한 가슴에 어떤 천형 같은 것을 남겨 놓듯이,

    이 음악과 함께 그 막막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당장 내일이 수학시험인데

    풀어야할 문제는 너무나 많았던 그때,

    이 범위를 내가 벼락치기로 다 소화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버거운 것을 해야만 하나.....

  

   

4. 새벽 2시에서 3시로 넘어가면,

 

    수학 정석 문제를 연습장에 옮기고,

    풀어보려 하지만, 새벼 6시면 시험장으로 떠나야 할 나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라곤 없고,

    그렇다고 외워지지도 않던 시간들

 

    아무리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던 수학공식은 멈춰진 시간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미드나잇 블루'는 한없이 흐른다.

 

    벌써 이 테잎은 12시에 튼 이후 세번째 '오토리버스'를 반복하며,

    나의 이 답답하고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사연을

    애써 어루만져 주듯,

    '미드나잇 블루'의 여가수는 애절하게 한 밤의 사랑노래를 불러준다.

 

    여기서 절망하면 안돼 이러면서도,

    사춘기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던 시간들...

 

    또 내일 학교에 가면,

    '공부 많이 했냐'하면서 서로를 다독여 주는 듯하면서도

     모두가 경쟁자 였던 친구들과 시험지를 나란히 하고 숨막히듯,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기계처럼 풀어야 할 생각을 하니

     저기 저 가방속 가득 든 문제집이 한없이 원망 스러워었었다. 그때는....

 

    나에게는 너무나 막막했던 

    이 길고도 짧은 밤은

    '모두 대학 이후의 대단한 행복'을 맛보기 위해, 뜨거운 밥을 이유도 묻지 않고

    삼켜야 하듯이, 눈물 한 줄기 흘리지 않고도 나는

    모의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쪽지시험을 쉬지도 않고

    잘도 버텨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마이마이 카셋트와 '미드나잇 블루'는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그런 구차한 추억 쯤은 어른들이 말하는 '스무살'의 신세계에는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거추장 스러울 거라는 거....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5. 얼마전 '라디오'을 듣다가

 

   우연히 신청곡 시간에 이 '미드나잇 블루'라는 노래가 떠올렸다.

   그러자

   나는 재빨리, 곡명을 써넣었고....

   근 20년만에 라디오를 통해서 부활한

   '미드나잇 블루'가 흐를 때,

   갑자기 목 아래가 뜨겁게 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

   오늘의 나를 있게 했었던 시간과,

   이제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너무 막막했던 시간도 다 한때였다는 것을....

 

   나는 미드나잇 블루를 들으며 떠올린다.

 

   그리고 오랫만에 이 곡을 구해다가...

   가끔 글을 쓸때면, 이 노래를 한번씩 들어본다.

 

   그러면, 그때 독서실에서 되지도 않던 문제집과 씨름하던 한 소년의 외로움을

   떠올리면서......

 

   나는 오늘 하루 노동에 지친 영혼을 위로한다.

 

 

6. 며칠전 우연히 '처'에게 '미드나잇 블루' 이야기를 하니까,

   이게 원래 영화 음악이었다고, 20년의 세월을 건너 나는 처음 알게 되었고,

   나에게는 아주 장중하고 깊이있던 이 음악에 대해서,

   처가 한 대답이 압권이었다.

 

   "그 영화 있지,  음악과 다르게 유치하고 싸구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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