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돼지삼형제 5- 둘째의 비극

dangunee 2006. 7. 27. 01:17


전편: 돼지 삼형제 4 - 태풍의 눈  

1.
  첫째 : 100대
  둘째 : 100대
  막내 : 50대

우리에게 할당된 몽둥이 횟수다.

100대라....

지금 생각해도 왜 100대나 맞아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딩 6학년이 맞아야할 매 치고는 울트라 메가톤 급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상대는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되는 최강 파워 예비역이었다. 사촌형은 그냥 군대에서 하던 대로 우리에게 '죄와 벌'을 부과했을뿐이고, 잘못은 전적으로 사촌형의 발소리를 바람소리로 착각한 우리의 아둔한 감각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깟 유머일번지를 봤다고 받는 벌치고는 과한데가 있었다.
그런 것을 의식해서였는지, 사촌형은 심문과 구형, 그리고 선고까지 일괄적으로 통보해줬다.

"너희들이 가장 잘못한게 뭔줄 알아?"
"........"
"성적을 잘 못 받아온 것도 아니요, 유머일번지를 본 것도 아니다"
"........"
"그건 바로 공부도 안하면서 공부하는 척 했다는 것이다. 사람 눈치나 보고"

그리 길지 않은 판결이 내려지고, 바로 집행이 시작되었다.
오후 4시. 이제에 아군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렇다고 삼형제가 힘을 합쳐도 사촌형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햄톨이 세마리가 10배는 더 큰 구렁이 앞에 쪼르르 줄 서있는 꼴이었다.

"첫째부터 나와!! 10대씩 맞고 저쪽가서 엎드려"
폭격이 시작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다음은 내차례
'그래, 일단 10대만 견디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집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지만, 울면 매가 다시 배로 늘어난다는 원칙이 추가로 발표되면서 울음소리 조차 그치고 말았다.

일단 50대가 끝났다.
동생이 먼저 사면되었다. 사면이 되었다 해도 우리가 맞는 동안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어야 했다.
삼형제의 얼굴에는 콧물과 울음과 열기가 뒤범벅되었다.
이제 형과 나만 나머지 50대를 맞으면 모든 일을 끝나는 것이다.

2.
이 시점에서 정말 나는 삼형제로서 둘째의 비극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처지에 딸린 눈을 갖기 마련이기도 하지만...

설날이 되서 세배를 하러다니면, 형은 장남이라서 만원을 받았고, 나는 동생과 한 묶음으로 5000원씩 받았다.
그런데 매 맞을때는 나는 형쪽으로 분류가 되어서 막내와 차이가 생겼다.
즉, 돈 받을 때는 첫째를 제외한 나머지라는 집합에 소속이 되고,
매 맞을때는 막내를 제외한 형 이라는 집합에 소속되다니....환장할 일이다.

이건 누가 생각해도 불평등한 것이지만, 억울한 초등학생의 사소한 고민을 공정하게 해결해줄 기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적응하는게 장땡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내가 둘째 안한다고, 어머니한테 읍소를 했지만 어머니는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싸우니, 셋을 낳았다며, 인류신화에 버금가는 분위기로 삼형제 탄생배경을 반복해서 말씀하실 뿐이셨다.  

이윽고 남은 50대를 다 맞았고, 지금도 어떻게 끝까지 버텼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냥 꿈이었으려니.....
태어나서 100대를 맞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100대를 맞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농담하냐고 하던데, 그것은 분명 돼지삼형제 역사의 길이 남을 위대한(?) 전투요, 지금도 삼형제가 명절때 만나서 술안주로 써먹는 절대 불변의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사촌형은 20년 뒤를 내다 보고 우리에게 공짜 안주를 선물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겠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왜 하필 100대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가 학교에서 100등을 한 것도 아니요, 100가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요. 집에 있는 구슬 개수가 100개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부터 100점을 받아오라는 것인가? 그럼 막내는 50점으로 괜찮다는 소리인가. 논리적으로 안맞다. 우리가 100대를 맞은 다음날부터 공부에 매진해서 100점을 받거나 전교 100등안에 들었다면 그 100대는 분명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00대를 맞은 뒤로 아이큐가 100 정도 올라갔다는 증거도 없었고, 오히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100발(?)이 성성해지는 전초인지, 초딩의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씩 나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3.
100대의 여파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약간은 허용된 자유가 완벽하게 박탈되었고, 이제 철저한 관리 통제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할 내용, 공부할 분량, 취침시간까지 우리는 사촌형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 핵폭탄 투하후 우리집은 이제 완벽한 내부반이 된 것이다. 밤 10시가 넘어야 이불을 깔 수 있었고, 기상도 일괄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노는 시간도 정확하게 몇시부터 몇시까지 정해졌고, 그것을 어길 시에는 얼차려를 각오해야만 했다.

  그 후 형이 매를 든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100대라는 폭격을 맞은 후로 우리들은 그 누구도 찍소리 못하고, 통제에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그렇다고 우리들 성적이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밤 10시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졸음의 위기를 넘기고 이것저것 문제도 풀어보고 외웠지만, 애당초 공부에 흥미가 없던 우리에겐 그저 무의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때 쯤 해서 동생이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에는 5분, 그러더니 나중에는 화장실만 가면 함흥차사가 되었다.
화장실 문이 잠긴 채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던 어느날
온 가족이 동생의 실종에 노심초사하며 만능열쇠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동생은 거기서 세상 모르게 자다가 끌려나왔는데, 초딩의 몸으로 회사원들이나 하는 밀린잠 때우기를 무려 20년이나 앞당겨서 몸소 실습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세상 모르게 자면서도 코고는 소리는 물론이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자는 신기한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지금도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지만....

사촌형의 철권통치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될때쯤 끝난 것 같고, 1억 5천만년 전 백악기 시대처럼 공룡의 그림자를 종종 드리우던 사촌형과도 마침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사촌형이 드디어 대학을 떠나서 사회로 진출하던 때라 더이상 우리집에 머무를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20년에 맞먹는 기나긴 식민통치 2년에 대한 눈부신 해방이었으니, 지구를 지배한 외계인이 더 나은 별을 찾아 떠난 감격의 계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식구가 한명 줄었다는 아쉬움도 없잖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사촌형이 떠난 뒤로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때부터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 같았고,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수학공식도 조금씩 해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미를 장식해야할 삼형제의 눈부신 어린이 시절은 공부라는 틀에 묶여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형과 나와 동생이 '돼지 삼형제'란 이름으로 골목을 누비기에는 너무 커 버렸고, 나는 중2가 되어서도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할 용의가 있었지만, 중3이 된 형은 이미 변성기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아직 콧물이나 질질 흘리는 막내동생이나 반항적인 나랑 같이 어울려서 놀기보다 선데이 서울과 애마부인, 예쁜 여자 이런데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 삼형제의 해체가 바야흐로 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묘하게도
그해 87년 6월, 전국은 최루가스로 뒤덮혔고, 마침내 전두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시점이었다.  

                                                               

                                                                         < 다음편에 계속 - 마지막 편 : 삼형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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