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3.

dangunee 2006. 10. 23. 09:12
                  Michael Garmash -unexpected-gift


1.
2006년 8월 말
토쿄 나리타공항 출국심사대에서 나는 여권과 함께 '외국인등록증'도 내밀었다.
외국인등록증을 내민다는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비자를 포기하고 고국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담당 심사원이 처음에는 그냥 확인차 내는 줄 알았나 보다. 그는 내가 내민 외국인등록증을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걸로 완전히 한국에 들어갑니다."
"아 그래요? 재입국 안하는 군요"

6개월 이상 일본에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재입국 허가를 통해서 일본인 게이트로 일본에 입국한다. 따라서 보통 출국할때도 재입국 허가를 받아두는데, 3개월 이상 취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그 권리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걸로 2000년 10월 부터 지속되어 오던 내 일본비자도 끝이 났다.
어학생 -> 유학생 -> 취업 -> 생활  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게이트를 나와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때 나는 그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2.
작년 말부터 신호가 왔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백수로 지낼 수 없다.
비자를 받은 목적이 회사에 취직해서 일본사회에 공헌을 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목적에 어긋나는 경우 나는 다음번 비자 연장을 못받을 확률이 크다.

흔히 외국에 살면 어떤게 불편한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나에게는 허락을 받고 거주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늘 스트레스였다.
회사를 마음껏 옮기지도 못했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정해준 휴가기간에 맞추어서 한국을 다녀와야 했다. 그것은 1주일 정도 짧은 시간에 고국을 다녀온다는 것은 오고가고 이틀을 제외하면 보통 사흘동안 친구들이나 볼일을 봐야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몇년 살다 보니 그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유별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질질 끄는 것은 잘 못한다.
휴가까지 누구 허락받고 시간에 구속되어서 정신없이 누군가를 만나기는 정말 싫었다.

3.
일본에 있을때, 나는 내가 이대로 화석이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회사도 살림도 도쿄에 있다보니, 한국으로 거주공간을 옮기고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이 마음만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살림을 마련한 토쿄 집에서 주말마다 작업을 할때마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베란다창틀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국경없이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나는 귀국을 생각했다.
이상하기도 하지.

한국에서 일본어를 공부할때는 그렇게 그 땅을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일본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한국에서 익숙하게 누렸던 것이 너무나 그리웠다.

4.
떠난다는 것에 꼭 용기나 비장감을 품을 필요는 없다.
떠난 사람만이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
나는 그것만 가지고 한국을 떠났고, 그것은 다시 내가 일본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올때 실천에 옮기는 기준이 되었다.

지난 6년간 나는 일본에서 무엇을 보았나.
글쎄...
인생의 갈림길이라는 문제를 풀면서 거침없이 달여온 시간을 생각해보니,
이쯤에서 잠깐 브레이크를 걸고 달리는 차를 세워두고 바람을 쐬야할 시기란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을 그리면서도, 나는 나의 피과 영혼이 도는 만화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때도 선택의 기준은 한가지였다.

'그래 마음가는대로 가자!!'

어차피 인생! 하고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아도 후회하기 마련이다.

8월 초순, 나는 상사에게 미련없이 회사에 그만둔다고 이야기를 했고, 다행히(?)도 휴직결정이 내려졌다. 일종의 안전판을 마련하고 그렇게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지 벌써 두달이 지났다.

오늘은 오랫만에 비가 내렸다.
도쿄에서 비가 오면 나는 늘 무인도에서 혼자 혹시 올지 모르는 연락선을 기다리는 신세였는데,
한국에서 빗방울이 대지를 적시는 소리를 들으니, 한폭의 풍경화 속에 내가 있는 듯 하다.
다분히 심리적인 문제이지만,
늘 이방인이었던 한 남자가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모습으로 이땅에 발딛고 서 있기 때문이리라.

딸아이에게 집에서는 꼭 한국어를 써야된다고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땅.
매해마다 혹은 때마다 거주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곳.
남과 다른 나를 바라보면서 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했던 지난 몇년간의 기억도 벌써 흐릿해진다.


5.
長い間、お疲れさまでした。 (오랜 시간동안 수고많았습니다.)
来年、また戻ってくることをお待ちしております。(내년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께요.)

회사 송별회때,
내년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인사말을 하던 PD의 육성이 생생하다.

"げんきでね!” (건강해야돼!)
がんばってね!!    (잘 살아야돼!)

나를 마지막 전철역까지 바래다주던 직속상사는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내년말쯤
다시 일본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내 자리도 나에 대한 기억도 흔적도 지워지고 없을텐데...
그때도....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대답은
구름에 달 가듯이 그때도
마음이 가는 곳으로 나는 가 있을 것이다.


6.
그러고 보니 지난 6년간의 선택이 내게 남겨준 것은  이것이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한군데 더 늘었다는 것'

언제고 마음이 가는 곳에 서서 내가 마주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게,
맘먹은대로도 안되지만 맘먹지 않은 곳으로 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인생의 갈림길이란 어쩌면 마음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아니면,
인생이란 어쩌면 밥 딜런의 가사처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려나.



떠나던 날 찍었던 사진. tokyo adachi

관련글 : 인생의 갈림길에서1.
           인생의 갈림길에서2.

* 정말 오랫만에 쓰는 에세이입니다. 또 시간 나면 돼지삼형제 마무리 지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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