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

dangunee 2006. 8. 6. 00:04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올해 7월에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인데,
이 영화는 원래 일본에서 원작소설로 유명했던 작품이고, 내가 한국쪽에 번역소개를 하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여러 출판사와의 경합속에서 결국 낙찰이 안된작품이었는데,
그때 한국 출판사에 소개하기 위해 리뷰 형식으로 원작소설을 읽고 썼던 평이다.

문득 관련 포스터를 찾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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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이란 어쩌면 삶의 모든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그 기억으로부터 발생하고, 어우러지고, 엮여져서, 발전해가기 때문이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에 대한 문제를 차분하게, 그러나 깊이있는 울림으로 풀어내는 소설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관계를 맺어주는것이 사람들이 가장 골치아파하는 숫자와 수식이다.
(숫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이과의 정점인 수학을 문과의 정점인 문학으로 이렇게 자연스레 풀어낸 저자의 능력이 놀랍다)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박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을 다녀왔고, 대학교수를 하던 1975년 어느날, 반대편 차선에서 졸음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오던 차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머리부분을 다쳐, 모든 기억이 1975년에 멈춰져 있는 사람이다.

특징이라면, 현재의 기억은 단 80분동안만 지속된다.
그러니까 80분이 지나면 그 80분간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병을 앓고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75년 이후의 삶에서 기억의 축적이란 있을수 없게 된다.

그는 현재 형이 남겨놓은 커다란 집에 딸려있는 외딴 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박사의 형은 커다란 공장을 하며, 여유있는 생활을 했는데, 그가 죽음으로서 그의 미망인이 된 형수는 그 공장을 헐고, 그곳에 맨션을 지어서 그곳의 월세로 생활을 충당한다.
물론, 박사의 생활비며 가정부 비용은 형수의 월세수입을 채워지고 있다.

박사의 소일거리란 수학잡지에서 상금이 걸린 문제가 나오면 자신의 수학지식으로 정리,증명을 해서 응모하는 것이 취미이다.
또한 그의 기억상실증때문에 그의 양복에는 곳곳에 여러가지 해야할일이나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들이 잔뜩 메모용지에 적혀서 클립으로 꽂혀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서술자인 나. 가정부파견회사에서 박사의 외딴집으로 파견이 되는데,박사의 경우는 다른 가정부가 벌써 7번이나 바뀐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편모슬하에서 자라서, 두살때부터 혼자서 집안일을 하면서 자랐고, 결국에 자신도 10대 후반에 미혼모가 되어서 아들을 하나 두고 살아왔다. 그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을 할수 있는 것은 그러니까 가사 일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정부 일을 천직으로 알고 일을 하고 있었으나, 수학과는 거리가 먼 그녀였다.

그녀가 처음 박사를 대면했을때, 박사가 처음 물어본 말은 이름이 아니라, 신발 치수였다.

"당신 신발 치수가 어떻게 되나"
"24입니다"
"호오, 정말로 깨끗한 숫자다. 4의 계승이다"
박사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승 이란게 뭔가요?"
왠지 모르지만, 자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신발의 사이즈가 깊은 의미를 갖는다면, 좀더 그것을 화제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질문을 했다.

"1부터 4까지의 자연수를 전부 곱해보면 24가 되지"
눈을 감은 채 박사가 대답했다.
"당신의 전화번호는 몇번인고?"
"576 의 1456 입니다"
"5761456이라고? 아주 멋진지 않나!. 1억까지의 숫자중에서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같다니!!"
매우 흥미롭다는 듯 박사가 끄덕였다.
자신의 전화번호의 어디가 대단한지는 이해가 안됬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함은 전달되어 왔다.
----- 본문 중에서 -----

박사는 늘 이런식이다. 어떤 것이든 숫자에 대해 묻고 그것의 대단함, 어떤 깊이 있는 인생론을 수와 함께 풀어낸다. 그리고, 주인공은 박사의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까닭에 매일 매일 같은 질문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질문을 해도 상대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장점이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어느날 박사가 그 사실을 알았을때, 아이를 매일 혼자 집에 놔두고,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아주 안좋은 일이라며, 그녀에게 아들도 함께 오라고 했다. 사실 그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박사가 워낙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박사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아들의 이름을 박사는 '루트'라 불렀다. 머리가 평평해서 루트 모양을 가진것을 보고 박사가 붙인 이름이기도 하지만, 루트는 어떤 숫자도 싫어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수를 품어안을수 있다는 점에서 박사가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기호였다.
심지어 허수까지도.....포함할수 있다는 사실까지.

이렇듯 박사에게 수학이란 어떤 공식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자 인생론이기도 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더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보통의 가정부들이 마다하는 이상한 노인이지만, 서술자인 주인공에 눈에 비친 박사, 또 그를 통해서 알게되는 수의 의미는 세상의 새로운 비밀을 알게되는것과 같이 신기한 것이기도 했다.



"어떤 공식에도, 어떤 숫자에도 의미가 있는데,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가엽지 않겠나?"


이 세상에서 박사가 가장 사랑한 것은 소수(1과 자신이외에 나눌수 없는 수)였다. 소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나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랑할 만한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한 것이어도,그가 사랑하는 방식은 정통적이었다. 상대방을 자비심을 가지고, 무상으로 대하고, 존경의 마음을 잊지 않으며, 때때로 애무하며, 떄로는 무릎을 굽히기도 하고, 항상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재에 있는 박사의 책상에서, 아니면 식탁에서 나와 루트(아들)에게 들려준 숫자의 이야기 가운데, 아마 소수가 가장 많이 등장했을 것이다. 1과 자기자신 이외에 나눌수 없다는, 일견 완고한 풍의 숫자의 어디에 그렇게 매력이 있는걸까, 처음에는 대부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소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박사의 태도의 한결같음에 매료되는 중에 조금씩 우리들 사이에는 연대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 본문 중에서 -------------


박사와 함께 낮동안 생활하게된 가정부 모자! 루트는 아버지 없이 혼자자랐지만, 박사와의 생활에 곧잘 적응했고, 박사 또한 매우 아이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루트는 한신타이거즈를 매우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박사 또한 75년까지 한신타이거즈의 팬이었다.

두 모자의 박사와의 유일한 커뮤티케이션 통로는 두가지, 하나는 수학이었고, 하나는 야구였다.
그러나, 야구는 그의 기억이 75년에 멈춰버린 까닭에,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 에나츠라는 선수가 그 이듬해 다른해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정부모자는 차마 이야기를 못한채 비밀로 해두고 있다. 물론 한번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은 박사의 충격으로 그들은 그 후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으며, 물론 그 일도 박사의 80분 기억의 한계로, 깔끔히 잊혀지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박사와 가정부, 그리고 그의 아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생활을 함께 하게 된다. 박사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수학과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섞이고, 지나다니는 세계를 견딜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은 하얀 눈이 내닌 들판처럼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또 단정해야만 했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박사는 외출 자체를 싫어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박사는 결국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이발소에 같이 가기도 하며, 마침내 박사는 루트와 함께 셋이서 야구 야간경기를 보러가게까지 된다.
문제는 야구경기를 다녀와서부터 발생한다.
야구경기를 다녀와서 박사가 열이 올랐고, 주인공은 간병하느라, 그날 파견회사에 보고도 하지 않은채 아이와 함께 밤을 샌것이다.

그리고, 건너편에 살고 있던 형수인 미망인이 그를 의심하게 되고, 그를 해고하게 된다.

그렇게 그 모자는 그 집을 떠나오게 되지만, 역시 박사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모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같이 공유했던 시간도 그에게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루트는 어느날 박사네 집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같이 읽으려고 허락없이 찾아갔고, 그것에 문제가 되어서, 미망인과 주인공과 심한 트러블이 생기지만, 그 자리에서 박사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안된다는 강한 어조와 함께 알 수 없는 공식을 놓고 집을 나가게 된다.

그후, 미망인의 오해가 풀렸는지 아니면 시동생인 박사의 반응이 신경쓰였는지 다시 주인공은 가정부로 복귀가 되고, 예전의 생활의 리듬을 되찾게 된다.

어느날 박사에 집으로 박사가 보낸 증명이 1등으로 선정되었다는 잡지사의 연락이 온다. 박사가 소일거리로 하는 것인 커다란액수의 상금과 함께 되돌아 온것이다. 그러나 박사는 기뻐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심해서 깔끔하게 추론해낸 증명의 시간의 축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박사에게 축하파티를 제안하고, 박사는 루트의 생일파티와 겸하는 것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로 흘러, 파티가 열리고, 주인공 모자는 박사에게 줄 선물로 박사가 너무나 좋아하는 에나츠 투수의 사진카드를 어렵게 찾아내서 선물을 하고, 박사는 또한 루트의 생일을 축하해줄수 있다는게 너무나 기쁘다는 듯 함께 시간을 보낸다.

파티가 있고, 다음다음날 박사는 전문의료시설에 보내지게 된다.
그전부터 형수가 신청을 해놓고 있었고, 빈 자리가 나자 갈 수 있게 된것이었다. 그리고 박사는 그 의료시설에 간 후부터 그나마 80분의 기억조차도 할수 없이,모든 기억이 75년에 멈춰진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러나 가정부모자는 때때로 찾아가고, 박사는 또 다시 소수의 이야기를 꺼낸다. 루트는 스무살에 되어서도 야구를 하다가, 마지막에 박사에게 수학선생으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 완전수 28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완전수란 자신의 약수의 합이 그 숫자가 되는 것을 뜻함.
28 : 1+2+4+7+14 = 28
가정부의 나이가 28이었고, 타이거즈의 투수 등번호가 2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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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일견 숫자와 인생에 관한 이야기 같지만, 실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나는 박사와의 시간이 계속 쌓여가며 그의 추억까지 그의 노트를 보고 알게 되고, 또한 루트 또한 따듯한 가정을 느낌을 갖지 못하고 자라다가 박사와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그런 시간의 축적으로 올바른 청년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박사는 매일 매일 늘 새로운 가정부와 아들을 만나게 되는것이다. 단지 전날 남겨놓은 메모만이 그들과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뿐, 상대에 대한 아무런 깊이도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수학의 세계에서 담담하게 살아간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내 나는 박사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인가, 또한 우리에게 기억이란, 존재란, 관계란 어떤 의미인가를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박사에게 기억이란 그가 대학시절 남긴 잘 정리된 수학풀이 노트와 한신타이거즈 팬으로서 모아놓은 사진 카드일뿐이고, 그것조차 박사 스스로가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고 느낌으로써 박사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소설에 나오는 수학 이야기는 덤으로 수학이 어렇게 즐거운 대화의 소재이자, 인생론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또 그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읽어가면서 알수 있게 된다.

저자의 문체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이나 정황의 포착, 그리고, 정서의 변화를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잡아낸다.

모순덩어리 같은 설정을 자연스럽게 3명의 인간관계를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의 재미와 인생의 깊이, 그리고 한없은 아이에 대한 사랑,또한 기억과 관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수작이다.


만약 여러분과 나, 혹은 부모와 자식, 회사동료, 친구간의 기억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
문명의 본질은 거대한 기억이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을 하고, 책을 만들고, 기술을 남기고.......그리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평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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