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돼지삼형제 3 - 공습

dangunee 2006. 7. 22. 01:39
                                                                           Reuben Colley - The Waitress

전편: 돼지삼총사 2편 - 발베개

1.
공습이 시작되었다.

이불베개로 아득한 우주를 여행중이던 우리는 순식간에 은하계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깼고, 아버지 손에 쥐어져 있던, 참나무 빗자루가 마구 날아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볼기짝으로 시작된거 같은데, 우리가 피하려고 말처럼 날뛰다 보니, 팔, 어깨, 머리까지...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태권브이 수중특공대, 84태권브이, 당시 어린이회관에 세워져 있던 마징가제트까지 마스터한 우리들이었지만, 이미 초합금 로봇보다 더 강력한 분노로 무장한 아버지의 폭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분명 그때 전기청소기가 나왔더라면, 그 굴찍한 두께의 나무 빗자루로 맞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날 저녁 우리가 소비한 안티푸라민 양도 조금 줄었을 것이다.

발베개를 모방한 이불베개로 시작된 돼지삼형제의 모험은 그날, 곡소리와 함께 파행을 거듭했고, 보다 못한  어머니까지 우리편이 되셨지만, 불가항력적이었다. 내 기억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맞아본 적은 그 이후에도 없는 것 같다. 삼형제라서 매를 맞기 시작하면 번갈아가면서 맞기때문에 한참 두들겨 맞고 나서 약간의 휴식이라는게 주어졌지만, 그러나 다른 형제가 맞는 잠깐의 시간은 오히려 공포를 확대재생산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던 공습이 한시간 정도로 끝나고, 돼지 삼형제는 눈부터 시작해서 안부은 곳을 찾는게 더 빠를 정도로 부어올랐다. 그때 난 피는 빨간 색인데, 왜 맞고 나면 피부가 파란색과 보라색으로 물드는지 한참 생각해보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그때 어른들이 대부분 그러시듯이, 공습후 훈화방송은 기본이었다. 이 사회의 비정함, 공부를 하지 못하고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었을때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지, 형제가 다 같이 잘 살아야지 혼자만 잘 살면 안된다고 몇번이고 강조하시던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분명 진실을 담고 있었지만, 그것은 심령술과 최면술, 프로야구, 우주비행사, 미래사회 이딴 것에 심취해 있는 우리에겐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일생의 고행끝에 깨달은 생로병사의 비밀만큼 어려운 이야기였다. 지루한 훈화방송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 있다면 형제들의 눈물이 범벅된 훌쩍거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이미 한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불베개의 효능은 사라진지 오래고 빨리 잠이나 잤으면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는데, 내 느낌상으로는 이제 아버지 레퍼토리상 마무리로 들어가는 시점이되었다. 조금만 참으면 푹신한 이불에 몸을 맡긴다고 생각하자 약간의 흥분이 일었다. 바로 그때 동생이 그만 시계를 보고야 말았다.

"이 자식이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시계를 봐!!!"

제 2차 공습이 단행되었다!! 눈치 없게....아 씨빌...동생을 원망해 보았지만, 그걸로 공습게임은 다시 한 30분은 더 연장이 되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의 12시 반이 넘어서 끝난 거 같고, 발베개로 사용되던 이불들이 차곡차곡 바닥에 깔리고 보라색 피멍이 단풍처럼 피어난 몸을 누였다. 발베개란 불씨가 성적이라는 화약에 올라붙고, 집안의 경제난과 함께 폭발한 전쟁이 끝난 것이다.

2.
"으이그 눈치껏 놀지."

새벽에 아버지가 주무신후, 어머니가 안티푸라민을 들고 오셔서 삼형제 몸 곳곳에 발라주셨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우리의 아둔함을 질책하는 모습이었지만, 자식새끼들 몸에 살색 찾기가 어려운 것을 보고 내내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가 종아리와 엉덩이에 발라주시던 손길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은 이십여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되었다.
뭐 그렇다고 아버지가 폭력적였다거나 그런건 전혀 아니다. 아버지는 현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반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그것도 사무직이었다. 아마도 당시 오르던 전세값에 대한 상당한 심리적 부담과 주말도 없이 일하던 고된 노동과 대책없은 우리들의 성적표가 환상적으로 조합하면서 만들어낸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초딩때, 부모님 맘에 쏙 들게 공부를 잘 못한거랑, 집안의 모든 이불을 다 끄집어내서 발베개 흉내를 낸게 그렇게까지 처맞을 일이라고는 생각이 안든다.

오히려 그일이 나에겐 하나의 브레이크가 되었다.  딸이 말을 안들을때,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손찌검을 하려고 할때, 한번 숨을 가다듬고 그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와도, 형이 이제 중학생이 되고 내가 6학년이 되던 85년에도 우리들 공부실력은 어중간하게 취한 사람처럼 애매했다. 하여, 이 돼지 삼총사를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게 된다.

친척중에서 꽤 공부를 잘 했다던 외가쪽 사촌형을 사령관으로 부임을 시킨 것이다. 사촌형은 대학생이었고,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 안되는 예비역으로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모님 집 사정이 어려워 우리들 교육을 맡는 대신에 생활비등을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팔뚝도 우리보다 3배는 두껍고, 우리를 태우고 팔굽혀펴기도 하고, 재미난 군대 얘기를 해주는 사촌형을 우리는 대환영했지만, 그것이 전세집 전체를 하나의 완벽한 병영체제 내부반으로 바꾸는 신호탄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셋 중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형이 깨달았다는 심령술, 예지술은 멀쩡한 애들 거품이나 물게 할뿐, 우리들 미래를 밝히는데는 도대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휴가때 우리집에 들렀던 사촌형은 제대후 정식으로 우리집에 왔고, 약간 색다른 변화가 있다면 새벽마다 사촌형이 틀어놓는 영어회화 테이프때문에 설잠을 자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5번씩 무슨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꼬부랑 말을 따갑게 듣고 있자면 그 아무생각 없다는 초딩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는 것을 깨닫게 된다.

                                                                                                            <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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