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스크랩] <도쿄맑음 8> 김치찌개를 끓이다.

dangunee 2008. 1. 29. 02:59

1.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침에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먹는다.
와이프가 다녀간 뒤에 두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김치찌개', 또 하나는 '카레'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김치에 물 붓고 쇠고기 다시다를 넣으면 맛이 그럭저럭 생긴다는 걸 알았고, 좀더 먹다보니 역시 두부를 넣는 쪽이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카레는 '감자' 등 야채 썰기가 귀찮아서 하지 않고 있지만 주말에 해볼 생각이다.

월요일에 식사할때는 '장미가 없는 꽃집'을 보고
화요일에서 식사 끝나고서는 '봄비맨'을 본다.

'장미가 없는 꽃집'에는 카토리싱고가 딸을 혼자서 키우는 홀아비로 나온다.

가짜 장님 역할을 하는 다케우치 유코에게 약간의 연애감정을 느끼는 싱고.
선배가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난 와이프를 잊고 새로 여자를 사귀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연애를 잊어버렸어요. 애 키우고 꽃집 하는 걸로 벅차요'
라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아이를 둔 아빠.

혼자 사는 나.
문득 딸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2.
떨어져 있어도 부모님에게 전화하는 것에 무심한 나지만,
딸아이 목소리는 하루에 한번씩 들어야 된다.

인터넷 전화로 한국 집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지만
오늘 하루 뭘 했는지
누구랑 놀았는지
아빠가 보고 싶은지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아내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3.
가족과의 전화 통화가 끝나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내일 가져갈 도시락 반찬을 준비한다.

아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밑반찬을 잔뜩 해두었기 때문에
멸치,오징어젓갈 등 진수성찬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냉동식품을 사와서 메인반찬용으로 잘라서 미리 반찬통에 넣어두는 것 뿐.
그러고 보니 아내가 다녀간뒤 전수 받은 것이 또 하나, 도시락 싸가기이다.

다음날 아침 쌀을 씻는다.
내가 사는 곳은 오래된 집이라 싱크대에서는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쌀을 주무를때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쌀까지 얹어놓고, 싱크대 위에 퐁퐁 자국을 지우고, 상을 닦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밥 차려먹고, 도시락 싸가고, 집에 와서 밥 차려먹고, 밥 해놓고.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세상의 모든 주부의 숙명이기도 한 것.
수험생 시절, 어머니가 나 보다 일찍 일어나셔서 쌀 씻던 20년전 새벽을 떠올린다.

그러다 문득 밥차리고 치우고, 게다가 아이까지 키우고 있는 아내를 생각해보면 뭐랄까,
어쩌면 내 삶의 무게는 좀 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세상에 혼자사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을 들어가 보게 된다.
묵묵히 가정의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의 마음을 차가운 설거지통에 손을 넣으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훗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문득, 일본을 무대로 자취하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그려보고 싶어진다.
힘든 경험일수록 진주처럼 진한 이야기가 배어나오는 법이니까.

창작은 힘들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일지도.....

출처 :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글쓴이 : 당그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