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한류는 역시,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

dangunee 2008. 10. 1. 01:49

1.
지난 토요일 저녁, NHK에서 태왕사신기 마지막회가 방영되었다.
겨울연가만큼은 화제가 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배용준 팬들은 욘사마를 브라운관을 통해 매주 만날 수 있었다는데 만족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주 아사히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아에라'에서는 '태왕사신기'의 영향으로 '코마신사(高麗神社)의 하나의 관광명소가 된 것을 소개했다. '코마신사'는 고구려 왕족이 일본에서 사절단으로 왔다가 고구려의 멸망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았는데, 그를 기리기 위한 신사다.

<아에라에 소개된 코마신사, 타이틀: 태왕사신기와 역사미스테리 - 배용준 드라마는 끝나지 않는다>

* 코마신사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블로거 이웃이기도 한 아마이코이님의 이 글로 -> 여기


2.
지난주 토요일 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한국어 공부가 1년반에서 4년정도 되는데, 대부분은 여성분들이 많다.

한국어 한류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보니,
여전히 한류스타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고 있었다.

드라마를 그리 많이 보지 않는 나에 비해 대부분의 작품을 섭렵하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내가 물어볼 정도였다.

내가 드라마 '궁'의 주인공인 주지훈과 '커피프린스1호점'의 주인공인 '공유'와도 헷갈렸는데, 그걸 정확하게 잡아내는가 하면, 그 동안 본 작품이 '허준','주몽'부터 '여름향기' '파리의 연인' 등. 리스트에는 강풀의 만화 '바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영역이 드라마 뿐 아니라 '동방신기'나 '에픽하이'등 가수들도 많았다.

한참 이야기하는 중에 '옹헤야'라는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무슨 드라마인가 했더니 '온에어'였다. 일본어로 'オンエア'라고 해서 '옹에아'라고 발음이 되는데, 순간 웬 신파극인가 했다. -_-;;

<아에라기사: 일본에 산재해 있는 곰,삼족오에 관한 신사 등에 기사 초점을 맞췄다> 

3.
그런데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있냐는 질문에 다들 영화는 별로 없다고 한다.

한때 영화수출이 붐을 이뤘던 때 보았던 '올드보이'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정도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본에서 왜 영화는 실패하고 드라마는 이렇게 길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는 알다시피 단발 승부다. 캐릭터의 특징을 느릿느릿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신속한 전개와 극적인 카타르시스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주연배우에 대해서 사전정보를 충분히 갖지 않는다면 봐도 그리 큰 여운을 남기기가 힘들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르다. 일본드라마가 쿨하면서 재미를 주로 추구한다면, 한국 드라마는 주로 여성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강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부터 신데렐라 스토리, 불치병 등. 이것은 한 때 한류붐이라고 했던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평론가들이 '한류 드라마'의 문제로 지적했던 것이다. 그래도 어느 시기가 지나면 한류가 꺼질 것이라고 했다.

2007년부터 한류에 대대적인 보도는 잦아들었으나, 이번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류'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실, 남루한 일상이야 비슷하다.  일본이 한국보다 더 많은 소득이 있고 사회가 안정되어서 살기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갖는 분도 있지만, 실제 이곳에서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란 사람에게는 일본이라는 공간은 그저 지루한 일상의 반복되는 곳에 다름 아니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론을 끼고 집을 사서 부지런히 일해서 갚아나가는...일본인가정이라고 해서 한국의 여느 가정과 그리 크게 다를 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들에게도 대리만족이 된다. 또한 드라마를 통해 건조해진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듣고 싶었던 사랑의 말들이 한류스타들의 입을 통해 나올때, 한국어 음성으로 직접 듣기 위해서 한국어 공부까지 시작하기도 한다.

즉, 한류는 하나의 탈출구로서 문화상품으로서 정착이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욘사마나 송승헌씨에 열광한 4-50대 아줌마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엄마를 따라 한국을 다녀온 딸은 '슈퍼주니어'팬이 되기도 하고, 케이블 TV를 통해 한국의 최신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2-30대가 대부분은 우리회사에도 한국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두명이나 새로 들어왔다. 한사람은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에 다녀왔으며, 또 한 사람은 고등학교때부터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가 있어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대학때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즉, 한류는 이제 대대적이지는 않지만 자기복제를 해나가는 중이다.

4.
 여기서 나는 한류가 일본을 뒤덮었다느니, 열광하는 사람이 늘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언론속에서든 일본언론에서든 한류 소식은 자취를 감췄지만, 한류는 꾸준히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배용준이라는 단 한 명의 배우에만 의지하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예전보다 깊고 넓게 퍼져있다는 뜻이다. (물론 배용준의 메가톤급 파워는 인정!!)

'태왕사신기'가 끝났다.
김종학 프러덕션이 예상했던 수익을 얼마나 일본시장에서 거둬갔는지는 모른다.


설령 '태왕사신기'가 애당초 부여된 한류 부활이라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의 파문이 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한류는 앞으로도 계속 일본사회속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역은 무엇보다 단기간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는 영화보다 오랜시간 안방 TV를 꿰차고 있는 '드라마'인 것이다.


* 한류에 빠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나도 드라마를 보고 싶어진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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