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의 흑백필름

영주권자의 입대와 아이

dangunee 2007. 6. 10. 11:11
1.
딸이 옆집 또래하고 노는게 한창이다.
오랫만에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 나는, 딸이 옆집 아이와 하는 대화를 듣는다.

"너 그렇게 하면 알아서 해!!'
이제 만 5살이 되는 딸은 어느새 어른들이 쓰는 말들까지 하고 있었다.
불과 9개월전만 하더라도 일본어가 더 자연스러웠던 딸은 한국에 들어온지 몇주만에 일본어를 더 이상 하려하지 않았고 이제는 거침없이 한국어를 내뱉는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아빠를 가르치는 말도 구사하게 되었다.

저녁에 동네 마실 나갔다가 길거리에 있는 한글 간판까지 읽어내면서 지난 몇개월간의 한국살이가 쓸모없지는 않았았음을 느꼈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저녁에 불을 밝힌 네온사인이 주로,

OOO노래빠, OOO노래방, 미녀상시 대기...

이런 것들 투성이라는 점이다.
딸은 자기힘으로 한글을 읽어내고는 아빠 여기 노래방이래, 들어가자...라고 꼬셨지만
온 가족이 OO룸빠에 들어갈 수 는 없었다. -_-;;

2.
어찌어찌 하다 보니 아파트 1층에 살게 되었고
옆집에 딸 '채현'이와 똑같은 나이에 성만 다르고 이름이 비슷한 '채연'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같은 나이의 또래가 생긴 탓에 일본에서는 혼자 놀기를 즐겨했던 딸 채현이는 눈만 뜨면 옆집 친구를 우리집에 불러서 놀거나 그 집에 가서 놀고 오곤 한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아이의 한국어가 무럭무럭 자라는데는 또래집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된다.
외국에서도 아이들이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그 나라 언어를 흡수하는데 그때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또래집단이라 할 것이다.

한국에 들어옴으로써 집에서 일일이 한국어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된 점과
옆집과 서로 경계하지 않고 왕래할 수 있다는게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 하겠다.

얼마 후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이렇게 맘껏 동네에서 모국어로 떠들면서 뛰어다닐 수 있을까.
환한 햇살이 비치는 6월 어느날 아이들과 싸우기도 하고 장난치는 딸을 보면서 다시 시작할지도 모르는 타향살이의 그림자를 읽는다.

3.
얼마전 kbs 수요기획에서 '3년의 기록- 안짱 또는 유상이, 그리고 안이병 '
를 내보냈다. 내용인 즉은 일본영주권자'가 한국 군대에 입영한 것을 다큐멘타리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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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의 저작권은 KBS 수요기획에 있으며, http://cafe.naver.com/docuworld 에서 캡쳐

오늘 인터넷 다시보기로 다시 한번 그의 다큐를 보았는데, 나는 영주권자인 그가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굳이 '군대'를 선택해야만 했는지 많은 부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늘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나라 사람과 어울리면서 살아도 무언가 스스로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는 어머니와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밖에서 일본어로 대화하지만 자기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국적에 대해서 근본적인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가면 굳이 자기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편안함, 근원적인 정서 같은 것을 그는 끌어안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영주권자인 유상이를 주위의 한국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않다. 그는 이쪽도 저쪽도 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에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다큐멘타리는 '일본영주권자'의 군대 입대를 다뤘지만, 나는 해외에서도 조국을 찾아 자진입대를 한 젊은이의 어떤 숭고한 용기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싶지 않다.  대신 그들이 한국군대까지 와서 확인해야만 했던 정체성, 그런 정체성을 갖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들이 외국에서 성장하면서 느꼈던 지독한 외로움을 읽었다.

다큐멘타리를 보면 호주영주권자, 미국영주권자, 일본영주권자 등 다양한 나라의 영주권자가 나온다. 흔히 외국영주권자 하면 우리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특권 쯤, 혹은 비자없이도 그 나라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물론 이것을 제대로(?) 활용해서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부를 챙기고 책임져야할 권리는 저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세상을 단 하나의 색깔로 채색할 수 없듯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땅에 건너가서 살아야만 하는 2세들도 적지 않다. 나는 안유상군의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한국사회가 좀더 다양한 스펙스럼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의미있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내 딸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안유상군도 일본에 건너간 것이 98년도.  10살때 건너갔음에도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더 자연스러운 경우다.
언어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 잡힐 시점에 그는 일본인 학교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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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의 저작권은 KBS 수요기획에 있습니다.

4.
내가 다니던 일본회사에서도 한국국적의 영주권자이면서 한국어를 못하는 '재일교포'가 있었다.
나처럼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일본에 건너간 사람과는 달리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사회에 중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일본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장인어른이 결혼을 허락할 당시
'일본으로 귀화를 하라'는 요청에 '그것만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한국에 가본 적도 없고,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그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그가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거나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먼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남도 어디메쯤이라는 것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결혼할때 한국 국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선택이 아니라 자기의 근본적인 뿌리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일본영주권자인 안유상도 분명 자기와 뿌리가 같은 사람들과 군대라는 틀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뿌리깊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5.
다시 문제는 나와 가족의 정체성으로 돌아온다.
세계화시대, 많은 이들이 한국을 떠나고 세계각지에서 삶의 둥지를 튼다고 이야기 되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어만 된다면 아무나라나 가서 아무하고나 쉽게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부모는 자신들의 미래를 포기하고 기러기아빠로 남기도 하고, 또한 이민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몰고올 삶의 변화와 가치관의 무게 또한 무시못한다.

아이는 물론 일본에 있을때도 일본애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잘 놀았지만, 아마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살게되고 본격적으로 성장기에 들어서면 그것이 그렇게 녹록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이중언어에 대한 고민없이 여러사람과 어울리는게 아주 자연스러운 공기같은 것임을 깨닫고 있는지 모른다.

주말 오후
소란스럽게 아이들이 한국어로 떠드는 목소리가 거실에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시끄럽다기보다 어쩌면 한국을 떠나서는 아이가 영영 맛볼 수 없는 어떤 풍경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리지르기도 하면서 보내는 지금 이 순간,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서 노는 이 순간이야말로 고국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와서 사진찍기나 아이에 관한 비디오 촬영을 거의 한 적이 없다. 이곳이 내게 너무나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다시 한국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이런 풍경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다음주부터는 귀찮더라도 짬이 날때마다 캠코더 녹화라도 해야겠다.

뿌리가 같은 사람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채색해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수채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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