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일본 한류팬을 화나게 하는 것들?

dangunee 2008. 3. 23. 12:54

1. 그날 강풍에도 시내로 나간 까닭

앞서 '도쿄전철이 강풍으로 멈춘다면'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주말이긴 했지만 강풍으로 전철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쿄시내로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날은 내가 관여하는 한국어 교실 신년회(에구...늦기도 하지, 새해 밝은지가 언젠데)겸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냥 신년회였다면 안 갔을 지도 모른다. 신년회가 열리는 장소가 송승헌 팬인 일본아주머니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 8년정도 살면서 일본인집은 회사 상사 집부터 한국인,일본인 부부 집, 혼자 자취하는 회사 동료집, 동거하는 일본인 후배집 등 곳곳을 섭렵(?)해본 나였지만 한류팬인 일본사람 집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풍이 몰아쳐도 기를 쓰고 가야하는 이유가 나에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전에 '한류열풍이 끝났나'라는 글을 올린 것도 있고 해서 직접 한류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도 있었다.

2.도심 속 맨션안은 한국!!

강풍으로 한시간 늦게 도착한 터라 이미 술을 몇잔씩 들어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방안에는 한국 음식이 정성스레 장만이 되어 있었고, TV브라운관에서는 내가  거의 듣지 않는 SG워너비가 열창을 하고 있었다.
 뭐 그렇다. 회사에 한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고 맨 일본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살다보니, 그냥 코타츠(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오이김치'랑 한국노래만으로도 고향집 안방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 일본인들은 상추를 잘 안먹는데 상추가 가득.(물론 가게에서는 판다). 그리고 오이김치.

문득 '누가 뭐래도 고국은 어떠 거역할 수 없는 편안함을 준다'
고 생각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와이프가 만들어놓고 간 김치와 깍뚜기로 때우는 나로서는 '일본사람'이 만든 '오이김치'의 비법이 궁금했다.

당그니: 이거 어떻게 만든거에요?
야마시타(가명): 아 그거 오이 무치는 양념가루를 따로 팔아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역시 필요한 것은 다 들어오는 구나. 한국식으로 제대로 속이 잔뜩 든 오이김치가 더 낫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는 몇개월만에 '오이김치'를 입에 넣었다.

방안에는 송승헌 사진이 가득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송승헌 사진이 붙여진 벽쪽을 찍자...
야마시타씨가 한마디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찍어요?'

당그니: 아 그냥 TV나 기사로만 '보여지는 한류팬'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생생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담으려구요!!

그러고 보니 사실, 그 시간은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속으로 축구시합을 보고 싶었으나, 텔레비젼에서는 한류 스타들이 신나게 열창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사진> SG워너비 열창 중

당그니: 저거 DVD에요?
야마시타: 네.
당그니: 저거 집에 오시면 종일 틀어놓으세요?
야마시타: 네
당그니: -_-;;
          야마시타씨가 분명 저보다 한국연예계를 더 잘 아실 겁니다.
          저는 요즘 누가 유명한 지도 잘 몰라요.
야마시타: 저처럼 하루종일 보면 되요!
당그니: -_-;;(출근해서 돈 벌어야 함)


SG 워너비의 노래가 끝나고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라고 감사인사를 하자

야마시타: 역시 한국가수들은 '고za이마스' 를 '고ja이마스'라고 발음 하는 군요. 저번에 나와서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 멀었어요^^
당그니: 네 그게요 ざ에 해당한 z 발음이 한국어에는 없거든요
야마시타: 뭐 일본 사람들이 '안녕 하시무니까'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당그니: 그렇스무니다!!


3. 한국에선 포장마차가 그렇게 인기?

강풍으로 그날 파티는 한국어 강사 사코다씨, 한류팬은 야마시타씨, 그리고 같이 공부하는 야마다씨, 사치코씨 이렇게 네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조촐한 파티.

이 세명이 한류에 빠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야마시타씨(50대)는 겨울연가를 거쳐 송승헌에 안착을 했고, 사치코씨(30대)는 친척이 한국사람과 결혼을 해서 그걸로 관심이 생겼고, 야마다씨는 한국에 여행을 갔다와서 관심이 생긴 경우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야마시타씨를 제외하고도 역시 언어를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 문화에 접어들게 된다.

음식을 먹어보니 의외로 맛이 있었다. 자주 만들어본 솜씨다.
내가 칭찬을 하자 이번에는 준비했다는 듯이 김밥을 가지고 온다.
김밥 안 색깔이 보라색이어서 약간 수상했지만
시금치부터 계란 등 배합이 영락없는 한국 김밥이었다.

야마시타: 이거 다 드셔야 되요!!
당그니: 네... 지금 부지런히 먹고 있습니다.

한국인인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갑자기 파티는 한국 드라마 Q&A 코너로 둔갑하였다.

야마시타: 저기 질문이 있어요!
당그니:네 뭐에요?
야마시타: 한국 드라마를 보면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사람들은 포장마차를 참 좋아하나봐요. 저는 한국 가면 꼭 포장마차를 가보고 싶어요. 저번에는 그냥 명동만 다녀왔는데...
당그니: 네? 포장마차요?
          그거는 드라마니까 그렇죠. 한국에서는 낮에 잠깐 나가서 떡볶기나 오뎅을 사먹는 일은 많아도 그렇게 술마시러 포장마차에 가는 일은 드물어요. 있다면야 기업형으로 하는 곳이고 특정 장소에 가야 있어요. 종로라던가.
야마시타: 역시...드라마라서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포장마차를 안 간지도 10년이 넘었구나. 서울에서 회사다닐때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고 나서 끝내 집에 가기를 거부한(?) 인간들이 남아서 인생을 안주삼아 술인지 물인지 맛도 모르고 마셨던 곳. 그러나 결코 요즘 동네에서 포장마차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드라마에 비치는 근사한 이자카야(선술집)란 아저씨들이 술먹고 끝내 할 이야기나 남아서 들르는 동네술집이지,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이자카야란 대부분 체인점이고 차분한 분위기는 커녕 씨끌벅적해서 돗대기 시장 같다. - -!  

자,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다.

당그니: 저기 태왕사신기 보고 계시는 분?
야마다씨.(30대)가 손을 든다.
당그니: 어때요? 지금 몇편까지 했죠?
야마다: 그냥 그럭저럭 재미있어요.
당그니: 저도 한국에서 좀 보다 왔는데요. 음...재미있다고 해야하나^^
이때 야마시타(50대)씨가 갑자기 든다.
야마시타: 그거 나도 보고 있는데, 뭐랄까 내용은 좀 썰렁하긴 한데요. 역시 욘사마는 이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배우랑 달라요. 윤태영의 연기도 멋있지만, 역시 욘사마는 이 아우라(オーラ)가 달라요.

 * 아우라: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영적인 느낌이나 독특한 분위기

당그니: 하하 그게 그래요. 한국 팬들도 어떻게 '태왕사신기'배우 중에서 '배용준이 제일로 예쁘냐고 ㅜ.ㅜ
야마다: 그래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야마시타: 저도 처음에 한류, 한류 하길래 뭐 그런 걸 가지고 난리법썩이냐고 생각했는데, '경울연가'를 보고 경악! 눈물이 펑펑....그러고 있는데 누가 권하더라구요. '가을동화'를 한번 봐보라고. 그래서 봤더니 송승헌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당그니: 어떤 의미에서 '배용준'씨는 한류 드라마로 빠지는 관문과 같은 것이군요.
야마시타: 뭐 지금은 오로지 송승헌이죠^^. 3월 20일에 승승헌 영화 <숙명>을 보러 한국에 갑니다.
당그니: 아 송승헌 영화 개봉하는 군여....(오히려 일본사람들을 통해서 한국 연예정보를 -_-)


4. 티켓 값이 너무 비싸!!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참이슬 등장.
일본사람들은 소주를 그냥 먹지 않고 얼음에 넣어서 위스키처럼 마신다.
나는 맥주를 다 마시고 취한 상태로 참이슬을 한국식으로 얼음 없이 컵채 입에 털어넣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방안에 있는 책장에 눈길에 갔다.
책장에는 절반 이상이 한류드라마 대본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사진> 송승헌의 비밀부터, 또하나의 겨울연가, 겨울연가 상하, 첫사랑, 천국의 계단, 호텔리어 등...

한류 상품이 돈이 되는 이유다.

드라마가 하나 히트를 치면 일본에서는 DVD 및 관련 책자가 쏟아지고, 그 대사를 엮은 책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다시 한번 대사를 음미하고 싶어서이다.  야마시타씨는 한류드라마에서 누가 무슨 대사를 했는지도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도 책 한권을 빼들고 대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한류 관련 이야기를 하다보니
현재 일본내 한류팬의 불만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들 입을 모아서 하는 이야기가 한류 배우들이 일본에  와서 팬미팅을 하는 티켓값이 일본의 유명배우보다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일본 탑 클래스 배우도 9천엔 정도임에 비해, 한류스타는 보통 만3천엔 정도. 게다가 좌석도 거리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일률적으로 금액이 똑같다.

물론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좋아하는 스타가 오면 가긴 가지만 아주머니들끼리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한국쪽 기획사가 노리는 것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비싸도 결국 올 사람은 온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계속 되면 팬이지만 하나둘씩 떠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일본 내 한류가 좀더 지속되지 않고 하나의 붐으로만 끝난 것은 이렇게 당장 눈앞에 이익만을 노리고 달려드는 기획사가 많아서가 아닐까.

실제로 한류가 뜨기 전부터 한류쪽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왕래했던 한 일본사람에 의하면 처음에 '원빈'사진의 경우는 그냥 가져가라고 몇장씩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겨울연가가 히트를 치고 나서는 '고자세'로 바뀌면서 너무 값을 비싸게 매기기 시작, 일본내 시장을 급속하게 얼어붙게 한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한다.
 
요즘에 일본사회 전체가 한류로 들썩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팬을 중심으로 꾸주히 인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기획사가 적어도 티켓 값은 일본 배우 수준으로 맞추고, 좌석에 따라 차등을 두는 등 현지 실정에 좀더 맞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5. 한류가 끝나고 안끝나고는 중요하지 않다.
 
역시 막판에 들이부은 참이슬은 강력했다.
이외에도 즐거운 대화가 계속 되었지만, 11시이후로는 기억이 안난다. -_-;;
결국 근처에 있는 사코다씨 집에 가서 신세를 진 다음, 술이 안 깬 상태로 일요일 집에 돌아왔다.

아침,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뻗었고, 술이 깬 오후...
나는 우연히 외투가 평소보다 묵직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야마시타 아주머니께서 정성스럽게 랩으로 싸 주신 김밥 한줄이 들어있었다. 

ps.
야후 블로그에 제가 쓴 '일본 속 한류 붐 끝났나'늘 글에 대해 spark라는 분이 현 상태에 대해 설득력있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여기에 첨부합니다.


한류 붐이 끝났다고 말씀하시면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한류가 일본 사회에 정착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는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추어서 굳이 매스컴에서 한류를 다룰 필요가 없어진 것이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 사회는 편의점에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항상 비치하고 있는 이른바 테이방 상품 (定番商品)의 수는 적고 대부분 spot(スポット) 상품입니다.
 이런 spot상품들 중에 지속적으로 매출을 유지하여 定番商品의 지위를 얻는 상품은 극소수입니다. 한류도 마찬가지로 매스컴 입장으로는 spot상품으로 내놓았으나 당초 예상 이상의 실적을 올렸기 때문에 이미 定番商品의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류 붐 이전에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가 남들이 보기에 괴짜 취미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주위에 누구누구가 한류 팬이라는 얘기를 들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

 한국과 전혀 관계 없는 일본 연예인들만 등장하는 토크쇼 등에서 배용준이나 권상우 얘기에 꽃을 피우는 여자 연예인들… 코미디 쇼에서 심심찮게 패러디 대상이 되는 겨울연가… 이런 점에서 한류는 이미 定番이 되었고 다시 붐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한류와 다른 종류의 한류가 되지 않을 까 라는 생각입니다


spark님 블로그 주소: http://kr.blog.yahoo.com/ppao2



 

저의 세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도쿄를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일본어와 친해진다
->
도쿄를 알면 일본어가 보인다!!! 고고싱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