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의 흑백필름

[스크랩] 매미가 일깨워준 여름

dangunee 2005. 8. 21. 01:42

 

1. 휴가날 채현이를 데리고 보육원에서 돌아오는 길

맴맴맴맴맴매에에......

 

 단지내 울짱한 숲을 지나갈때 채현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시끄러워"

 "채현아 시끄러워?"

 "응"

 "채현이 매미 싫어?"

 "매미 싫어"

 "왜?"

 "매미 무서워"

 

채현이가 매미가 싫은 건 검고 덩치도 크고, 특히 집앞복도 아무데서나 드러누워서 꼼짝도 안하기 때문이다. 난 그런 채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채현아 매미가 저렇게 우는 것은 이번이 그들 생의 마지막 여름이기 때문이란다'

  '나니(뭐라고)'

  '매미는 있잖아. 긴것은 땅속에서 17년이나 보내고, 세상에 나온단다'

  '나니(뭐라고)'

   

    어른들의 개념어로 가득찬 독백을 채현이가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는 먼나라 동화를 들려주듯 아이에게 독백을 계속한다.

   '매미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내는 이 여름이 서러워서 저렇게 우는 걸꺼야'

   '매미는 긴 터널을 건너 세상에 나오보니, 난생 처음 보는 눈부신 햇살과 시원한 빗줄기, 그리고 정처없이 흐르는 구름을 잊을 수 없어서 저렇게 울어대는건데, 니가 그렇게 싫어하면 되겠니' 

   '매미 코와이(무서워)'

   '매미는 채현아. 지상에서 지금 그들의 마지막 노래를 남기고 있는 거란다.'

  

    긴 인생의 봄을 이제 막 시작한 채현이가 저들의 노래를 알까.

    곧 있으면 먼지가 되어 사라질 저들의 긴 절망의 눈빛을 기억할 수 있을까.  

 

2.

    짧은 터널처럼 단지내 숲을 지나 자전거는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채현이와 선문답을 하다 보니, 문득 매미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여름이면 한때 시끄럽게 울다가, 생을 마치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서 가루가 되어버리는 매미.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장해제되어서 죽어버린 매미를 보다보면, 난 그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목놓아 울어댈꺼면 죽을때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생을 마쳐줘.'

    이미 영혼이 떠나간 껍질만 남은 매미들의 무수한 시체속에서 이런 바램도 때때론 부질없는 것이다. 그래, 너희들과 함께 올해 여름도 이렇게 지는구나.

   

   밤이 되어도 매미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요구사항 많은 내게 매미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언제 넌 이렇게 나처럼 목놓아 울어본 적이라도 있니'  

  

 

3.

   매미의 울음이 멈추는 날, 이 여름도 끝이 날 것이다.

 

   내가 눈부신 이 세상에 태어나 아이와 함께 보낸지 3년이 된 어느 여름날에....

 

 

그림: Le_Chemin_de_l_espoire

출처 : 비공개
글쓴이 : 익명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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