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돼지 삼형제 2

dangunee 2006. 7. 20. 01:41

                                                                        Edward Hopper_Night window1928

돼지삼형제1편
먼저 필독

1.
  지금 생각해보니 날씨가 추웠기는 추웠나보다. 열심히 역할 분담하여 물을 부어댄 탓도 있었지만 물을 뿌리면 얼마 있지 않아서 얇게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도물을 철철 넘치게 하면서도 열심히 퍼 나른 덕택에,

  1시간 만에 미니 스케이트장은 완성되었다.

  우리집은 불교신자여서 주기도문은 몰랐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걸 암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셋다 얼굴은 빨개지고 콧물이 입가로 흘러서 짠맛을 느끼게 했지만, 이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기만 하면 되는 근사한 스케이트장이 생긴 셈이었다. 동네 애들이라도 불러올까 하다가 너무 늦고 그래서 삼형제끼리만 놀기로 했다.

"형아 봐봐. 이거봐 잘 미끄러지지"
1.5미터 정도 폭이었지만, 우리는 순서대로 넘어지지 않고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개구리눈깔같이 생긴 초인종을 누군가 눌렀나보다. 닭모가지비트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날아들었다.

"옷..누구지? 엄만가?"  "누구세요"
창문 열고 자시고도 없었다. 문앞에 이미 우리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엄마야"
"와 엄마 오셨다. "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도 모르고, 우리가 이걸 완성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는 듯이 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1시간에 걸친 대공사의 결과물을 보여드렸다.

"엄마 이거 보세요. 우리가 스케이트장 만들었어요!!"
"뭐야? 이게. 이거 물뿌린거야? 얼었네!"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스케이트장의 얼음이라도 갈라질 것 같은 큰 소리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니 이걸 지금 왜 만든거야. 누가 하자고 그랬어?"

자식들 저녁이라도 챙겨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 앞에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꽁꽁 얼은 바닥하며,  집안에 있는 바께스, 다라,대야, 큰 냄비등 물을 담을 수 있는 도구는 모조리 외출을 나와서 나뒹구는 모습이었으니, 현기증이라도 날 법 하셨을 거다.

"밤에 다른 방 사는 사람이 들어오다가 넘어져서 머리라도 깨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머니의 호통과 함께 미니 스케이트장은 을씨년스럽게 분위기가 바뀌었고, 순식간에 우리는 돼지삼형제에서 닭삼형제로 둔갑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커다란 솥에다 물을 끓이셨고, 우리는 어느정도 김이 올라올 정도가 되면 바가지로 퍼서, 빗자루로 얼음을 녹여야만 했다. 다시 한시간이 소요되었다.

  내내 열심히 만든 스케이트장을 뜨거운 물로 부어서 녹일떄마다 내 심장이 녹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가 무서웠던 그때 다른 수가 없었다. 스케이트는 커녕, 미끄럼을 탄것은 5분정도밖에 안되는데 돼지삼형제가 공사와 복귀하는데 들인 시간은 족히 3시간은 들었던거 같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먼저 집에 들어오셨기 망정이지, 아버지가 먼저 오셨다면 분명 집안에 있는 빗자루 두대 정도는 아작이 났을 거라는 것이다.
하긴 그런 공포의 시간은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후에 먹구름 이동하듯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좀 있다 이야기하기로 하기로....

 

 


2.
  삼형제는 스케이트장 사건 이후에도 노는 것에는 전력을 다했는데, 그때 한창 유행하던 깡통모아서 전화기 만들기, 무슨 미니 뗏목만들기 등 시간을 때우다가 급기야는 심령술, 최면술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언제인가, 우리 셋중에서 가장 탐구심이 왕성했던 형은 어디서 구해온 책으로 드디어 최면 및 심령술을 완성했다. 한마디로 소년 '돌도사'가 탄생한 셈인데, 형의 설명에 따르면, 상대에게 최면에 걸리게 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를 벽에 기대게 한 후 뭐라고 정해진 주문을 외우고 상대의 가슴을 10초-20초간 누르는 것이다. 우리는 즉각 실험에 돌입해서, 옆집 아이를 대상으로 해보았는데, 진짜 쓰러지고 말았다. 녀석은 한참동안 쓰러져서 우리가 뺨을 때려도 못일어나길래, 급한 마음에 아주머니께 달려가 불러온뒤 겨우 일으켜 세워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했다.
옆집은 당시에 아무나 탈 수 없는 스텔라 자동차를 소유한 사장님 집이었는데, 이른바 철모르는 돼지삼총사가 사장님 아들을 인간마루타로 사용한 것이었다. 다행히 부모님 선까지 가지 않고,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주의를 주는 정도로 끝났는데, 만일 녀석이 쓰러져서 영영 못일어났다면, 소년원에 들락거렸을지도 모를 뻔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 즈음 해서, 집안에 한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어머니께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에 식료품가게를 운영하시기로 한것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봉급만으로는 이제 장남을 필두로 줄줄이 중학교를 입학을 앞둔 자식들 교육비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이제 동네 골목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시 외식이라고 하면 반포동 돈까스 집에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적어도 행동반경이 2킬로는 넓어진 셈이고, 싸구려 잡화들을 파는 가게가 많았지만 그래도 활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엄마가 계신 가게에 가면, 사발면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가서 일을 도와주러 간다는 핑계로 도착하면 가장 먼저 라면 코너에 먼저 눈길을 주는게 첫번째 일과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삼형제의 눈길을 끈 것은 터미널 지하에 생긴 대중 목욕탕. 아버지가 우리 셋을 데리고 가셨는데, 동네 콩알만한 목욕탕보다 몇배는 더 큰 규모하며, 잘 깔린 타일 등 아이들 눈에는 새롭기 그지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이 바로 '발베개'였다. 높이가 60cm 정도 되고, 1미터 정도 너비로 부피는 크지만 발을 올려놓으면 푹신한 베개였다.
  당시 베개하면 '머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발베개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거기엔 '모든 건강의 근본은 발'이라고 근사하게 쓰여 있어고, 우리는 새로운 지식까지 덤으로 무장을 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집으로 돌아온 삼형제는 터미날 목욕탕에서 본 신통방통 발베개를 잊지 못하고, 집에서도 재현을 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있는 온갖 이불은 다 꺼내서, 차곡차곡 3-4개씩 쌓았고, 발베개보다 푹신함은 덜하지만, '인생의 모든 피로'를 날려버린다는 모토하에 형과 나, 그리고 동생 이 셋은 차례대로 누웠다.

그때가 그러니까 안좋은 성적표를 받아가지고 온지 얼마 안된 날이었고,아버지는 평일에는 회사로, 주말에는 터미널로 동분서주하며 휴식없는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우리가 일찍 돌아온 이유는 밀린 공부라도 하라는 것이었는데...발베개 대용 이불베개의 효능이 좋았던 것일까. 불행히도 그날 우리는 셋다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렸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발베개를 타고 달콤한 꿈나라 여행을 하는동안, 개구리 눈깔이 외쳐되는 닭모가지 비트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았다. 가게 문 닫으면서도, 자식들 공부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주말인데도 장사를 하시고, 10시가 넘어서 집앞에 선 아버지가 누른 벨 소리였다.

"삐리리리리리리....."  

드르렁...........피유우.....  
                                                                                     
                                                                                                                   < 계 속 >

'인생의 갈림길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 삼형제 4 - 태풍의 눈  (0) 2006.07.24
돼지삼형제 3 - 공습  (0) 2006.07.22
돼지 삼형제 1  (0) 2006.07.19
미희네집  (0) 2006.07.14
그해 폭우  (0) 2006.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