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의 흑백필름

아빠와 딸3. 언어공부에 공짜는 없다

dangunee 2006. 10. 19. 20:36
추석때 활짝 웃고 있는 채현이와 조카 세진이(맨날 혀를 내밀고 있어서 일명 '둘리'라 불림)

1.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주로 썼던 언어가 일본어여서 그런지
나는 딸이 커갈때마다 걱정이 많이 되긴 했다.
제대로 한국어를 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작년 12월에 잠깐 한국을 다녀온 후로 집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한국어를 쓸 수 있었고, 오히려 일본어 억양도 한국어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8월말 귀국을 하고 나서는
아이가 도통 일본어를 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당연하다. 일본어를 쓸 환경도 쓰는 사람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어로 말을 걸면 아이는 알아듣기는 하지만, 한국온지 한달 반만에 제대로 표현도 못한다.

2.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이가 일본어를 잘 하게 된 것이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주변 환경이었듯이,
지금은 그렇게 공짜로 얻은 언어를 훌훌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외국어를 접할 때 여럽게 공부해가면서 익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준에 통달하면 웬만해서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세미만의 아이들은 다른것 같다.
반응하는 액체에 따라서 색을 나타내는 리트머스 용지같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환경에 따라 반응한다.

딸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안타깝다기 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언어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 만이 아니라, 생활이 묻어나는 것.
딸이 일본보육원을 다닐때는 그것이 생활의 반영이었으므로, 그 나라 언어는 딱 달라붙은 옷 같은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영 불편한 옷이 되고 말았다.

대신에 딸은 한국어 영 어색했던 감정 표현 및 다양한 톤의 우리말을 마구 흡수하고 있다.

그래! 이때 모국어를 낙엽 쓸어 모으듯 실컷 담아두길 바란다.

나중에 커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때, 그렇게 유년시절에 흡수한 모국어로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줄 수 있을 정도가 될때까지....

그 뒤에 이 아빠가 지켜보고 있으련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
동화책을 저녁마다 읽어주지 않아도 늘어가는 딸의 한국어 솜씨가 날로 기쁘기만 하다.
아니 무엇보다
집에서는 반드시 한국어를 써야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이 편안함이 나는 너무도 좋다!!

그럼 일본어는?
.
.
.
뭐 팔자려니 해야지 ㅋ.

이틀전에 머리를 볶았다. 본인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편. 우리는 머리 안 묶어줘서 좋고.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


관련글 : 아빠와 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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