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6년의 시간, 인간으로 만나다!!

dangunee 2007. 7. 20.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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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맙습니다.

내가 그에게 '일본인들이 한국어로 번역한 첨삭과제에 관해서 체크한 내용'을 보내면 그는 늘 이렇게 '한국어'로 회신을 보내곤 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그는 일본인인데 우리는 메일을 주고 받을 때나 전화통화를 할때나 주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그가 한국에 2년간 어학연수차 체류한 경험이 있고, 현재 일본내 한국어 개인레슨 강사이기도 하며, 동시통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사람하고 이야기를 할때면 언제나 한국어를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일본에 있었을 때 그에게 더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은 것 같다.

2.
사코다상
(씨를 쓸까하다가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때도 상으로 불렀기 때문에 그냥 상으로 한다.)
내가 사코다상을 처음 만난 게 된 것은 일본 체류가 만으로 1년 남짓되던 해 1월이었다. 근 1년만에 한국을 다녀온 초짜 유학생에게 아는 선배가 국제전화로 나를 그에게 소개시켜줬기 때문이다.
 
'어 그가 한국에 있을때 나랑 언어 교환학습을 했거든. 근데 내 일본어는 안늘고, 사코다씨의 한국어만 늘었더라구. 왜냐면 맨 한국어로만 떠들면서 술을 마셨기 때문이지'

사코다씨는 신쥬쿠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후쿠오카식 돈코츠 라면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한국에 처음 온 일본인에게 내가 고기집으로 우선 데려가는 것처럼, 그는 꾀죄죄한 유학생에게 본인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일본라면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는 당시 재일교포로서 일본사회의 차별에 당당히 맞서고 있고, 사내연수프로그램을 주로 운영하고 있던 신숙옥씨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발간 예정이었던 신숙옥씨 저서, '사랑과 미움의 한국어(愛と憎しみの韓国語)-문예춘추사'라는 책의 보강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작업에 생생한 한국정보를 물고온 나는 아주 적격이었다.
 나는 한국의 입시풍경, 양반문화, 연애풍경, 축구응원문화 등을 그 책의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아는 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한국'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만났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만 준 것은 아니다.
 나도 '일본어'나 '일본'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을때마다 그에게 물었고,그는 나에게 일본사회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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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처음 만난 곳, 도쿄 신쥬쿠

3.
 사코다상과 더욱 친하게 된 계기는 내가 그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다. 굳이 다른 동네가 아닌 그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했던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일본어를 아직 잘 못하는 '아내'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한달 배우고 온 '와이프'에게는 정신적 부담감을 갖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했는데 다행히 사코다상 부인은 성격이 활달하고 결정적으로 한국어를 하지 못했기때문에 일본어 선생으로서 적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가르친 것은 아니다.

주말이면 한번씩 두 부부는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내는 먼저 육아를 담당하는 선배로서 사코다상 부인은 일본어 선생으로서 잘 어울렸다. 아내는 그 후로 보통 일본인들과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고 어느새인가 휘트니스센터에 가서도 친구를 만들어서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4.
사코다상이 단지 한국을 좋아만 하거나 한국어 선생이었다면 어쩌면 더 깊게 친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일본인이라면 음흉하거나, 겉과 속이 다르거나 호의에 대해서 한번쯤 의심을 해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끔 농담으로 한국을 또 침략하려고 한국어로 배운다고 -_-;;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일본인들의 '혼네'와 '다테마에'에 대해서 일본인들조차 서로의 속을 몰라서 어려워하는 마당에 한때 가해자였던 일본인에 대해서 피해자였던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어' 선생이자 '통역사'이기 전에 세상의 모든 차별과 싸우는 활동가이다. 그는 한일양국의 독도문제가 터졌을때 일반적인 일본의 진보그룹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포기하고 무관심해할때,  
독도가 왜 한국땅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시민단체 성명 를 발표하고 일본 사회내에서 미약하나마 주위를 환기시키는 활동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회사가 한국에서 갑자기 폐업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버렸을때 일본으로 원정투쟁 온 한국인 근로자들을 지지 지원하기도 했고, 재일교포의 권익 문제나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와 함께 다니면 식민지시대에 끌려와 도쿄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던 '재일교포의 삶'을 구석구석 돌볼 수 있는 시야를 얻기도 하고, 함께 전철을 타고 아라카와 강을 건널때 '관동대지진때 조선인을 학살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면 역사는 여전히 우리곁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일깨워주곤 했다. 또한 일본에는 꼭 계산적인 사람만 있는게 아니라 따듯한 피가 함께 흐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다양한 모임을 통해 소개를 시켜주기도 했다.

5.
나의 일본어 선생이 사코다상이었다면, 사코다상의 한국어 선생은 나였는데, 우리는 실은 그걸 핑계로 주말마다 술을 코가 삐뚤어지게 마셨다. 웬만해서는 집에 친구를 들이지 않는 그이지만 나는 밤 11시고 12시고 찾아간 적도 있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하곤 했다. 그는 한국사람들이 땡기면 쉽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한국유학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관계야말로 건강하다고 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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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나미 -白波 일본소주 이거 하나면 오케이

 그는 자기 성을 한국어로 바꾸면 '박'이라고 하면서, 고향이 큐슈니까 어쩌면 임진왜란때 조선에서 자신의 조상이 건너온게 아닐까라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사코다상 부부와 함께 우리 부부는 없는 살림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온천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고 벚꽃이 만발하면 일본식, 한국식으로 음식을 준비해서 근처 공원에 나들이를 가서 거나하게 취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는 없었다.

 나는 그를 통해
일본사람들에게 한국어 공부 이유를 묻기 도 하고, 한류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며 그냥 회사만 다녔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책과 텔레비젼 방송, 회사로만은 만질 수 없는 일본사회의 '맨얼굴'을 만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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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살던 집. 지금은 이사를 갔다.

6.
 지난해 5월 개인적인 고민으로 한국에 들어갈까 생각을 했을 때였다. 그 새벽 나는 지난 몇년간의 외로웠던 일본생활과 적당한 취기를 빌미로 눈물을 쏟고 말았는데, 그 또한 공원벤치에서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나보다 10살이나 많은 분이..-_-;; 일본인이라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급기야 지난해 8월에 일년간 한국에 돌아갈까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자기에게는 '한국어'선생이 떠나가서 아쉽기는 하지만 '당그니'씨에게는 너무 잘된 일이라며 축배를 들자고 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리라.
같은 동네에서 5년간 어울려 지내며 자전거 한달음이면 만날 수 있었던 삶의 공간이 그 길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대신 한국에 가서도 일본어 첨삭은 메일로 보낼테니 해주셔야 해요'

라고 이야기 했다. 일본어 첨삭이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일본인이 한달에 한번씩 일본어지문을 보고 한국어로 옮기는 과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 번역상 틀린 것이 없는지, 문장은 부드럽게 연결되는지를 체크해주는 일이었다. 일본어 체크는 그가, 한국어 체크는 내가.그 일은 그와 내가 알고 지낸 시점부터 계속되었는데 내가 일본을 떠나서 한국에 간다해도 인터넷 메일로 계속 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나는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도 계속 그 작업을 해왔는데, 지난 6월에 마지막 첨삭과제가 메일로 와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는 지난 5월에 한국에 잠깐 방문했었는데, 그때 내가 품은 많이 들고 그리 크게 수익이 안되는 첨삭보다는 한국어교재를 쓰시는게 낫지 않냐고 조언을 했는데 그말 그대로 하청을 받아서 하던 첨삭 아르바이트를 정리해버린 것이다. 어찌되었든 마지막 첨삭과제를 처리해서 보낸 후에도 그는 어김없이....

'고맙습니다'  

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난 문득 '고맙다'는 문장을 읽을 때 내가 그에게 보낸 메일에는 별로 고맙다는 말을 쓰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외국에 살다보면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만들기일 것이다. 혹은 현지에서 맘편하게 지낼 수 있는 어떤 격려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지난 6년간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은 일본인 친구가 한명이 있다.
 회사에도 몇몇 친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사코다상 정도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사코다상 또한 지금도 한국어에 관해서 잘 모르는 것이 있을때 주위에 아는 한국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국제전화를 걸어서 정확한 뜻을 물어보곤 한다.

 내가 다시 낯선 일본땅으로 복귀하려는 까닭 중 하나에는 분명 사코다상 그곳에 있기때문이라는 것을 부정 못한다.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살고 있는 땅, 그와 함께 또 무언가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맘편히 엉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나 또한 그에게 그 동안의 답례를 크게 써보고 싶다.

 사코다상 고맙습니다!!

그와 나는 처음에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만났으나
지금은  '인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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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았던 동네, 아마도 사코다상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자리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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