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일본사람들에게 한국어 공부 이유를 묻다.

dangunee 2006. 5. 30. 02:14

1.
  향기가 나는 사람들과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지난주 토요일,
  토쿄 센다기에 있는 한국어 교실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이른바 네이티브(당그니)와의 만남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어수업을 듣는 일본인들과의 만남이 그것

  이 교실의 강사는 내 절친한 친구 사코다 씨(친구라 해도 나보다 10살정도 많다)
  한국에 2년간 한국어 배우러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으며, 지금도 나에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서, 혹은 일본어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분이다. 그렇다고 우리 관계가 일방적인건 아니다. 나도 종종 그가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 가서 '인간 녹음기'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같은 말을 아주 천천히 몇십번 반복해봐라. 힘들다 -_-;;

아무튼 그가 운영하는 교실에 그날 모인 일본사람은 총 6명
축구 팬인 사하라씨 부부
대안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둘
그리고 회사원 두분.

오늘은 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여러분들과 나눠보고 싶다.

2.
먼저 사하라 신, 사하라 후미꼬 부부
이미 50줄을 넘기신 분인데, 여전히 축구팬이다.
이번에 독일에 원정 가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일본 응원 가시는 거죠?"
"아뇨. 일본전은 표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 경기를 보러 가요"
"헛...일본 경기도 아닌데, 비싼 비행기표를 주고, 독일까지 다녀와요"
그는 차분하게 말한다.

"저는 일본을 응원하는 팬 이기 전에 축구를 좋아하는 팬입니다."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렇구나. 진정한 팬은 상대를 감동시킬 줄 안다.

그가 한국어을 배우게 된 계기는 역시 축구 때문이라고 한다.
"85년이었던가요.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예선 최종경기를 한국에서 하게 되었는데, 일본이 2:0으로 이겨야만 본선을 진출하는 힘겨운 상황이었죠. 그때 보러갔는데 아주 여유롭게 지더군요. 주위의 한국사람들이 막 응원해줬어요. 일본 힘내라구. 아마 넉넉하게 이기고 있으니까 그랬곘지만요"
그때부터 한국에 갈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고 한다.

사하라씨와 나는 그 전에도 몇번 만난적이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학생과 네이티브를 자청(?)하는 인간 녹음기로서^^. 그러나 어제 좀더 그에 대해서 알았다.

 그는 나보다 김구선생에 대해서 잘 알았으며, 한일 고대사에 대해서 해박했다. 신라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일본서기에 나와있는 설과 다르게 김춘추의 행방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일본 천황이 백제계였다는 사실을 그가 더 나서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분야에 대해서 최근에는 내가 관심을 끄고 있어서 제대로 대답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버거운데 일본 역사 분야에 대해서도 아주 해박했다. 메이지 유신 전야의 막부군과 토막군(반정부군)과의 전쟁 등등.....

  그때 난 깨달았다. 축구랑 역사는 별개가 아니다.

  사하라씨의 부인인 후미꼬씨는 남편따라서 그냥 하는 것 뿐이라고 했는데
  남편인 신씨가 한마디 거든다

  "후미꼬씨는 원빈 팬입니다"
 

   순간 

   다들 경악!!
 

  당그니: "단순히 남편 따라서 하는게 아니잖아요!! 버럭!!"

    "호호..그게 말이죠^^"


3.
  그 다음 그날 처음 뵌 '소에다'씨(40대 초반,여성)
  이분도 가관이다.
20년 전부터 한국을 너무 가고 싶었었는데, 아직도 못가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여쭤봤다.
  한국에 가면 어디를 가장 먼저 가고 싶어요?

  "독립 기념관이요"
  당그니: -_-;;; 네 감사합니다. (대화 종료)

  한국어 공부를 하는 이유는 한국어로 들리는 느낌,억양,음성이 너무 좋아서라고.
  자!!
  우리 독립기념관에서 만납시다!!!

4.
  시라또리 씨.(30대중반, 여성)

  이분은 사코다씨와 함께 자신들이 임진왜란을 전후로 해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후예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하면서, 나를 저번에 놀래켰던 분인데, 일본역사를 대학때 전공해서인지, 역사 비평이 날카롭다.(사실 이정도면 비평이 아니라 거의 씹는 분위기)

"일본사람은 한국사람들에게 욕먹어도 할말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토요토미 히데요시때를. 조선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 건너서 총하고 칼, 창을 들고 건너오는 거에요? 이게 말이 되나요?"

  당그니:(표정 관리 들어간다) 네 그렇지요^^
  그러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요?

"8월의 크리스마스요. 저는 정말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을 해서, 그 대사 하나 하나를 한국어로 알아듣고 싶어졌어요"
시라토리 씨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80년대 후반 수학여행때.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로 인해 다시 한국어 공부에 불을 당겼다.

  그의 불이 활활 타올라서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원해본다.

5.
  그중에 가장 나이가 젊은 학생이 바로
  'K' 씨.(남)
  이제 미성년자에서 벗어난 청년인데, 그의 한글 입문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80년대 어머니가 한국 김을 집에 사오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 글자가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짤막한 회화는 문제없이 할 뿐더러, 썰렁한 농담 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중간에 사코다상이 나에게 
  "혹시 '자보기' 알아요?" 
  이렇게 물었는데,
  당그니: 그게 몹니까
  갑자기 K군이 그건 
  "'자 보기'란 뜻이죠 '재는 자'를 보기"
  으헛...썰......렁.

  당그니:(침착모드로 들어가면서) 너.무.해!! 같은 거군요.
  일본사람들: 그게 뭐에요?
  당그니:(음) 너 '무' 하면, 나는 '배추'...이런거거든요

 아아아악 더 썰.....렁..

  (다들 이해 안가서 사전 찾고 난리남, 수습하느라 힘들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아이자와씨(24)

"제가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저희학교가 한국의 어느 학교와 교류를 하거든요. 그래서 한국 유학생이 일본에 놀러온 적이 있었구요. 그 이후로 연락이 닿아서 영어로 펜팔을 주고 받다가 제가 한국에 그 여학생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 가서도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그 여학생에게 혼났습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대화해야한다. 그게 너무 분해서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당그니: 그럼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이자와:"그 이후는 일본에 돌아와서 간간히 소식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연락은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어제 꿈에서 그녀와 재회하는 꿈을 꿨는데, 아마 제가 생각해보니 지금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도 있는거 같아요?"

갑자기 화제가 한일간 러브스토리로 변질, 같이 있는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다. (사실 내가 제일 흥분했나 -_-;;)

"지금은 디자인계열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국 친구를 통하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6.
재미난 사실은 위 대화를 대부분 한국어로 했다는 점이다. 물론 중간중간 어려운 표현은 일본어를 썼지만, 시간에 한국어 타임이어서 한국어를 써서 자기 의사를 표현했는데, 뜸뜰이면서도 자기가 한국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다들 명확하게 또 확실하게 이야기 하고 싶어했다.

  시간은 2시간이 훌쩍 지났고, 집이 먼 사람들은 떠났는데,
  사하라 아저씨가 짐짓 아쉬운 눈치!!

  "이 근방에 내가 잘 아는 술집 있는데, 오늘 내가 쏠테니 그리로 갑니다"
  "엇 일본은 각자 지출인데!!" 이렇게 이야기하자 후미꼬 여사가
  "이쪽이 가장 연장자니까 내게 해줘요!!"
  결국 사하라 아저씨가 쏘는 걸로 낙찰

  문제는 그 아는 술집이 이미 가게를 닫았다는 것.
  "흠...그래도 어떻게 안될까"
  주인아저씨와 절친한 친구분이신 모양.
  결국 한국식 막무가내 전법으로 안주는 없고 술만 먹기로 하고 이동해서 2차를 마무리 지었다.

  3차는 결국 자랑스런 대한민국인 당그니와 그 모임 주최자인 사코다상, 그리고 내가 또 근처 사는 일본사람까지(밤 12시쯤) 불러서 3시까지 마시다가 장렬하게 퍼질러자고 말았다.

7.
흔히 한류 하면,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후 이병헌이나 장동건이나 등등.
  얼마전 이병헌 팬 미팅 이벤트때 5만명이 모인 것을 보면 한류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분명 '겨울연가'이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류는 그 전부터 조금씩 일본사회내에 흐르고 있었고,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급속히 그 물쌀에 합류한 사람들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던 곳. 역사와 시간이 엉켜있던 곳에서 그들은 그 무언가를 보았고, 설령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사회를 엄습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아마 계속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 그들이 찾는 것은 한때 신나게 몰아치는 소나기같은 유행이 아니라 국가는 달라도 '인간과 인간이 만날때 생기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든 일본인이 한국을 좋아한다고 자화자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한류가 인기라 하더라도 한국어를 좋아하는 모든 일본인을 단 한가지 색깔로 묶어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일간의 정치가 냉랭한 이때, 우리가 좀더 해야할 일은 이렇게 현실을 바로 보고자 하는 일본인과 더 많은 만남을 갖고, 그들의 열정도 국가 이전에 진짜 사람사는 냄새를 찾아서 떠나온 여정중에 생긴 것이라고, 가끔은 그들의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품어 볼 수 있는 아량을 갖는 것이리라.

8.


끝으로 사하라씨와의 유쾌한 대화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저는 사실 뭐 외우고 이런,공부하기를 싫어해서 한국 드라마를 주로 보는데, 12시간 정도를 연속해서 봤거든요. 그 이야기를 동네 아주머니에게 했다가 한소리 들었습니다."
당그니: "왜요?"
사하라: "자기들은 기본적으로 하루 20시간씩 보는데 12시간 가지고 뭘 피곤하다고 하냐고"
당그니:  하루 20시간?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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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가 꿈이었던 청년의 일본탐험기

 

당그니의 만화 일본표류기 (http://blog.daum.net/dangu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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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상 친구분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마신 흑맥주. 안주가 없는 까닭은 이미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