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일본대표]'사무라이블루'와 무사도

dangunee 2006. 6. 29. 01:48

1.
아쉽게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전팀이 16강에 들지 못했다.
일본도 2002년 월드컵처럼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을 꾀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1무 2패.

한국이 스위스에 패하고, 나서 나는 가까운 동네에 사는 사쿠타씨를 불러서 술을 마셨다.

"일본의 패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천황제 반대 운동을 하는 그는 놀랍게도(?) 월드컵을 직접 보지는 않았다.
단지 마이니치 신문을 보고, 시합 결과를 보거나 주위에 있는 축구 팬들의 반응을 종합하는 수준이었다.

사쿠타씨: "결정적으로 호주전에서 패한 것이 가장 큰 탈락 이유라고 생각해요"
              "지코도 그렇게 이야기 했고, 선수들도 첫시합에서 패한 충격에서 내내 헤어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해가 갔다. 골키퍼 차지 였든 아니었든 1:0 으로 승리를 눈앞에 둔 후반 38분부터 내리 세골을 먹고 2점차로 진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한국이었다면? 아마 온 나라가 뒤집어졌을 거다. 일본 네티즌 반응을 직접 번역한 나로서는 '컵라면 하나 부는 동안-3분-한골씩, 3개 먹었네'라는 재미난 댓글(?)에 눈이 갔지만, 1억 2천 일본인들은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2. 
사무라이 블루.

이번 월드컵에 자국 대표를 일본 방송에서 부르는 단어다.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 '사무라이'와 일본국가대표가 입는 유니폼이 '파란색'이어서 그렇게 붙였다.

여기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사무라이'에 왔다고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무라이'를 뒷받침하는 매뉴얼이 바로 '무사도'라는 형체가 없는 정신론인데,
이번 경기를 보면서, 나는 '사무라이'가 가장 허약해지는 지점을 보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 전 에도시대의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에 100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사무라이'의 이미지.
'사무라이'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상대가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면 쉽게(あっさり) 상대에게 항복을 하고,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려, 생을 마감하는 것. 그러나 상대가 자기보다 약하다면 집요하게 상대를 관리하려 든다는 것이다.

고이즈미의 졸업여행이 부시가 있는 미국으로 정해짐과 동시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개인의 자유라는 망언을 하는 심리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강한자에게는 철저하게 따르되, 국력에서 밀릴 것이 없는 아시아에는 '별 신경 안쓴다'는 식이다.

3.
다시 경기로 잠깐 돌아가보자.
일본이 호주와 시합을 하기 전, 대다수 일본인들은 일본이 호주를 꺾으리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략 스코어가 2:1 혹은 3:1.
아마 '사무라이 블루'들도 그렇게 믿고 경기에 임했으리라.

그러나 동점골이 터지면서 그들은 패닉 상태로 돌입했다.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진 것이다.
역전골이 터지자 아예 수비들 조차도 어찌할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브라질전에서도 먼저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세를 잡았으니,
전반 인저리 타임에 '호나우두'의 동점골로 사무라이들의 정신적 방어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탈락후 일본은 모든 것이 첫 경기에서 끝나버렸다고...아쉬워했다.
즉, 일본의 '무사도'란 뭔가 대단하고, 카미카제처럼 결사항전의 태세로 상대에게 위협을 느끼게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쿠라(벚꽃)처럼 뿔뿔히 흩어지고 마는 모래알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일본 네티즌들은 그래서 '사무라이 블루'들을 한국의 대표와 비교해서 투지와 정신력이 실종했다고 질타했고, 2ch의 일부 우익들은 그래서 일본에 애국심을 강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한다는 엉뚱한 소리까지 늘어놓지만, 패한 '사무라이 블루'에게 요구하는 것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할복'이고 보면, 일본 네티즌들도 '선수'들과 그리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신의 바람이 불어서 일본을 구했다는, 일명 카미카제(神風) , 태평양 전쟁 말기 멀쩡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몰상식한 전법이 된 이 캐치프레이즈도, 이제 응원할때는 생각 좀 하고 달고 나오길....   

 


4.    
한국의 월드컵 광풍이 한풀 꺾인 지금,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사이타마현 지사 - 종군위안부는 없었다) 시작되고,
고이즈미는 여전히 야스쿠니로 돌격할 태세고,
9월 이후 자민당 총재가 될 포스트 고이즈미는 강경파로 알려진 '아베'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순수하게 한국을 응원했던 일본 팬들과 일본의 진지한 반성과 동반자 관계를 바라는 한국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아마도 올해도 한일관계는 험한 얼굴을 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일본 자민당내에 망언이나 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인은 사실 몇몇 존재하는게 아니라 득시글거리고, 청산하지 못한 일본의 역사가 한심할 따름인데, 이 탓에 스포츠로 봐야할 일본 경기도 내가 일본 네티즌 반응을 번역해서 올리면 절반 이상이 일본에 대한 욕으로 채워진다.


"일본대표가 한국네티즌에게 욕먹는 이유는 다 고이즈미 탓입니다."

 라며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맞아요. 그렇습니다. 다 고이즈미 때문이죠 -_-;"

 하면서 수긍을 한다.

 이 지점에서 건배하는 기분이 나는데, 아무튼...-_-;

농담으로
'일본 대표가 저 지경이 될때까지 고이즈미는 뭘하고 있었나' 야말로, 혹은
'한일관계가 이 지경이 될때까지 그는 뭘 하고 있었나' 이런 말이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5.
일본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본 정치가들이 저렇게 나대는 것도 아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한국이 압도하게 된다면 그들은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것이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우리도 그런 낮은 수준의 파트너에게 고차원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일본 내에서 극소수지만 일본사회를 바꿔나가려는 일본인들, 한국이 좋아서 순수하게 한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라도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야할 어려운 싸움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사무라이 블루'는 맛탱이 갔지만, 무사도는 여전히 일본인들 속에서 생존경쟁의 룰로 이해될 것이고, 그런 단순한 '무사도'공식을 혐오하는 일본인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정부와 싸우는 일본인들과 함께 나도 한일관계의 높아지는 파고를 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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