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일본 속 한류 붐 끝났나?

dangunee 2008. 2. 6. 00:55

1. 일본 미디어에서 종적을 감춘 한류

일년만에 일본에 와서 TV를 켜보니 가장 놀란 것은
한류 관련 드라마며 뉴스가 거의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었다.

태왕사신기가 지난해 NHK 위성방송에서 방영을 시작할때도 일본 민영방송에서 제대로 관련 뉴스를 다루는 것을 보기어려웠다. 현재 위성방송 말고 지상파에서 한류 드라마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역 민방 빼고)

그나마 조혜련씨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나오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러 게스트 중 한 사람일 뿐 한류라고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다.
전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지 광고에는 한때 배용준을 위시해서 이병헌 기사가 한주도 빠짐없이 탑기사, 혹은 주요기사로 뜬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출근하면서 보면 한류스타에 대한 기사가 담긴 주간지 광고를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작년 일본 연예계를 총결산한 '닛케이 엔터테인먼트'에서도 한류에 대한 작품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잡지 뒷표지를 보아가 광고모델로 장식하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2004년 겨울연가를 정점으로 채널을 돌리면 굳이 찾지 않더라도 볼 수 있었던 한국드라마.
또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넘쳐나든 한류관련 소식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한류는 일본에서 완전히 끝난 것일까?

 

이승엽선수가 몸담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돔구장, 도쿄 돔. 이승엽선수도 한류?

2. 미녀는 괴로워도 끝나가고.. 

2007년 15일에 일본 전역에서 개봉한 '미녀는 괴로워'도 1월 18일을 기점으로 막을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야후 무비에 적힌 관객평은 좋았지만, 한국영화 붐을 불러온 '엽기적인 그녀'처럼 하나의 바람몰이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붐이던 때와 너무나도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끔 한국 신문에 보도되면 한류스타 팬미팅이나 공연등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무엇일까. 착시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이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기 위해서는 한류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한류'의 두가지 한계?

 한류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배용준'의 '겨울연가'. 아시다시피 가정을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수험공부를 챙기느라 한세월을 보낸 일본 아주머니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순정, 인간 사이의 '정', 부드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배우에게 홀딱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카이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는 요즘. 일본남자들이 과거 열도를 지배했던 사무라이처럼 '과묵'하고 '男は仕事だ' 남자는 일이라며 오로지 성공을 향해만 달려갔을때 그 세대를 떠받든 아주머니들의 가슴에 주옥같은 한국드라마의 대사들이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4년 본격적으로 불붙은 한류열풍이 얼마나 거셌냐하면 일본드라마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지테레비의 겟츠쿠(월요일 9시 방영 트랜디 드라마) 시간대에 '동경만경'이라는 재일교포와 일본인 사이의 순애보를 한 시즌 방영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류 붐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아줌마'들이 먼저 열광함으로써 일본 '젊은이들'에게는 나이든 아주머니들이나 좋아하는 문화상품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인식이 자리잡았다.  
 
한류가 고공행진을 할때에도 몇개의 영화 말고는 내 주위의 일본젊은이들 중에 한류드라마를 보는 친구는 없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비싼 사진집도 쉽게사는 일본아줌마 시장이 구매력이 별로 없는 일본젊은이 타겟의 시장보다 훨씬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한류보다는 가정 경제를 쥐고 뒤흔드는 일본아주머니의 지갑에서 나오는 엄청난 구매력에 열광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한류는 아줌마 세대들끼리 소통하는 문화코드가 되었을 뿐 앞으로 일본을 짊어지고 나갈 다음세대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은 드러냈다.

두번째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양국의 드라마 코드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우선 '고부갈등'을 기본으로 마마보이와 태생의 비밀 등 가족간의 갈등을 끊임없이 다뤄야 한다. 작년 11월까지 내가 한국에 있을때도 와이프가 보는 드라마의 대부분이 이런 스토리였다. 젊은층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고루한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막강한 한국아줌마들의 시청률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중에서 잘 만들어진 것이 중년 일본 아줌마에게도 먹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드라마의 주류는 한국처럼 가족간의 갈등 보다는 좀더 가볍고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는 점이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를 봐도 '갈릴레오'라는 드라마는 천재물리학자가 풀어나가는 탐정, 혹은 수사물이었고, 현재 니혼테레비에서 '오구리 �'이 주연하는 '봄비맨'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빚을 잔뜩 진 한 청년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 88만원세대가 있다면 일본에는 '인터넷카페 난민'이 있는데 이런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작년 최고 드라마라던 '파견의 품격'은 '정사원'과 '파견사원'의 문제(정작 파견직원이 더 일을 잘해버리는)를 풍자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문제가 '신파', '출생비밀 파헤치기 스토리' '신데렐라 스토리'라면  일본드라마는 이야기 전개가 너무 '만화틱'하다는데 있다.

 어�거나 재미 위주의 작품에 익숙하고 12편정도의 짧은 호흡을 가진 드라마를 주로 소비하고 있는 일본 젊은층이 한류 드라마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유치원을 입학하는 아이들부터 2-30대까지 폭넓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면 한국드라마는 일본에서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연령층을 주 타켓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물과 기름처럼 한류드라마와 일드의 소비층이 나뉘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방영중인 후지테레비 겟츠쿠, '장미가 없는 꽃집' 카토리 싱고와 타케우치 유코 주연
 
4. 여전히 한류드라마를 보는 이유? 

 작년 한국어 교실 송년회때 만난 한류팬 아줌마들에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가 보기에 현재 한류붐이 끝난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이렇게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한류드라마를 보시는 이유가 뭐죠?'
그러자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등 가정에 봉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한류드라마를 접하면서 동세대의 아줌마들끼리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긴 겁니다. 저희들은 붐이 끝나도 상관없어요. 한국어 공부를 하고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 중 '배용준 팬'이신 분도 있었는데, '태왕사신기'가 방영하는 것을 아느냐고 하니까
'당연히 안다'고 했지만, 집에 '위성방송이 없어서' 못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상파'로 방영되면 볼꺼냐고 하니까
 "배용준 목소리여야지 더빙되어서 나오니까 아마도 방송보다는 DVD를 사게 될 것 같네요'라고 했다.

 즉, 한류 붐은 꺼졌지만 여전히 한류에 빠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꾸준히 한국드라마를 즐기고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내가 한국어교실 송년회때 가서 놀랬던 것은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한류 드라마보다는 주위에 한국사람이 있어서, 혹은 여행을 갔다와보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등 한국문화를 접하고 향유하려고 하는 동기는 여러가지다.

 

 

           

작년 12월 송년회에서

5.  한류는 지하수처럼 일본사회에...

현지시점에서 한류 붐은 결론적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태왕사신기가 처음 일본에 방영되는 날 한국 신문에서는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잠잠했다. 그리고 벌써 1개월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 '태왕사신기'는 일본내에서 전혀 화제가 되고 있지 못하다. 물론 'NHK 지상파' 방영을 앞두고 있어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겨울연가'가 가져온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오기는 힘들 듯하다.

그러나 한류 붐은 끝난 게 아니라 어쩌면 일본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퇴근길에 읽은 '주간 아사히'에서는 새로 출간된 '나의 남자'란 소설이 구성에 관한 모티브를 이창동감독의 '박하사탕'에서 얻었다는 서평이 실려있었다. 또한 일본 중년 아주머니끼리는 한류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고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면서 어려운(?)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MTV제팬에서는 여전히 낮시간대에 K-POP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있고, 지상파 방송은 끝났지만 위성방송 등을 통해 한국드라마는 계속 일본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언론이나 매스미디어에서 거창하게 떠들어 대지 않아도 한차례 일본사회를 휩쓸고 간 한류는 분명 여러곳에서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하고 있는 지 모른다.

문제는, 다시 작품이다.
한국에서 성공해야만 해외로 수출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한국드라마 공식에 대해서 익숙해져버린 일본팬들에게 비슷한 입맛의 드라마를 내놓아봤자 실패할 것은 뻔한 일이다.

 한류는 스타가 좋다고 달려드는 일본 아줌마들의 지갑을 향할 것이 아니라 한국내에서 다양한 재미과 시도를 지닌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여 기존의 팬 뿐만 아니라 일본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일본 젊은세대가 공감하기 위해서 한일양국의 입맛에 맞는 어정쩡한 드라마를 만들 것이 아니라 우선 한국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도의 드라마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 팔린다고 무조건 건너오는 한류스타들의 대규모 러쉬는 없겠지만 여전히 한국작품이 일본극장에 걸리고, 일본TV에서 때때로 접할 수 있기를, 그래서 회사 동료들과도 쉬슨 시간에 때때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일본어까지,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만화 일본표류기 일본어로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