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인생의 갈림길에서

dangunee 2005. 8. 11. 07:35

1.

"너 하나 때문에 가족들 모두 숟가락 빨아야겠어?'

 

내가 고2때 미술학원을 가고 싶다고 하자, 철없다는 듯이 삼촌이 내게 한 말이었다. 삼촌은 그나마 우리집에서 제일 많이 배웠고, 또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책을 꽤 읽은 티를 팍팍 내는 타입이었다. 삼촌의 그 말 한마디는 헌번재판소 주심관의 판결과도 같았다.

 

삼형제.

형은 고3이었고, 동생은 중3이었다. 거의 연연생인 우리집에서 내가 미대를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과외 말고 별도의 미술학원비가 나올 수가 없다는 거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이미 이과에 발을 디딘 후였지만 그래도 미련이 많이 남아서 한번 운을 뗀 것인데, 결과적으로 삼촌의 그 발언은 나의 미대에 대한 꿈에 쐐기를 박았다.

 

"화가는 배고파."

"너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어야 되는 줄 알아?"

이런 부모님들의 우려를 삼촌은 아주 멋지게, 그리고 짧게 어떻게 보면 대단히 현실적으로 정리를 해 버린 것이다. 그것으로 내 고민도 끝이 났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미대의 꿈을 접고, 지지리도 재미없는 수학책을 다시 붙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멍청하게 시간을 흘러갈때 우연히 TV에 흐르던 컴퓨터 그래픽을 보고 전산과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같은 그림이잖아?'

나의 일말의 자위였다. 손으로 그리던 컴퓨터로 그리던...나는 전산과가 그림을 그리는 곳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위한 연장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는 것도 몰랐을 만큼 순진한(?) 소년이었다. (순진한건 사실 멍청한거죠 ㅎㅎ)

 

 

2.

 대학에 들어가자, 아직 찬바람이 몰아치던 입학식날 나는 주저없이 그림 그리는 동아리를 찾았다. 그리고 가입했다. 물감 냄새가 물씬 풍긴 동아리실 구석에는 이젤이 구석구석 포개져있었다. 일주일동안 다시 미친듯이 석고데생을 했고, 주말에도 나는 동아리를 찾았다. (사실 무슨 테스트 같은 거였다.) 술먹고 회장하던 선배한테 내년 회장은 내가 하겠다고 취한김에 엄포(?)도 놓았다.

 

 그리고 한달만에 나는 그림 동아리를 나왔다. 대학시절을 낭만과 꿈의 보금자리로만 알고 있던 내게 다가온 것은 거대한 역사의 그림자였다. 나는 과 선배들을 만나면서 화려하고(?) 시간많은 대학생에서 순식간에 '식민지 청년'이자 '노동자의 자식'으로 치환되었다. 나는 처음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런 선배들의 발언에는 열정이 묻어 있었고,까닭모를 진지함,그리고 약간의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그림 동아리를 때려친 이유는 최고참 선배라는 사람이 한 말때문이었다.

 

 '그런 거 다 헛짓거리야.'

 

  학생회관에서 한발짝만 나가면 함성소리가 들리던 시절이었다. 현실참여에 대해 냉소하던 최고참 선배의 말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개입을 벗어난 순수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시각 자체가 얼마나 주관적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급격하게 급진적인 사고로 옮겨가던 19살의 내가 동아리실에서 화사한 햇살이 만들어내는 물비늘이나, 한잠 늘어지게 잘 만한 계곡따위를 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3.

 어렸을때 아버지는 우리들보고, 책을 왜 안 읽느냐고 질타를 하셨다. 옆집 누구누구는 뭐뭐뭐를 벌써 다 읽었다는데......

 초등학교때 삼형제인 우리는 집에서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누가 더 멋진 로봇을 그리는가 시합을 하면서 방학을 보냈다. 우리에게 절실했던 것은 위인전의 고리타분한 교훈이 아니라, 로봇을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그러면서 세련되게 그리는 가였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날 수 있으며, 장착한 미사일을 발사 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작성하는게 초미의 관심사였을 뿐이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컴퓨터 공부는 하지 않고, 책만 읽어대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또 답답해 하셨다. 그림동아리를 때려치고, 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 곳은 문학회이다. 이곳은 내가 글을 좀 써서가 아니라, 책 읽는 공간이 필요해서였다.(교정 아무데서나 책을 읽고 있으면 포교하러 달려드는 사람이 너무 많은 나머지) 나에게 당시 필요한 것은 감성이 아나라 세상의 부조리를 깨부술 수 있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책을 안읽는이만 못한 상태로 나는 빠른 속도로, 그리고 치밀하게 의식화(?)되어 가고 있었다.

 고교시절까지 책에 그림낙서를 끊임없이 해대던 소년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사회과학 서적만 읽다가, 중책을 맡고 나서는 꼴에 문학회인지라, 소설도 시도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이것도 위대한(?) 변혁운동에 복무해야하는 나의 임무라 생각한 것이다.   

 

  나의 머릿속은 평화,우정,사랑,행복,여자...이런 단어에서 광주,민주정부,4천만,백만학도,민중권력,분신 등 거대한 추상명사로 빠르게 바뀌어 갔고, 나는 또 그런 단어들을 외칠때마다 뜨겁게 변혁의 열정을 삼키곤 했다.  

 

 

 

4.

 학과 수업은 죽어도 적응을 할 수 없었다. 그 학점관리의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넘어서, 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그렇게 밤을 새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섣불리 포기한 미술의 꿈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림 대신 글을 쓰다 보니, 종이만 보면 그림 낙서를 즐기던 소년은 어느듯 메모를 하던 청년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미련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지 못한 길이기에 더욱더 열망과 아쉬움은 괴물처럼 커져만 갔다. 사춘기 시절 짝사랑한 연인을 두고 가슴 아파하는 사랑처럼 나는 그림을 잊지 못했다. 사실 그때 나는 시나 소설, 컴퓨터 어느것 하나 제대로 적응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차저차해서 졸업을 하고 컴퓨터 회사를 다녔지만, 버렸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배포한 버그 투성이의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용자들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세상이 다 그런거지요) 

 

 고교를 졸업한지  10년이 지난 어느날. 그때 삼촌이 했던 말들, 부모님이 했던 걱정, 그리고 골똘히 어른들의 말을 곱씹던 10대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그 정도는 자신의 과거 어느 시기를 그나마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새삼스레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그때 미대를 순순히 포기한 이유가 결코 삼촌의 준엄한 선고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본질적인 것은 내가 화가가 되고, 만약 가난이 닥쳤을때,그것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 정도의 기개도 담도 없었다. 삼촌의 판결로 핑계삼아 그냥 내적고민을 봉합해버리고 합리화시킨 비겁한 내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되지도 않는 프로그래머의 길을 때려치고 다시 그림쪽 길로 들어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실을 그 순간이라기 보다, 10년간 생각했던 결과라 해야 옳을 것이다)

 

코드명 19XX :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다.

  

 

 

5.

 10년 짝사랑했던 애인을 만나는 기분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의 길을 들어서자, 수줍은 소녀같은 첫사랑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끊임없이 더 이쁘게 그려달라는 초상화 의뢰자 같은 '그림'의 세계가 그 자리에 있었다.

 

 '뭐냐 너는?, 당신 그래가지고 제대로 밥먹고 살겠어?'

 

 사진가가 사진기라는 도구를 뛰어넘어 세상이 뿜어대는 이미지와 씨름하듯이. 시인이 언어라는 한계를 넘어서 감춰진 진실을 엮어낼 표현에 고뇌하듯이. 소설가가 영원한 감동을 갖는 작품을 쓰고자 노심초사하듯이. 아직 그림을 둘러싼 오늘 나의 과제는 너무나 많다. 이거 행복인가.

 

 그래도, 10년후 딸이 커서 내게 그림을 해서 좋냐고,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해줄 자신은 있다.

 

 '글쎄.....만약 다른 길을 걸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그리고 자주 후회를 했겠지'

 

 인생은 늘 제 속도에 맞춰 저절로 흘러간다.

 

 

그림:

attention

Vladan Ignatovic

 

'그 길을 갈 까. 이 길을 갈까'.......

 

ps.

저는 현재 토쿄에서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원화를 그리고 있고, 기타 잡일(?)도 합니다.

만화는 빈시간,주말에만 짬을 내서 하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애정으로 일본표류기 쑥쑥 키워주세요.

이곳을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