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이웃의 토토로

dangunee 2005. 8. 13. 10:13

1.

 2주전 두번째 지브리 미술관을 다녀왔다.

물론 6개월 전 처음 갔을때 느꼈던 문화충격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그전에 받았던 약발도 다 떨어진 게 사실이다. 요즘 나에게 약발이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그리는 만화이다. 이 만화가 앞으로 몇화까지, 또 일본의 어떤 모습까지 담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탐사할 생각이다.

세상은 정확하게 자신의 투여한 열정만큼의 행복 앰플을 뽑아내준다.

애니메이터인 내가 만화 그리기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고스란히 바쳐진 주말의 고행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번 지브리 미술관 관람에서 수확은 있었다.

그건 토토로 인형을 샀다는 것이다.

계산대에서 값을 치루고 받아든 토토로 인형은 겨우 주먹 두개분의 크기였지만, 애정이 담긴거 딸에게 줄 생각을 하자 의외로 묵직하게 느껴했다.

 

2.

 1999년.

 종말론자들이 지구 멸망을 한해 앞두고 분주하게 지옥의 왕림을 선언하던 그때, 한국에선 아직 지브리 작품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는 볼 수 가 없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의 작품에 목마른 사람들은 은밀히 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카페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홍대앞에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수들이 복제한 테잎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해 가을이었던가.

 대방역에서 지금은 프랑스에서 영화수업을 하고 있는 동아리 후배에게 미야자키 작품이 든 불법 복제 테잎을 쇼핑백으로 건내받았다. 그리고 나선 한마디.

 "내가 유명한 애니 감독이 되면 다 네 덕택이다."

 나는 그 후배에게 돈을 지불하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으로 영등포행 버스에 올랐다.

(당시 집에 가려면, 영등포역에서 하차, 마을버스를 타야했다.) 

 

 그 중에서 유난히 기대를 많이 하고 봤지만,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작품

 '이웃의 토토로'

 내가 기대한 것은 토토로 마을이었는데, 토토로는 혼자 살았고, 이야기도 단조로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라퓨타처럼 모험 활극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년시절의 추억만을 상기시켜주는 정도로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3.

 내가 일본에 건너오고,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더 이상 토토로를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 재미없다고 느꼈던 토토로가 실은 얼마나 잘 만든 작품인지 시간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부재속에서 사는 두 소녀, 메이와 사츠키...

 메이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보는 풍경의 집약판이고, 목조건물이 대부분인 일본 집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는 발소리는 그대로 살아있는 박자가 된다.

게다가 바람이라도 휘몰아치면, 창틀이 드드드 하며 떨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것마저 애니메이션에서 실감나게 살아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생활속에 배인 소리와 영상을 토토로가 잘 재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토토로가 바람이 되어 메이와 사츠키를 가슴에 안고 들판을 날아다니지만, 토토로의 존재 자체도 일본에 다신론과 연관이 아주 깊고, 일본인들에게 숲이란 신사를 의미하는 코드를 읽어낼 때 쯤이면, 토토로가 얼마나 일본인의 현실속에 뿌리깊게 내린 사고속에서 태어났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에 약간의 환경론만 포함되면 다국적 작품이 된다는 것은 또 기막힌 역설이기도 하다.

 

 

4.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행 가이드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몸은 무거웠지만 약간 들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산타크로스 케익 말고 뭔가 아이에게 사준 적이 없는 내겐 아이에게 짠 하고 내밀 수 있는 선물을 담고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채현이도 물론 토토로를 본 적 이 없지만 알고는 있었다. 보육원에서 춤을 출때 토토로의 오프닝 음악을 틀어주기 때문이다.

 토토로를 받아든 채현이는 아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냥 마음에는 든 모양이었다.

 그런 밍숭밍숭한 느낌이 180도 바뀐 것은 지난주 금요일!!

 

 아이와 함께 6년만에 같이 토토로를 보았다.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토토로가 움직이고, 날고, 빗방울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어댔다. 아직 만 세살이 안된 아이도 토토로와 메이의 표정과 연기 하나 하나에 넋이 나간다.

좋은 애니메이션이란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는 것이란 걸...

대화란 강요와 협박과 공포속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느낌의 전이가 만들어내는 울창한 숲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오랫만에 마시던 맥주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5.

며칠전부터 채현이는 뿡뿡이도, 시마지로(매주 배달되어 오는 호랑이 캐릭터 비디오)도 보지 않는다. 무조건 토토로만 틀어놓고 논다.

 

채현이가 앞으로 수백번도 더 볼 저 토토로 테잎은 비디오 테크의 헤드를 셀 수 없이 오가며 아마 엉망이 될 것이다.(불쌍한 내 테잎)

그때 쯤이면 DVD 플레이어라도 하나 장만해서, 토토로 정품을 살 생각이다.

 

처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때

난 문득

6년전 대방역에서 마치 토토로 인형을 받아든 것처럼,

설레어하던 한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 당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