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화한다

dangunee 2005. 8. 11. 07:38

1. 나를 일본으로 불러들인 사나이


지난 여름 휴가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그것은 지브리 미술관에 다녀온 것이다.
내 업이 애니메이터인 덕에 나는 그곳에서 같이 간 다른 이들과 조금 색다른 것을 느꼈다. 물론 그들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특별한 여름에 되게 한 까닭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애니메이션을 또 한차례 끌어올린 동양의 월트 디즈니라 불리는 아자씨(?)
그는 1963년 토에이 동화에 입사한 이래, 현역으로 40년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오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아이들에게 미키마우스보다 더 귀엽고 깜찍한 토토로를 선물했으며, 지금도 이곳 일본 TV에서는 금요로드쇼에 단골손님으로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내보냄으로써, 토종애니메이션의 즐거움을 마음껏 선사한다.

그 뿐이랴.
한국에서 90년대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그의 바람은 뭇 애니메이터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며, 박재동 아저씨까지 시사만화가를 때려치우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제주도를 순례시킨 힘까지 지녔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 본인까지도 일본에 불러들인 사나이다.
그는 나와 단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으나,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그와 만났고, 그런 그와 나의 인연은 그러니까 지금부터 7년이상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2.어느날 소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다.


90년대 후반 나는 당시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지루하고 죽고싶었던 평일을 늘 특별한 주말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했던 어처구니 없는 젊은이였다 . ㅋㅋㅋ
야외스케치를 가거나 아니면 아주 특별한 연애를 꿈꾸거나.

되지도 않는 알고리즘 소스를 컴퓨터 화면안에 밀어넣느라 고생하던 프로그래머로
대학시절 붙들고 있었던 시라던가 소설이라던가....이미 먼 저편의 이야기.

그런 답답한 날들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을 무렵, 천안에 선배 집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식지않았던 대학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맥주병을 까고 날을 새면서 늘어지고 있었던 우리들에게 그 다음날 우연히 선배 한명이 들고 온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거의 그런 감정이 없지만, 그때의 충격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소녀가 비행선에서 발을 헛디뎌 하늘에서 추락하자, 드라마같은 선율의 바이올린 소리가 장엄하게 깔렸고, 추락하기만 하던 소녀의 가슴켠에 걸린 목걸이가 빛을 내 뿜는다. 그리고 소녀는 깃털처럼 가볍게 긴 꿈을 꾸듯이 지상으로 낙하한다.

첫장면......구름사이로 낙하하던 시이타와 히사이시 죠가 작곡한 음악이 조잡한 텔레비젼 스피커를 통해 흐를때, 대학 입학전에 화가되면 굶는다던 부모님의 엄포에 가차없이 버렸던 미술가의 꿈이 가슴을 마구 흔들었다.

시이타는 추락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붕 뜨듯이 뜨고 있었을까.

마침 그 테잎으로 가지고 온 선배가 먼저 자리를 뜨는 바람에, 그 테잎을 반납하는 몫은 나에게 돌아왔고, 나는 그 테잎을 선배에게 반납하기까지 얼마간 더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셈이었다.

실제로 그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간에서 나는 그 삐짜 비디오 테잎을 가지고 내내 집으로 가서 보고 싶은 마음에 가득찼던 기억이 있다.
그후, 후배를 통해 다시 라퓨타를 직접 구했다.
일본만화의 신 '테즈카 오사무'에게 엄청난 문화충격을 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 데즈카는 무려 이 애니메이션을 130번이나 봤는데, 나도 라퓨타를 130번은 넘게 보려고 했었으나, 실제로 자주 반복해서 보다 보니 몇번을 본지 셀수가 없었다. ㅜ.ㅜ

그래도 지루한 생활속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밤늦게 혼자 그의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나우시카가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속에서 총탄을 피해 날아다니던 모습과, 메이가 더이상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잠든 오후 햇살을 보면서, 건조한 날들을 그럴싸한 상상으로 채워넣는게 일이었다.

그리고 비디오를 보면서 생각했다.
'일본에 가자.'


3. 그림에 대한 열정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몇년후 실제로 나는 일본에 왔고, 고등학교시절까지 합치면 근 10년이상을 함께 있었던 이과와 컴퓨터의 길을 접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길로 들어섰다. 사필귀정이라. 어차피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었으니.....돌고 돌아 원래 내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비행기로 일본에 건너올때 가졌던 어떤 알 수 없는 열정들이 열매를 금방이라도 맺을 거 같은 환상이 있었다. 이 길만은 이제 내가 더이상 도망갈 수도 없는 막다른 길목이라는 것을... 풋.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비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그땐 왜 그렇게 스스로 인생에 대해서 심각해지고 있었는지....

그런데 웃긴 것은 내가 애니메이션 관련 전문학교에 입학하고,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발생했다. 그러니까, 내가 평생토록 가야할 길이었다고 신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역시 취미나 낙관적인 상상과 달리, 이짓(?)으로 밥먹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성질이었단 말인가.

한국에서 마른 걸레짝 같던 평일의 회사생활을 빠져나와 주말이면 정신없이 그림모임 사람들과 어울려다녔던 야외스케치. 나는 대천항에서 몰아치던 바닷바람속에서도 몇시간을 서서 그림을 그려도 너무나 신이 났었고, 태백산에 온통 하얗게 눈이 내리던 겨울날, 손이 아무리 시려워도 눈 속에 묻혀가는 마을 풍경을 담느라 혼이 다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게 겨우 신기루였던가.

현재 일본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특징은 정지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매수를 줄이고, 상품화 해서 팔아먹기 좋은 캐릭터를 위해서는 좀더 복잡하고 섬세한 캐릭터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캐릭터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쓸데없이 움직임이 많아서는 안된다. 그러니 그런 복잡다단한(?) 캐릭터 한장 그리는데 몇시간 걸리기도 한다.(내가 그림을 못그리는 탓도 있음^^). 그리고 그것은 움직인다기 보다 CF를 찍는 모델처럼 굳은 채로 다가온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연기를 그려댄다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애니메이션이란 원래 뜻으로는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학교 다닐때 했던 작업은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출석하는 것이었고, 회사에서는 정해진 캐릭터를 얼마나 더 정확하게 옮겨대느냐였다. 그런 작업속에 새 생명이 꿈틀대는 역동감이란 없었다.
무의미한 노동이 반복될때, 권태가 자라나고, 귄태가 지속되면, 사실 본인의 존재이유까지 갉아먹는 걸 보면...나는 한참이나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한 의미를 찾아 헤매야 했다.

'바다까지 건너와서 나는 뭘 하는 걸까'

(원래 나란 인간이 아무래도 괜찮은 것따위도 쓸데없이 의미를 붙이기 좋아하는 버릇이 있고, 괜히 그 속에 비장한 결의가 들어있거나, 아니면 거창한 의미라도 없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작업에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ㅎㅎㅎ)

그렇게 날들은 지나갔다.

심지어는 우리회사 상사하고 내가 우리 아버지 앞에서 '일본제일의 애니메이션 회사'를 만들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실제로 무미건조한 낙서(난 의미없는 선긋기를 일종의 낙서로 보기 때문에)가 계속되던 어느날 둘이 같이 공원에 가서 이런 이야기까지 나눴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끝나버리고 마나요...."라고 하자,
상사가 조금 생각하더니 한마디 했다.
"음........그럴 거 같군요 ㅜ.ㅜ"
(농담반 진담반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상사가 나에게 존칭어를 써가며....)

난 그때 이미 내 인생이 진짜 시시껄렁하게 애니메이션 준비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이 가능성은 지금도 농후함 ㅜ.ㅜ)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준비만 하다가 생을 마치듯이.



4. 그의 열정으로 가득찬 세계가 뿜어대는 이상 야릇한 열기들


지브리 미술관에 들어가자 나의 가슴을 강하게 짓눌러온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그림은 삽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볼만큼 봤고,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닥 새로울게 없었다.
2층에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전시해두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내 입장에서 그저 그런 나열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1층 전시실에 들어가서 느낀 것은 단 한가지.
그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즐기면서 만드는가. 그가 얼마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가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도 남을 열정이었다. 그 열정은 차고 넘쳐서 그 안에서 그가 만들어댄 캐릭터들이 줄넘기를 하고, 날아다닐때 나는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인다'는 그의 글귀를 보고,
대학시절 가졌던 세상에 대한 변화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은 집어치우고라도, 그는 자신이 그린 캐릭터들이 종이위에서 살아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너무 즐겨한다는 사실.....
그래서 그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구름이 떠다니고, 토토로가 날고, 나우시카가 난다. 미야자키가 설계한 이 미술관에서 그의 열정으로 가득찬 세계가 뿜어대는 이상 야릇한 열기들. 그것이 나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새삼스레 충격이었다. 즐긴다는 것은 이렇게 만나지 않고서도 알 수 있구나.

가장 좋은 글은 독자가 그 글을 제대로 읽고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 뿐 아니라, 그런 글을 자신도 쓰고 싶게 만드는 욕망까지 불러일으키듯이, 가장 좋은 애니메이션은 그것을 즐기게 할 뿐 아니라, 그런 애니를 만들고 싶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또 한번 미야자키한테 빚을 진 셈이다.
그의 가치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다 근원적인 데 있다.

'그는 그 자신의 열정에 아주 충실했고, 그 머릿속에만 있었던 수많은 꿈들을 자기의 의지대로 현실화 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우 매우 즐겼고 지금도 즐긴다는 것.'


5. 수 많은 영혼들에게 빛을 보내주는 등대


삶이란 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속에서 희망이나 절망의 전염에 매우 빠르게 반응하는 편인데, 요즘처럼 불확실한 세상에 알려지는 뉴스나 미래의 전망을 보면 대체로 어두운 소식이 많다. 또 이런 어두운 전망들을 신문과 전문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낸다.(이런 것을 보면 올바른 현실인식이란 미명하여 불안을 전파하는 첨병노릇을 하는 매스미디어와 전문가가 과연 필요조차 한 것인가 의심스러워진다).

따라서 그런 시대를 핑계삼아 자연스레 본인이 꿈꾸었던 길도 쉽게 접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인생버스에도 가볍게 승차하는 이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쳐서 거기서 빛을 내고, 또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다 못해 그런 길은 갈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빛을 보내주는 등대역할까지 한다. 본인이 인정하던 하지 않던....


지브리 미술관에 가면, 그런 일가를 이룬 사람이 뿜어대는 빛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해두는 다짐 한가지...

'좀 더 즐기면서 일하자. 이제 그럴때도 됐잖아.!!'





p.s1. 이미 한국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차고 넘쳐서, 웬만하면 언급하려 하지 않았으나,지브리 미술관은 그것조차도 무색하게 할 만큼 나에게 또다른 에너지를 선사해주었다.

p.s2. 나의 이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경험도 때때도 어떤이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보여진다는 측면에서 조금 의미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내 글쓰기는 제 멋대로(?)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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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사진, 지브리 미술관 입구

 


 ⓒ 당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