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그해 폭우

dangunee 2006. 7. 13. 00:20

1.
한국에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바다 건너 있다 보니 기사를 읽어도 잘 실감이 안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수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

2.
88년이었나.
홍수철(권투선수 or 가수 말고)이면 서울 일부가 물에 잠기던 그때
남태령 고지대에 살던 우리집이 물에 잠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방배동에서 전세 살다가, 갑자기 오르던 전세값을 감당 못하고
아버지는 안양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해서 나는 중딩이 되던날부터 새벽 5시 반 11-1 버스를 타고
(이때만 해도 안양 - 사당간 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등교하기를 밥먹듯 하다가, 겨우 안양생활을 마감하고
남태령으로 이사를 온 터였다.

3.
그때 남태령은 한참 개발될 때여서 큼지막한 새집들이 많았는데
그 큼지막한 집을 살 여유가 없고 그나마 깨끗하고 넓은 반지하방이
우리집 몫이었다.
아버지는 방배역쪽으로 이사를 가기전에 잠시 거처를 마련하신 셈이었다.
어른들의 복잡한 셈법을 제대로 이해할리 없는 나는
아직 공사장 각목이 널려있던 그 동네에서 비오는 날이면 물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올챙이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났다.

집은 반지하였지만 화장실은 1층에 있었던 그 집
그래서 밤에는 밖으로 외출을 하기 힘든 탓에 요강을 마루한켠에 두고 살았다.
집 입구에는 연탄을 쌓아두고 살아야했는데, 겨우내 쓰고 남은 연탄이
아직 한켠에 남아있던 그 집.

4.
그날도 아마 똑같이 해가 떠서 공사장을 비추고, 산너머로 졌고
이문세 노래와 드래곤볼에 한참 빠져있던 소년에게 어쩌면 지루하면서도
달콤한 방학 중 하루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러 소변을 보려고 방에서 나와 요강에다 볼일을 봤는데,
글쎄
내가 오줌을 잘못 누었는지...
요강 안 뿐 아니라  내 종아리쪽부터 문가까지 길게 오줌이 퍼져있는게 아닌가.
아...졸다가 실수했구나 했는데,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가 들렸다.
순간, 현관문을 열어보니, 이미 문턱까지 물이 차올라서 방쪽으로 역류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나는 휴....
'내가 싼 오줌이 아니구나 -_-;;'
라고 안도도 잠시.
급히 부모님을 깨우기 시작, 새벽 혈투가 시작되었다.

5.
삼형제인 우리가 좀더 나이를 먹은 청년이었다면, 아버지와 힘을 합쳐서
역류하는 물을 퍼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집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초,중딩이었고, 부모님은 가구는 포기하고 텔레비젼과 주요물품만
빼서, 집주인집 2층 다락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가보니 1미터 이상은 물이 차서 아예 수영을 할 정도였는데,
문제는 요강에 있던 오줌과 연탄이 빗물과 함께 영혼 결혼식을 올려버렸다는데 있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영혼결혼식 풀장에서 헤엄도 쳤고,
펌프기로 뽑아내는 물에 발을 씻고 가기도 했다.

(분명 100명은 넘게 발을 씻고 갔음, 오줌의 정수기화 -_-;;)

그때만 해도 가구가 물에 잠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6.
나는 어두운 반지하보다 갑자기 옮기게 된 2층 다락방이 좋았다.
초딩때 하던 야영같은 기분이 나서 신나라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물을 먹어버린 쌀 가마니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고 계셨다.
나는 햇살이 반정도밖에 안들어오는 반 지하보다
주인집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2층 다락방 창문이
허클베리핀의 별장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망가져버린 살림을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그늘과 달리
정작 내가 비오는 내내 즐겨보던 것은 프리자와 나메크성인 그리고 사이어인임을 깨달은
오공이 전투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려가던 드래곤볼 해적판이었다.

7.

  90년대 들어서서 망원동 일대 등 비만 왔다하면 물에 잠기는 동네는 많인 사라진 듯 하다.
  그때 이후 우리는 2층짜리 연립으로 이사 갔고,
  처음으로 내집이 생겼다고 가족 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건물은 오래되어서 겨울이 되면, 창틀이 삐걱삐걱 소리를 냈던 그곳.
  밤 11시쯤에는 연립 앞 자동차 위에 고양이가 집주인처럼 드러누워서 눈빛을 반짝이며
  독서실에서 돌아오던 나를 놀래키던 그 동네.
  그렇게 내 청소년기의 한 페이지는 얼룩도 졌다가 약간은 핑크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8.
  나는 어느새 딸을 키우는 애비가 되었고
  한 집안의 살림을 관장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때 가구가 물을 먹고 노오랗게 갈려졌을때,
  어머니 속은 또 얼마나  새까맣게 타들어갔을까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하여
  비 피해가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그때 남태령에서
  담요에 텔레비젼을 뒤집어씌우고 2층으로 나르던 아버지 생각하며
  우리는 즐거운데, 어머니가 남의 집 2층 다락방에 신세지는게 싫다고 하셨던 말씀 하며
  물먹은 쌀가마니를 쓰다듬던 손길이 생각난다.
 
  비는 때때로 영혼을 적셔주는 눈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악마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 삼형제 1  (0) 2006.07.19
미희네집  (0) 2006.07.14
친구와 꿈  (0) 2006.07.09
표류기도 이제 종착역을 향하여...  (0) 2006.07.03
개똥철학  (0) 200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