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고국과 외국 -한국생활 11개월째

dangunee 2007. 7. 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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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달 말이면 내가 한국에 들어온지 만 1년이 된다.
시간이 빠르다.
한국에 들어올때 두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먹고 싶었던 것을 맘껏 먹기,
또 하나는 음 일본표류기 3권까지 완간하기.

현재로서는 첫번째 목표는 달성한 거 같은데, 두번째 목표는 글쎄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한마디로 일축하곤 했다.
"다 팔자지 뭐"
그렇지 세상 모든 일은 팔자다.
그렇다고 숙명론에 빠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와이프는 얼마전 점을 보고 와서 우리의 두번째 일본행에 희망이 비추었다고 했다. 그런 거 보면 종교와 관계없이 팔자는 있나보다.
와이프와 나는 최근 언제 일본으로 다시 건너갈 것인가 말다툼을 하곤 했다.
요지는 일본에 다시 갈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6년을 일본에서 살았는데 이제 유학생처럼 떠돌이처럼 살기 싫다는 것이었다. 숟가락 하나를 사더라도 내 살림을 갖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몽골의 유목민처럼 살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때때로 바람은 불어온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른다. 그러나 바람은 무언가를 말한다. 먼저 떠나니 따라오라고...

2.
한국에 있어서 가장 좋은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땅의 정착한 자의 '안정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참 나는 외국에 있을때랑 한국에 있을 때랑 근원적, 정서적 차이가 뭘까, 그 정체를 내내 머릿속으로 �고 있었다. 뭐랄까 해답이 없는 방정식을 푸는 수학자처럼, 화두를 잡고 도를 닦는 수행자처럼 몸으로는 거칠게 느낀 것이지만 머리로는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

많은 이들이 이땅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이땅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
그 정체는 뭘까.
오늘 맥주캔 두개를 들이키고 드디어 깨달음에 도달하고 말았다. 허허...
그게 뭐냐면

3.
내 일본행의 시작은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천공의 성 라퓨타.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 3장에 나오는 상상의 섬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라퓨타를 가공할 만한 과학력을 가진 성으로 묘사하고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힘으로 정의를 한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로 치면 핵무기일지도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라퓨타의 왕녀 '루시타 토에르 우르 라퓨타'(어머 지금까지 왕족이름을 기억하고 있넹)인 '시이타'는 라퓨타가 '무스카'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읊는다.

地に根を下ろし      땅에 뿌리를 내리고
風とともに生きよう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種とともに冬を超え    씨앗과 함께 겨울을 나고
鳥とともに春を歌おう  새들과 함께 봄을 노래하자.

그리고 나서는 무스카에게 시이타는 일침을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무서운 무기를 가져도, 많은 불쌍한 로봇을 조종해도 땅으로부터 떨어져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법이에요.'

라퓨타를 손에 쥐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무스카의 꿈은 시이타와 파즈의 '바루스'라는 주문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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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퓨타는 환상의 섬이다.
라퓨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공할만한 힘과 보물을 갖춘 섬이다. 유학, 이민, 기러기아빠를 꿈꾸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때 어쩌면 다들 라퓨타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10층 공단주택에 살았는데, 늘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잠을 자도, 회사를 다녀도 공원을 다녀도...이방인이라기보다는 떠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의 꿈을 찾아서 같이 일본에 건너와서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는 늘 미안한 생각이었다. 뿌리를 못 내린다는 것.
 
그런데 한국에서 살다보니 그런 '부유'의 느낌이 없다.
일본에 살때는 집이 망망대해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부표였다면, 한국에서 집은 그저 육지일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업때문에 집을 가끔 비워도 별로 불안하지가 않는다. 딸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아내는 동네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밤늦게 운동도 즐긴다.

그렇다.
비약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또한 인자는 그 사람이 가는 곳이 곧 고향이라고 했으나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고국은 씨를 뿌리는 '땅'이고, 외국은 떠도는 '성'인 것이다.
더 크고 넓은 집을 갖고 더 많은 인간을 호령하고자 권력을 탐하는 것은 어쩌면 전 지구를 지배하고자하는 무스카의 욕망과 닮았다.

우화가 우화로 끝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비치는 현실이 어쩌면 너무 잔인해서일지도 모른다.

5.
오늘 블로그에 대해서 문득 생각을 하곤 했다.

내 이야기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어디로 간 걸까.

그런 고민 속에서 오늘 문득 내가 그동안 감으로 느끼고 있던 세상에 대해서 써보게 된다.
블로그란 뭘까.
매체인가, 일기인가, 자기 기록인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일과 관계는 섣불리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언가를 정리하고 따져보고 자기 나름의 의미를 챙기고 마음속 포켓에 그것을 넣어두어야만 안심을 하는 존재다.

오늘 난 내가 라퓨타를 꿈꾸며 일본으로 떠났던 7년전 가을을 생각한다.
9년전 라퓨타를 처음 보았던 그해 여름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고국과 외국을 떠도는 수많은 영혼을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세상사 꼭 결론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뿌리를 내리를 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블로그가 되었던, 고국이 되었던.....(웬 궤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