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화려한 휴가가 찜찜했던 이유 - 영화에 갇힌 역사

dangunee 2007. 8. 10. 03:27
영화 줄거리
평범한 사람들의 평생 잊지 못 할 열흘간의 기억1980년 5월, 광주.그 날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믿기 싫었습니다.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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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아내는 가끔 옆에서 울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 울어야될 지 잘 감이 안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 뭔가 아쉬웠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엄청나게 감동을 받을 준비를 하고 갔었는데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자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럴까. 이 찜찜한 느낌은 뭘까.
광주시민의 도청사수와 학살의 기억을 자양분삼아 대학시절 데모를 했던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잡지의 영화평을 봐도 의견이 갈리는 중이었다.

2.
 5.18 하면 나는 우선 88년도 청문회가 생각이 난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TV에서는 '집단발포' 책임에 대해서 수많은 의원들이 당시 학살의 주역이었던 공수여단장들에게 쏘아부치듯 이야기했었다. 물론 청문회에 나왔던 모든 증인들은 잘 기억이 안난다,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했고, 전두환은 기껏 나와서 자기 할말만 하고 그나마 백담사로 튀어버린게 다였다.
 당시 학교 도덕수업시간은 광주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는데, 죽음,공포,임산부,공수부대 이런 것들이 꼬리를 물고 떠돌았던 것 같다. 게중에는 광주 비디오를 직접 본 친구들이 자신들이 본 영상에 대해서 생생하게 이야기를 했었고 잘 모르는 나는 그저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대가 리얼리티를 더해주려고 했는지 신림동에서 터지던 최루탄 연기는 방배동의 한 중학교 교실까지도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89년도였던가. TV를 통해 보았던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타리는 그날의 참혹한 상황을 일부로나마 알 수 있었고, 당시 학살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던 그때 그 다큐멘터리는 그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언제고 재현될 수 있는 현실공포 중 하나였다.

 대학을 입학했던 해, 5.18 집회때 지루한 햇살과  함께 기나긴 총학생회장의 연설만 생각난다. 첫 가두시위에 참여했던 그날은 한편으로 5월 광주에 관련된 정보를 비약적으로 흡수하는 계기가 되었고, 광주는 그저 남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도 '아아 민주정부'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어떤 열정의 근원지가 되었다.
 그후 광주에 가면 '혁명의 성지'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망월동 묘역에 갔을때 이건 묘지가 아니라 버려진 무덤같다는 것이었다.

 

3.
 '화려한 휴가'
 사실 영화 자체는 5.18의 기억을 대중적으로 풀어내고 가족과 형제애로 묶어내서 영화로서 특별히 문제가 없어보인다. 좋게 보자면 너무 정치적이지도 않았고 한편의 영화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광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2시간 내내 그해 5.18을 전후해서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도청 앞 집단 발포 장면은 기록영화처럼 장엄하기도 하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매일 5시만 되면 길에 애국가가 퍼지고 길가던 시민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서서 국기를 향한 다짐을 해야했던 그 시절....벌써 먼 옛날이다)

 영화는 광주민주항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이 왜 총을 들어야만 했는지를, 그리고 마지막까지 광주에 남은 사람들이 누구였고, 계엄군이 쳐들어오던 새벽 가두방송을 하면서 목청껏 남긴 메세지는 무엇인지를 풀어서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다.

 영화내내 강민우(김상경 분)의 표정에는 잘 몰입이 안되었고, 신애(이요원 분)의 마지막 외침도 처절한 비극으로 느껴지기 보다 그냥 서글픈 외침으로 느껴졌다. 즉 힘이 실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강진우(이준기 분)의 분노는 깊이가 없어보였고, 그의 죽음은 극 진행상 너무 이른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엄군이 일시적으로 물러가자 도청 수습위원회 대표를 맡은 박흥수(안성기 분)도 생뚱맞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헐리웃 액션 영화'도 아닌데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나서 모든 시민군들의 대표를 맡고 도청결전의 최후의 싸움을 지도한다.

 나는 계속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감정의 샘은 물을 끌어올리기는 커녕 더욱더 수심을 깊게 할 뿐이었다.


4.
생각해보면 <오 꿈의 나라>를 제외하고 광주를 다룬 영화는 모두 보았다. <꽃잎>, <박하사탕> <오래된 정원> 그리고 영화는 아니지만 <모래시계>까지....그냥 '광주'를 다룬 것만으로도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작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화려한 휴가'를 기대하고 봤는지 모른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를 보고 오히려 알 수 없는 찜찜함에 휩싸이고 말았다.
왜일까.
하루종일 생각해본 결과, 영화속에서의 광주시민들의 싸움이 그저 액션영화나 재난영화의 일부처럼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정도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중적인 상업영화가 갖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애가 계엄군이 도청을 향해 진군하던 그 새벽에 '광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친 것은 그저 무자비하게 당한 '광주'를 그저 기억해달라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광주의 죽음의 의미를 똑바로 알고 '광주'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마지막의 강민우와 박신애의 이상야릇한 영혼결혼식 사진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영화는 80년 광주가 그렇듯이 그 전 이야기도 그 후 이야기도 없이 그저 영화속에 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광주'만을 필름속에 갇아둔 셈이다.

  이 영화만 봐서는 역사를 잘 모르는 후세들은 '80년 광주'가 '실미도'와 다른게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실미도는 뒤늦게 밝혀진 어두웠던 시대의 증언이라면, 광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아픔을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5.
 80년대 벽두에 벌어진 참혹한 학살 사건은 80년대 내내 대학가를 시위가 최루탄을 난무하게 만들었다. 권력에 눈이 먼 신군부일파가 주동한 이 사건은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인이 국민을 학살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은 송두리째 날려버리게 된다. 80년 광주의 고립과 학살을 외면했던 사람들도 5월광주의 진실을 알고난뒤 87년 6월항쟁때는 투사가 되었고 결국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내는 뿌리가 되었다.

 지금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광주세대(386세대)를 '살육과 절망만이 가득한 세대'라고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민주화가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속 '80년 5월'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일방적으로 패배한 싸움이지만,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서 '민주'를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정신은 7년후 화려(?)하게 부활한다.  체육관 선거로 정권 연장을 기도하던 신군부세력은  '위수령'까지 선포하면서 80년 광주처럼 국민을 협박했지만, 광주의 기억은 살아남은 모든 사람에게 끝까지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에서 짤막하게 나마 그런 앞뒤 정황이나, 마지막 멘트라도 있었으면 아마도 덜 찜찜했을 거 같다.

 나는 96년이었던가 비자금 문제로 전두환이 구속되던 해, 망월묘역의 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참배차 갔을때, 전두환이 붙잡힌 모습의 사진과 함께 '전두환 구속'이라는 커다란 헤드란이 박힌 신문이 어느 무덤 앞 헌화함 속에 담겨져 있던 것이었다. 아침 이슬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어느 오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그 헌화함까지 비추고 있었다.
 아무 말없는 묘비와 독기를 품고 잡혀가는 전두환의 사진이 묘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산자들은 그나마 살아서 부끄럽게 나마 그때 빚졌던 몫을 어느정도 해내고 있다고, 그곳은 말하고 있었다.

그 후, 광주에 갔던 것은 대학 졸업후 신묘역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광주비엔날레가 마지막이었고 광주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6.
오히려 일본에 갔을때 일본사람들과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광주를 보는 시선이 사뭇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한국에서는 군대 경험이 있다보니 시민들이 총을 들 수 있었다'
'우리도 광주를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한국사람들의 그 저항정신이요.'

80년 광주는 일본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일본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NHK에서 방영되는 '광주'의 영상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 일본시민단체 토론회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일본사람들은 대통령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촛불시위를 하고, 소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제1당으로 만들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어서가 아닙니다. 5.18 광주시민들의 피를 밑거름으로 쟁취한 '직선제'가 국민의 간접대표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탄핵의 정당성이나, 열린우리당의 현재와는 별개로...)

'일본의 민주주의는 맥아더 점령후 GHQ를 통해 주어진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피를 먹고 자란 나무와도 같기 때문입니다.'라고...

내 대답에 사코다씨는 한국역사에서 일본사람들도 배울게 많다고 했다.
한국현대사의 모순은 광주로 시작해서 광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그런 광주의 저항정신은 광주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게도 엄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진행형의 역사이기도 하다.

'화려한 휴가'가 찜찜했던 이유는 광주에 얽힌 시간들이 내게 아직까지 그냥 '영화'로만 볼 수 없는 기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7.
영화관에서 나올때 어떤 초등학생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그니까 누가 이긴거야?"
'마지막에 다 죽었잖아. 그래도 우리가 이긴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고,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우리가 이긴거지, 이렇게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상업적으로라도, 대중적으로라도 만들어서 전국 수백개의 상영관에 내걸 수 있는 자유가 우리 곁에 살아숨쉬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날의 참혹한 이야기를 보고 부모세대와 다음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만으로도...우리는 이긴거지.
꼭 브루스월리스나 해리슨 포드가 나와서 납치범들이나 테러범을 응징해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란다!!!'

영화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 가족 중 어머니였던 분이 이렇게도 한마디 언급했다.

"저건 영화라서 그렇지 실은 말도 못했어. 도청 지하가 시체 밭이었다는데 뭘...'

낯익은 광주억양와 함께 들려오는 그 한마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광주시민들의 사진들을 어렵게 들춰보던 스무살 그해의 기억과 함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로만 끝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려한 휴가' 관람을 하던 날을 끝으로 나의 2007년 여름휴가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