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일본사람들이 독립기념관에 간 이유는?

dangunee 2007. 8. 22. 15:46

지난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독립기념관에는 21명의 일본인 연수단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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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심규상

"일본에선 피해받은 역사만 배웠어요"
[현장] 독립기념관 찾아온 일본인 역사기행단 <- 오마이뉴스

가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서울의 명동이나 인사동 혹은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을 찾은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서 나는 19일 저녁 이들이 머물고 있는 비원 관광호텔을 찾았다.

일행중에 필자의 친구인 사코다씨가 한국어 일본어 통역을 맡고 있어서 우선 그와 인사동에서 만났다. 인사동은 독립기념관에서 연수를 끝낸 이들이 비원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차 잠깐 들른 곳이다.

통역이  힘들어요!!

당그니: 통역하느라 힘드시죠?
사코다: 네...ㅜ.ㅜ 특히 강연이 있어서 1시간 내내 떠드느라 힘들었어요. 그리고 저녁에도 충남시민단체와의 만남도 있어서 쉴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그니: 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사코다:
            첫날(16일)은 김삼웅 관장님 인사 및 특별강의
           "동양평화와 일본의 역할"
         
            둘째날(17일)은
            강의1 : 한국독립운동사 "이봉창, 일본천황을 공격하다"
            강의2 : 전쟁책임과 재일 한국인. 영화 '우리학교' 상영
                      감독과의 대화
   
            마지막날(18일)은 야외 전시물 탐방, 교육개발팀 팀장과의 인사

독립기념관에 있는 전시물은 대부분 둘러보았고요. 특히 강연이 좋았습니다. 다들 대만족입니다.

당그니: 이번에 참여하신 분들은 주로 어디에서 오셨나요?
사코다: 음...구마모토에 계신 분들을 중심으로, 후쿠오카, 도쿄, 교토, 치바, 히로시마 등 다양합니다.
당그니: 연령대는요?
사코다: 아 연령대는 높죠^^. 평균 55세 정도. 30대도 몇분 계신데, 대부분 나이드신 분이에요. 그러고보니 규슈대학생 한명이 있네요.

사실 일본 내 시민운동을 하거나 역사교과서에 관심이 있는 세대는 60,7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로 대부분 나이든 사람이 많은 게 한계다.

당그니: 참가하신 분들의 면면은요?
사코다: 주로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많지만, 꼭 교사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가하도록 했어요. 특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분들도 2분이나 있는데, 그런 분도 참가를 했어요.

당그니: 그럼 이번에 독립기념관에 방문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사코다: 아 그건 단장님께 여쭤보는게 좋을 거 같네요.


일본에서 년간 1만명이상 독립기념관을 다녀간다

비원호텔에서 만난 단장님께 이번 독립기념관 방문의 취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건내자,이번 투어에 관란 안내 프린트를 건냈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다.

한국독립기념관 역사연수 투어 안내

<투어 모집에 대해서>
* 구마모토와 한국의 충청남도의 시민교류가 시작되서 10년을 맞이합니다. 이 교류는 97년 일본의 교과서문제가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을 바탕에 깐 교류를 확대하고, 농민이나 교사, 환경단체, 종교인, 언론관계자등 여러레벨에서 구마모토와 충남 시민간의 교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해서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들렀던 곳이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독립기념관입니다.

* 이번에, 독립기념관의 전면적인 협력으로 독립기념관 역사 연수 투어를 기획하기로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 을 주창하는 극우 아베정권의 탄생으로 교육기본법이 개악되어, 이것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관계 3법등이 차례로 개악되고 있습니다. 올해 봄 고교역사교과서 검정으로 오키나와전의 [집단자결]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알리는 기술이 문부성으로 삭제된 것이 말해주는 것처럼, 09년 의무교육과정의 교과서검정에서는 역사기술의 왜곡,수정, 헌법 등에 대한 공격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개헌을 사정권에 넣은 아베정권에 의한 위험한  움직임이 강화되는 이때, 우리들은 아시아의 사람들과 공통된 역사인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지금이야말로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요? 제 첫걸음으로써 바로 옆나라인 한국독립기념관에서의 역사연수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 연수는 구마모토 뿐 아니라, 지금까지 교과서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다른 지역의 분들에게게 참가를 요청, 같이 공부할 예정입니다.  

당그니: 안녕하세요. 다나카 단장님, 이번에 독립기념관 역사 연수투어를 기획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다나카(55): 그 전부터 충청남도와 교류가 있었고, 작년에도 교과서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올해 4월에 독립기념관에 가서 사전 답사를 했고,, 한국쪽 교육개발팀 구마모토에 와서 교육내용 협의해서 어렵겠지만 좀더 일반인들에게 맞는 내용, 그리고 인물이 중심이 되는 내용을 부탁드렸는데, 독립기념관측에서 준비를 많이 해주셨네요.

 
당그니: 이번에 참가하신 분들은 총 몇분입니까

 

다나카: 원래 계획은 30명이었는데, 21명 참가했습니다.
           계획에 미달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게 나으니까요.


그는 조금 멋쩍은 듯이 웃었지만, 역시 이런 연수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하나 듣게 되었다.

다나카: 독립기념관에 일본사람들이 연간 2만명은 다녀갔었는데, 요즘에는 1만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8-90프로 고등학생 수학여행단이죠. 단 공립학교에서는 못보내고 사립학교만 가능합니다.

당그니: 왜 숫자가 만명단위로 줄었을까요
다나카: 역사교과서 문제가 터진 이후로 일본쪽에서 '자숙'하는 의미에서 한국에 안 보내기로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보내는 학교가 있구요. 사람수가 줄었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문제가 터지면 한국쪽에서 교류를 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무작정 끊어버려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 싶었다. 일본정부에서 역사왜곡 경향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일본의 각 지역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고 공유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당그니: 그럼 수학여행단으로 오는 일본 고교생들은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하고 오나요
다나카: 아..네. 사전학습을 교실에서 하고 옵니다. 뭐 그렇다고 와서 깊이있게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고 한번 쭉 둘러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역시 안보내는 것보다는 보내는 것이 백배 낫죠.


독립기념관의 광대함에 놀라다

나는 단장님 옆에 있는 오가와(남,30대후반,초등학교 교사)씨에 질문을 던졌다.

당그니: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한국은 처음이신가요?
오가와: 네 처음입니다.

당그니:
독립기념관을 다녀온 감상은 어떠세요.

오가와 : 충남시민 분들과 기념관측의 환대에서 따듯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역사 강의도 최근의 연구성과와 함께, 다양한 시각이 들어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시물에 대해서 인데요. 각 개별 전시물에 일본어는 무리라 하더라도 영어로 병기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한국어를 공부해야하겠지만..(글적글적)...^^;;
            그래도 영어나 일본어가 각 전시물마다 병기가 되어 있다면 더 많은 일본사람들이 보고 알아가는 것이 많을 거 같습니다.
 


당그니: 오시기 전에 독립기념관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나요.
오가와: 사전학습은 했습니다
. 저는 사실 이번에 독립기념관에 와서 이 시설 자체의 광대함에 놀랐습니다. 이렇게 크게 만든 전시관은 일본에서 볼 수가 없거든요.


당그니: 이번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있다면 뭔가요?
오가와: 강연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한국쪽 강사님의 높은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깊이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이 되면 독립기념관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나카: 독립기념관이 87년에 개관을 했는데 아직까지 썩 일본관광객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멋있는 전시물을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역사교육은 후퇴하고 있다.


한창 다나카 단장과 아오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 일본 고등학교교사인 아오키씨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도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오키씨는 현재 도쿄에서 히노마루,기미가요 제창 반대운동을 하고 있으며 고교 역사 교사를 하고 있고 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있다.

당그니: 안녕하세요. 한국에는 몇번째 오셨나요?

아오키(59): 저는 한국에
5번 정도 왔는데, 전교조와 교류를 하기도 했고, 위안부 할머니의 수요집회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때가 79년이었는데, 그때 군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네요. 당시에는 고등학생들도 교련복을 입고 있었고...

당그니: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교련수업이 없어졌거든요.
아오키: 아무튼 많이 민주화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그니: 독립기념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아오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3.1운동의 전시물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독립운동이 전개되어 갔구나 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쪽과 관련된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되도록이면 한반도 전체독립운동을 포괄적으로 다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그니: 역사교사로서 요즘 일본 분위기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오키: 일본은 요즘 교육3법이 성립되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등 역사에 대해서 국가가 좀더 통제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 반대로 가는 거 같은데 일본만 역행하는 꼴이죠.


당그니 :
일본 학교내에서 한국관련 역사수업은  

아오키: 교과서에서 한국에 대해 다루는 것은 6페이지 정도입니다.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4월부터 12월까지가 메이지 유신까지, 그리고 그 이후 1,2,3월에 한국강점, 3,1운동, 황민화 교육 등으로 진행이 되는데 사실 깊이있게 교육하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여전히 소수파입니다만,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좀더 발언권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당그니: 아까 한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셨는데 한말씀?

아오키: 사실 배용준을 비롯한 한류는 일본 내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어로 방송에서 CM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거든요.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는 이상한 나라의 말로 치부되기 일쑤였어요. 그것이 이제는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와 한국어가 인기가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죠. 요즘 NHK 라디오 강좌에서도 대단한 인기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류팬들이나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짜 한국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만큼 이미지를 바꾼 것만으로도 저는 대단한 성과라고 봅니다.

오가와: 사실 제 주위에도 한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런 것은 과거일 뿐이고, 골치아픈 문제는 일본어로 물에 흘려보내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 부분은 좀 조심스러운데, 그래도 이런 교류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오키씨는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서 그런지 과거와 비교하면 일본 내 한국 이미지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우리는 호텔에서 종로 5가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서 더 이야기를 했다.

다나카 단장과 좀더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인들 '명성황후' 묘소 찾아 사죄(관련기사 바로가기) 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나카: 얼마전에 명성황후 묘소를 찾아서 사죄한 일본사람들이 있었죠. 언론에 나왔던 거 같은데..
당그니: 네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기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다나카: 구마모토에서 알고 지내는 선배가 그 모임을 이끌고 있습니다.
당그니: 아 그렇군요. 이번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나카: 저희는 대환영입니다. 그런데 산케이나 요미우리에서 워낙 안좋게 이야기를 하니까 문제지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며 , 한일 양국이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좀더 오갔다. 피곤한 일정속에서도 한 30분정도 더 이야기를 하다가 세분은 숙소로 돌아갔다.  


한일 교류는 계속 되어야.


나는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들과 종종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에 관한 기사, 특히 일본의 과거에 대해서 사죄를 하러 왔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 약간 불만인 것이 왜 그들이 왔고,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서는 잘 언급을 하지 않다는 점이다. 약간은 호기심을 담아서 그냥 이런 일본사람들도 있다고 보도하는 경향이 짙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독립기념관을 찾은 사람들은 단순히 1회성으로 한국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원래 일본에서 역사교과서 왜곡 저지를 위한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고, 일제가 한국에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반성을 하고, 아울러 일본정부의 역사왜곡에 대해 오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독립기념관을 찾은 이유는 역시, 일본에서는 알 수 없는 한국쪽 시각을 알고 싶어서이다. 일본쪽 시각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 3.1운도, 황민화운동 이정도밖에 없어서 한국인들이 일제시대에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다.

이번에 참가하신 분들은 대부분 만족을 했다고 하며, 앞으로 일본에 돌아가서도 학생들에게 그런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문제나 독도문제가 나면 우리는 상징적으로 그동안 교류해왔던 일본의 단체와 관계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일본사람들이 독립기념관을 방문, 연수하는 데는 한국쪽 시민단체의 역할도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계속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그 결실로 이렇게 단순한 관광이 아닌 공부를 하는 행사가 만들어 진 것이다. 다나카 단장은 올해는 준비 기간이 부족했지만 내년에는 좀더 일찍 준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최근 보도된 미즈노 교수의 이중행각이나 한국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구로다'같은 일본인도 존재하지만 나는 일본 내에 여전히 진실된 역사를 믿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꿔보려는 일본사람도 많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일 교류는 더 많이 확대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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