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시청에서 만난 그녀

dangunee 2007. 9. 5. 02:55

1.
지난 주 시청에 갈 일이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이렇게 물었다.

"시청역 안에 즉석 사진 코너 있어요?"
"요즘도 그런게 있어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거든다.
"몇개월전까지 있었어요, 아마도...."

비자 신청을 위해서 반명함판 사진이 필요했던 지라, 무조건 2호선 시청역으로 내려갔다.
한 5분간 지하를 돌아다녀보니 2호선 부근에는 없고 1호선 개찰구쪽으로 가는 방향에 한대가 보였다. 앗싸!!!

가격은 7000원
흠.
어서 찍어야지

사진기 안으로 들어가서 만원짜리를 넣었다.
그러자 사진기는 역겹다는 듯이 바로 토해냈다.

잘 읽어보니 '천원짜리만 된다'고 써있었다.
나는 얼른 천원짜리를 지갑에서 빼서 밀어넣었는데 하나를 밀어넣고 나서 지갑안에 있는 지폐수를 세보니 6개가 안되었다.
옷...
그래서 반환버튼을 찾으니 이런 덴장 반환버튼이 없는 거다.
(ID-포토 회사 아저씨들 이렇게 물건을 만들어 놓음 어떡해요!!!)

난감해져서, 어찌해야되나 이러고 있다가 이대로 천원을 버리고 갈 수도 없고 난처한 그때 검은 천 옆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저...사진 찍으실 꺼에요?"
"네."
"저 그럼 여기 천원이 들어가 있는데..."
아주머니에게 천원짜리가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먼저 찍으라고 하면서 '천원'을 받아가지고 왔다.
일단 환불 성공...휴

2.
일단 나는 그날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했으므로 어쨌거나 시청역에서 끝을 봐야했다.
그러려면 환전을 해야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그 흔한 만원짜리 지폐교환기도 없는 거다.
그렇다고 껌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청역 지하도를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레코드점이나 화장품 가게, 명함파는 가게 이런 것만 있다. 그렇다고 교통카드도 있는데 전철표를 사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환전하기를 포기하고 만원짜리 지폐를 사용할 수 있는 즉석 사진기가 있는지 찾아나섰다. 1호선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자 또 다른 즉선 사진기가 보였는데, 역시나 같은 회사의 사진기였다. 에라이.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 한 여자가 그 사진기 안에 들어가있고, 회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길가는 행인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치고 그 사진기 근처를 갔는데, 내가 가까이 가자 그 회색 작업복 아저씨가 뜬금없이

"저기 이 사진기 사용할 줄 아세요?"

나는 순간
'엇...나도 한국에서 이걸로 찍는게 7년만이라 가물가물한데...'
사실 아까 천원짜리도 반환받지 못할뻔한 생각이 나자 

"저. 저도 잘 모릅니다."
난 그 순간에도 우씨 환전 어디서 한담 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どうしおう!! f
일본어가 들려왔다.
"誰か読んできて!!”
사진기 안에 들어가 있는 여자가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係員よんできて!! はやく!!

나에게 기계 다룰줄 아냐고 묻던 회색작업복 아저씨는

"아 이 사람 일본사람인데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고, 어떡한담"
아저씨는 소리지르는 그녀에게
"가만 있어봐....이거 어떻게 하더라"
이렇게 끙끙 해메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아저씨 역무원이세요?"
"아니 난 택시기사에요. 여권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리로 데리고 왔는데 무슨말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찍는지도 모르겠어서...난감하네요. 내가 뭐 일본어를 알아야 말이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아씨. 일본어 할 줄 안다고 할까 말까.
통역이야 되겠지만 아가씨 흥분상태로 봐서 내가 섣불리 개입했다가 사진기가 제대로 작동안하면 나보고 돈 물어내라고 하는거 아닐까? -_-;;
그냥 모른척 하고 갈까 말까....하다가...
그래도 상황은 파악해야겠기에
사진기 안을 들여다보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봤다.

들여다보니 금액은 이미 7000원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명함사진이냐 패션사진이냐 고르라고 하는 단계였다.

휴 다행이다.
돈 먹은 상태는 아니네^^;;

흠흠...(목소리를 깔고)
え。。とあのこの二つのなかでどんな写真がとりたいですか
"저기 이 두 개 중에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요?'

일본어로 말을 건냈다.

あ。。日本語しゃべれるんですか?
"아 일본어 할 줄 아세요?"

그때부터 느닷없는 사진 촬영 통역(?) 도우미가 되어서 각 버튼의 뜻을 설명해주고 차례대로 진행을 시키게 되었다.

결과는 특별히 문제없이 여권사진 6장을 뽑는데 성공!!

아가씨는 일본어가 통하지 않아서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는데, 말이 통하고 원했던 사진을 구하게 되자 목소리도 낮아지고 평정심을 되찾게 되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감사했습니다."
ここから日本大使館は遠いですか
"여기서 일본 대사관은 머나요?"

나는 택시로 5분밖에 안걸린다고 대답해주었다.

옆에 있던 택시기사 아저씨도
"아...일본어를 하실 줄 아니까, 참 다행이네요. 고마웠어요"

그때 나도 아저씨가 택시기사임을 놓치지 않고
"저기 저도 사진 찍어야 되는데 오천원짜리 천원짜리로 좀 바꿔주실래요?"

이렇게 해서 나는 순식간에 위기(?)빠진 일본인 관광객도 돕고 내가 필요로 했던 환전도 했다.

그리고 나서 사진을 찍은 둘은 서둘러서 출구로 빠져나갔는데, 아마 택시를 밖에 잠시 세워둔 모양이었다.

3.
어쨌거나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첫번째는 7년동안 써보지 않았던 한국 즉석사진기를 그녀를 통해서 시물레이션을 해볼 수 있었다는 거고
두번째는 환전을 해서 천원짜리를 7개가 만들었다는 것.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약간은 들뜬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문제는...
갑자기 다른 사람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자기 옷매무새도 제대로 신경을 못쓰고 찍었다는 것이다.

그날 나온 내 사진은  -_-;;
.
.
.
.

목 아래 단추나 제대로 잠글 껄..
그래도 비자 신청 사진인데 ㅜ.ㅜ

천원을 날릴 위기를 넘기고 환전까지 해결, 무사히 사진까지 찍게 되었는데, 결국 마무리가 영 ㅜ.ㅜ


ps> 잠깐 추리

잠깐 동안 벌어진 짧은 대화내용을 구성해서 추리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1. 아가씨는 다른 사진도 아니고 여권사진이 필요했다.
   (여권이 필수인 관광객이 여권사진이 필요한 경우는?)
2. 그녀가 흥분상태였던 것은 시간에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사진을 찍고 나서도 택시기사 아저씨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3. 일본 대사관이 어디냐고 물은 것은  급하게 그곳에 가서 볼일이 있다는 뜻이다.

자, 이렇게 보니 그림이 딱 나온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여자분은 비행기 시간에 �기는 여권분실자임이 틀림없다는 것.
즉 여권을 분실해서 임시로나마 쓸 수 있는 임시여권을 급하게라도 만들어서 비행기시간에 맞춰서 가야하는 절박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환전할 곳을 찾던 전혀 인연이 없던 나랑 만나게 된 것이다. 뭐 아님 말고...-_-;;

여러분, 이 추리가 맞는 걸까요?

'나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한달...  (0) 2007.10.08
다음 블로그를 새롭게  (0) 2007.10.06
명함을 만들다  (0) 2007.08.30
일본 비자 신청  (0) 2007.08.28
무한도전?  (0) 2007.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