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30대의 눈으로 20초반의 사랑을 엿보다

dangunee 2005. 8. 14. 00:36

30대의 눈으로 20초반의 사랑을 엿보다

 

                     - 비포 선라이즈 vs 비포 선셋!!

 

 

1.

아마 비포선셋을 보지 않았다면, 내가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볼일은 없었을 것이다. 10년만에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재회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앗..저 배우들이 혹시....유쾌하기만 했던 젊은 그들? 문득 어렴풋이 10년전 기억속에 묻혀있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해냈다.

 

10년전 우연히 비디오 가게에서 골라봤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

  두사람이 탄 열차가 지나가고, 어느 레코드가게에서 노래를 같이 듣던 장면과 저녁 강가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모습이 아스라하게 머릿속에 번졌다. 유럽을 여행중인 한 미국남자애가 프랑스여자애를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를 같이 보내는 이야기.

  10년새 이미지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이 새벽에 헤어지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새벽 때문이다. 그 시절 허구한날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던 나에게, 20대초반의 일상이란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첫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일이었다.

 그들도 새벽을 공원에서 보냈고, 난 그들이 6개월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유럽땅은 커녕 한국땅도 벗어난 적이 없던 그때 나에게 그들의 만남은 그야말로 환타지이고, 부러움이었다. 게다가 로맨스까지. 한국인 이외에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난 적이 없던 나에게 그들에게도 사소한 일상과 번거로운 문제가 걸려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특별해 보였다. 왜? 미국인과 프랑스인이니까.

 

 

2.

 10년전 내가 젊은 그들의 사랑을 엿봤을 때 나는 그들을 관찰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도 20대에 열렬히 동참하고 있었으니까, 제시는 나의 대리역이었을 뿐이다. 그가 셀린느와 즐겁게 하루를 여행할 때 나도 미일제국주의를 깨부수자고 떠드는 것을 잠깐 멈추고(?) 그들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집 한 구석 소파위었지만.

 그리고 그들의 젊은 시절을 다시금 훔쳐보기 위해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비포 선라이즈를 틀었다.

 기미나 잔주름이 없이 수줍은 얼굴을 한 프랑스 처녀 셀린느와 (왜소하고 약간 초췌한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정열적이고 적극적인 아메리칸 제시가 비엔나행 열차에서 만난다. 그들의 관심사는 철학, 사랑, 인류, 그리고 순간 이런 것이다. 아니면 묘지에 가서 죽음을 떠올려보는 것. 

 20대는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논한다. 시를 논하듯이. 거기에 실존의 무게가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땐 그런 단어가 멋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나이다.

 

 

3.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고, 서로가 바라보는 눈빛속에는 미묘한 시소게임 같은 설레임이 보인다. 빛의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세상을 향한 기대가 그들의 어깨에서 느껴지고, 둘이 지나는 골목,술집,강가 이 모든 것들 그 둘을 위한 거대한 데이트 셋트장으로 변한다. 세상 전체가 둘만을 위한 무대가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게다가 그들이 가는 길에는 낯선 도시의 새로운 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점쟁이가 등장하더니, 시인이 등장하고, 이내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춘다. 지상에서 가장 완벽한 데이트다.

 

 영화 내내 20대 초반의 그들은 이제 다 자라서 둥지를 떠나 먼 하늘을 날아오를 매처럼 느껴졌다. 저 푸른 하늘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어깨에는 이미 충분히 센 날개가 자랐고, 부모들이 얼기설기 꾸며놓은 조잡한 둥지를 벗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거 같은 저 넓은 하늘도 사실 다 비행구역이 정해져 있고, 게다가 날개질을 멈추면 추락한다는 사실도, 나이가 들면 지루한 반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없는 때다.

 

 

4.

 '비포 선셋'

 10년후 폭삭 늙어버린 제시셀린느의 시끄러운 수다와 너덜너덜해진 열정의 조각을 비포 선셋에서 보았을 때, 내 자신의 열정도 누더기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시간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이 넘은 그들이 십년만이 만났을 때, 10년전 나눠 마셨던 열정의 잔영을 그들은 견디지 못한다.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역시 그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서로 다른 상대와 결혼을 했고, 제시는 4살짜리 아이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제 지켜야할 일상이 있고, 대책없는 배낭여행따위는 떠나지 않는다.

 

서른이 넘고 각기 가정이 가진 그들이 가야할 길은 이제 은밀한 로맨스가 숨쉴 것 같은 오솔길이나 배고픈 시인이 시를 써주는 강가가 아니다. 한낮 태양이 쏟아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신작로다. 물론 중간에 잠시 멈춰서서 그늘을 찾을 수는 있겠지. 그래서 둘은 세느강을 유람선을 타고 지나면서 10년간 갈라진 길을 걸었던 그 엄청난 거리만큼 조금은 간격을 메우려하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지킨다. 그게 삼십대 이후의 삶의 방식이니까. 아니 가정을 가진 자들의 울타리 같은 것일 수도. 그래서 가정은 어쩌면 여행자들이 방황을 접고 안착한 섬이기도 하지만,

 

 10년. 청년과 처녀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되었다. 나는 한국을 떠났고,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살다보니 이들의 일상도 뻔하다고 느낀다. 내가 일본으로 떠날 때 가졌던 환상은 가보지 못한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햇수가 느는 만큼 환상은 급속히 줄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빈자리를 한국에 대한 환상이 다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외국인들도 그 배우들 같은 어메리칸이든 마드무아젤이든 별로 특별한 삶을 살 것 같이 보이지 않고, 계량화된 수치로 둘러싼 세계와 잠깐의 휴가를 기다리는, 여행, 그리고 안정된 가정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이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것 쯤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5. 

  신경숙은 30대가 인생의 사춘기라 했다. 김광석은 서른에 절망했고, 나이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줄창 불러댈때는 나이 서른까지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혹은 좋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이 있었다.. 미칠것 같던 정열과 티 없는 얼굴과 소주를 몇병이고 들이마셔도 멀쩡했던 그 시간대는 이제 누군가의 추억으로만 남았다. 대신 사물을 차분히 바라보는 묘한 안정감이 생겼다. 능력보다 열망이 더 가득차서 괴로웠던 그 시간이 끝나자, 사소한 일상이 발하는 은은한 시간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비포 선셋을 보았을 때, 그저 그렇게 변해버린 운명같은 사랑을 확인한 그들이 마치 나인양 난감함을 느꼈지만, 어쨌든 선라이즈선셋도 다 우리들이 통과했고, 통과해가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비포 선셋의 두 남녀는 이제 영원히 20대시절을 돌아가지 못하고 필름속의 불꽃 같은 사랑으로 남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인생의 강렬한 빛깔이 누구에게나 딱 한번만 돌아간다는 사실에 어떤 고소함을 느낀다.

 

 '비포 선라이즈'가 한편의 시였다면, '비포 선셋'은 소설 같은 영화다. 제시와 셀린느는 그럼에도 잘 살아갈 것이다.

 

  안 그럼 별수 있어?

 

 

 

ps. 환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가슴아파해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끔 달콤한 사탕이 언제나 보약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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