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친구와 꿈

dangunee 2006. 7. 9. 21:51



1.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려고 했을때
만난 친구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를 만난게 1999년 7월이었으니 올해로 7년이 된다.

2.
그 친구와 나는 그때 꿈이 같았다.
둘다 만화가가 되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만화를 배우는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2000년
내가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때,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너는 이제 애니메이션 길을 가겠구나. 나는 앞으로도 만화를 그릴 생각이니,  이제부터 우린 서로 다른 길을 걷겠네"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같은 업종으로 보는 분들께는 그게 그거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작업은 다르다. 거대한 자본이 투여되는 것이 애니메이션이라면,
만화는 개인적인 창작에 가깝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만화나 애니 둘다 이미지를 가지고 메세지를 엮어내는 점에서 같지만,
애니메이션이 자본과 인력과 상영시간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틀리다.

3.
때때로 일년에 한번 한국에 들어갔을때,
그래서 한 3년쯤 지났나.
그 녀석은 그대로 다 망해간다는 만화판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데뷔는 하지 않았다. 초췌해보였지만, 녀석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 후 일년.
녀석은 결국 만화를 그만두었다.

"만화는 더이상 돈이 안되고 내게 안맞는거 같아. 게임 쪽으로 갈꺼야"
"음..그래."
꿈을 접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말릴 수도 없었다. 게임쪽 디자이너로 가서 자리를 잡기를 바라는 수 밖에

얼마지나지 않아, 녀석은 게임회사에 취직했고, 한동안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4.
2년전쯤, 내가 만화를 그리려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있을때,
친구는 게임회사를 그만두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다.

"내겐 컨셉 디자이너가 맞아"
컨셉 디자이너란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캐릭터나 설정등을 그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즉 작품의 컨셉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알 수 있어야 한다. 친구는 컨셉디자이너로 한동안 일을 잘 해냈다. 가끔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그림을 보고 내가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내가 그린 만화에 대한 주요한 조언자이기도 했다.

  친구는
  "나는 만화를 꿈꾸었는데,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고 있고, 너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지만 만화를 그리는 구나. 꿈은 이렇게 빙빙 도나봐. 세상 좁지?"
 
  어쨌거나, 녀석과 나는 5년만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게 되었다.

5.
올해 초.
  녀석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를 배우겠다고 했다. 잘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림쟁이의 길을 가려나보다 생각했다. 뭔가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또 한번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얼마전 메신저에 접속해있는 녀석이 반가워 말을 걸었다.

"어떠냐. 요즘엔?"
"응..나 학원 그만 두었어."
"뭐? 그럼? "
"나 중국 갈꺼야. 지금 중국어 학원 다니고 있어."
"중국? 아니 뜬금없이 웬 중국?"

친구는 이제 완전히 그림을 접었다고. 그림은 그냥 취미로 하겠다고, 이걸로 먹고사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중국에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른 중반에 다가가는 이 나이에.

6.
그가 최근에 본 책을 알아보니, 역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들어있었다.
나도 이 책을 보고 일본에 오기전에 일확천금을 꿈꾼적이 있었다. 일본에 와서 이러저러한 사업을 하면. 혹은 일본에 와서 만난 사람 중에 사업으로 성공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보았다. 또 한국쪽에서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구하는 이들도 많았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하루 하루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돈에 얽매여서 사람으로 무의미한 삶을 보내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자기가 일하지 않고도 벌 수 있는 투자의 비밀, 부동산으로 유혹한다. 한때 이책이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데는 암웨이가 일정부분 역할을 했으며, 그 책에 나온 사업모델이 모두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활과 꿈에 쪼들리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환상을 심어준다.

투자,부동산이란 말이 한국사회를 강타했을때, 나도 관련 카페를 들어가보기도 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길은 없다는 것에 도달했다.

'세상에 지름길은 없다. 그길이 있다면 이미 누군가 그길을 닦고 통행료를 받고 있을 뿐'

 

7.

  최근에 JU 그룹으로 인해 피해자가 35만명이나 달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다단계는 그야말로 치명적인데, 그 사람들도 다들 편하게 일하지 않고 나오는 수당을 통해서 미래를 꿈꾼 이들이므로 한편으로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사회가 희망이 없나.
친구는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깨달음 얻었고, 꿈을 접었다. 땀흘려 일하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 35만, 아니 다른 업체까지 포함하면 50만이 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의 꿈은 이제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되었다.

8.
  친구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 그가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술을 버리고, 차이나 드림을 꿈꾸게 만든 연유는 무엇일까. 진짜 중국에 가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돈을 버는 것 자체가 꿈이 된다고 해서 과연 돈이 많이 벌릴까.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사업이든 그림이든, 세상을 보는 관점이든 일관성있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면서 꼼꼼하게 쌓아올리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은 없다는게 지금까지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인생의 결론이다. 무엇인가 축적이 되야 빛을 발할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우물을 진득하게 파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전문가가 많다고 하지만 진짜 그 세계에서 오랫동안 발바닥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면서 체득한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지식과 경험이야말로 정작 어려운 때가 올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 업그레이드는 말그래도 처절한 사투를 하지 않고, 이루기가 진짜 어려운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점점 더 진짜는 눈에 안들어오고 허상만이 가득한 비주얼 세계가 세상에 현혹한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역량에 달렸지만, 친구가 선택한 길이 그저 틀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것은 왜 일까. 나만의 노파심이 아니길 바라면서.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면.


  '이제 더 이상 길을 바꾸지 말기를.

   뛰어들기전에 정말로 심사숙고를 했다면 후회하지 않을만큼은 자신감만큼은 챙겨두고 떠나기를.'


  '하긴 그것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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