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라스트 사무라이와 무사도

dangunee 2005. 7. 3. 15:41

1.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톰크루즈 주연의 일본판 시티 오브 조이 였죠.
서구 문명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특히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학살한 피냄새를 지우고자,
신비한 동양의 나라. 일본에 와서, 카츠모토가 이끄는 부락에서 정신수양을 하고
결국 역사의 반역에 동참, 총을 버리고 일본도를 들고 싸우다 기관총에 장렬히 쓰러져갑니다.

톰크루즈 결국에 살았던가 죽었던가? 헤깔리는군...아 살았군.

2.

 이 영화는 철저하게 서양의 눈으로 바라본 일본을 그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이 감독이 심취해 있는게 무사도, 그리고 순식간에 폈다가 순식간에 지는 사쿠라의 이미지 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거라면, 일본은 기본적으로 포장문화라는 겁니다.
음 뭔가 엄청나고 심오한게 들어있는 거 같은데 막상 그게 뭐냐 하면 아무것도 없는,
따라서 일본문화는 그 자체가 깃털이자 몸통입니다.

예를 들면 양파와 같은, 두툼한 분량의 양파는 벗겨도 벗겨도 껍질만 나올뿐, 내용이 없죠.
다 벗기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대신에 겉에서 보기에는 뭔가 그럴싸한....

카츠모토가 톰크루즈에게 사쿠라 나무 아래서 삶과 죽음을 논할때, 카메라 앵글만으로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카츠모토의 논리는 딱 두가지 입니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서
폐도령(무사의 상징인 칼을 버리라는)이 생기자, 무사의 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무라이의 정신이라고 그걸 거부하겠다는 것.
그러나 주군의 명에는 따르겠다는 것....

맨마지막에 젊은 메이지 천황이 가츠모토의 칼을 받아들고서, 다시 뭔가 깨달았다는 생쑈를 합니다.


3.

일본인들에게 사무라이란, 한국에서 바라보듯 그런 저열한 살인집단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같이,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충성과 절제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이상적인 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뭔가 어떤 사람에게 안좋은 이야기를 할때,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이.....거의 욕하는 분위기에서 쓰이죠
"아니..저 냥반이.."

그러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가 욕할때는 쓰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본질적으로는 살인집단입니다.

일본의 에도시대에 사무라이가 가지고 있던 특권 중 하나가
"키리스테고멘"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건 뭐냐면, 길에서 사람을 베어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다"죠.
일본 시대극 보면, 뭐 한국 처럼 포도청에 가서 호소를 한다거나, 주리를 튼다거나,
사약을 받아라..(라쇼몽에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이런게 없습니다.

몇 마디 나누고 그냥 칼 싸움 시작입니다.
몇초후.......면, 삶과 죽음이 갈리는....
서부극 같죠.



4.

처음에 무사도란 무엇인가 나도 한참을 생각해 봤는데,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다노부나가로 시작된 천하통일의 길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에도 막부가 완성되자, 전쟁터에서 주군의 명을 따라서 쌈질을 하던 대량의 무사들은 할일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무사들은 샐러리맨이 되는데, 이때 늘 사무라이는 칼을 차고 있으니까, 시비가 붙으면 바로 그날 피를 보는게 생리인데, 막부측은 이걸 막고자
'켕카료세바이'
라는 제도를 내겁니다.

싸움을 건 놈도 죽고, 싸움을 받아들인 놈도 죽는다.
즉 양쪽을 다 처벌한다는 거죠.

그럼 결론은 뭐냐....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멋있게 죽어야 한다.

이게 무사도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죽어야하만 하는 모순의 일본식 해결인데, 200년동안 잠잠하다가
태평양 전쟁때 와전되어서 카미가제로 많은 이들이 반딧불처럼 사라지는 논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아무튼 에도시대, 그들은 죽기전에, 비굴한 죽음을 택하느나 스스로 배를 가르고,
'카이샤쿠'라 해서 부하가 자신의 목을 배어줌으로써 사무라이로서 깨끗한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톰크루즈가 카츠모트에게 잡힐때, 상대무사의 목을 베는 장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죠.
(아니..내가 네이티브 인디언을 총으로 학살하는 것은 양반이었군)

한편,
죽은 후에도 이름을 날린 어떤 사무라이는 할복을 한후 그 내장을 꺼내서 적들에게 뿌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무사도지요.

무사도는 에도시대의 그런 제도와 함께 태어나,
임진왜란을 통해 들어간 주자학와 변종 합성이 되면서
일본자체의 사무라이판 몸가짐이 됩니다.


5.
일본의 변태적 성향 (저는 이게 꼭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은 몇천년을 고립된 섬나라 속에서 살면서 칼이라는 절대 질서 속에서 살면서, 왜 죽어야 하는가하는 존재론적인 물음 보다는 어떻게 나의 삶과 가족을 지켜줄 사무라이를 찾아서 몸을 맡겨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적인 물음속에서 자랐다고 봅니다.

즉, 왜 죽어야 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어야 하느냐
하는 물음.

본질을 간데 없고, 결론의 내려진 상태에서 어떤 길을 갈것인가만 달랑 남은 현실이,
무사도를 형성하게 된다고 봅니다.

원래 라스트 사무라이는 사이고 타카모리 라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을 모델로 삼았는데, 사실 그는 카츠모토처럼 풍모있게 죽은게 아니라,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후 정한론을 주장하다가 좌천, 마지막에 자신의 세운 정부군에게 항복하다가 최후를 맞는 사람이죠.


6. 

그런 의미에서 서양인의 눈을 통해 그려진 라스트 사무라이 보다, 기타노 타케시가 만든 자토이치가 일본 무사사회를 이해하는데는 훨씬 현실적이죠.

그런데, 톰크루즈는 대체 카츠모트의 부락에서 뭘 보고, 뭘 깨달은 걸까요.

원래 일본인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지만,
일본문화 세례를 어렸을때부터 받고 자란 헐리웃 키드의
또다른 자기고백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사도 알고 보니 철학적 내용은 없고, 절망과 죽음만이 가득찬 세계에서 벚꽃처럼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매혹적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선 더더욱!!!!

                                                                                                          ⓒ 당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