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 서양인 눈에 비친 '일본학'

dangunee 2005. 7. 14. 11:32

1.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아시나요.
베니스영화제에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
배우로 성공한 중년의 남자와 2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도쿄에서의 고독하고 권태로운 나날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
영상과 연기와 음악의 기적적인 조화를 보여줬다던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와 데이비드 린의 <밀회>에 비견되는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습니다.
(일부 내용은 씨네 21에서 발췌)
좀 지난 영화입니다만...


2.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이거, 문제작입니다. 아니 문제아입니다.
왜냐구요.
'라스트 사무라이'와는 또 다른 서양의 '일본학'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돌겠어요. 이런 영화때문에, 거기다 여기에 열광하는 평단은 또 뭔가)

라스트 사무라이가 100년전 학살에 지친 젊은 영혼이 '신비의 나라' 일본에 와서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현대 일본, 그것도 수도 토쿄에서 서양사람 둘이 느끼는 권태와 소통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는 토쿄에 묵고 있는 '샬롯'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곳은 토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신쥬쿠의 초고층 호텔입니다.

고층 호텔의 창가에서는
새해가 되면 연인원 100만명이 참배차 다녀간다는 '메이지 신궁'을 뒤덮은 숲이 보이고,
오밀조밀하고 빽빽히 차있는 도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끔은 토쿄에 내려앉은 구름낀 하늘이 보이기도 하고, 그녀의 권태로운 일상만큼 심란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참고로 토쿄는 평지이기 때문에, 서울처럼 산이 보인다거나, 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뉴욕의 맨하탄 처럼 성냥갑같은 집들이 빼곡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샬롯의 남편은 사진작가라서 늘 바쁘고, 신혼이지만 그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늘 일에 쫒기면서도, 또 그것을 즐기는 남편과 함께 하는 토쿄의 생활은 따분함 그 자체입니다.
여기에, 성공한 중년배우 '해리스'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에 옵니다.

그가 탄 택시는 신쥬쿠의 거리를 지나면서, 2003년 토쿄 시내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주는데, 알수 없는 한자와, 카타카나와, 히라가나가 뒤섞인 이국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의 눈에는 처음 만나는 일본인들이 매우 낯선 존재로 비칩니다.
위스키 CF를 찍을때, 어수선하게 '해리스'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는 일본인 감독과 그것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영어로 '해리스'에 알려주는 통역사.
또 말귀를 못알아들은 '해리스'는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그는 처음부터 현지 사람들과 뭔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3.

남편과 소통을 포기한 여자 '샬롯'과
본국의 아내와도 겉도는 관계를 가진 '해리스'는 이곳 토쿄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서로 만납니다.

둘은 함께 토쿄 시내를 구경하고 같이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을 사귀고,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둘은 그 이상의 관계를 갖지 못하고,
출장기일이 끝난 해리스가 본국으로 떠나면서 키스를 주고 받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4.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 일본이 가진 얼굴을 모조리 카메라에 담습니다.
택시를 타고
토쿄 최대의 유흥가 신쥬쿠, 일본어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거리를 거쳐서 가기도 하고,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전체 토쿄의 모습을 조망합니다.
새로 개발된 유락,상업단지 '오다이바'로 가는 길 '레인보우 브릿지'(춤추는 대수사선에 나옴)의 야경을 비춰주다가
일본인들이 즐겨가는 카라오케와 초밥집을 순례합니다.

해리스는 후지산 밑의 경치 좋은 골프장에서 기분좋게 골프를 치기도 하고,
샬롯은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쿄토'에 가서 신사를 들어가보고,
침묵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일본인 부부를 지켜봅니다.

해리스가 돌아가는 길에는 60년대 지어졌다는 수도 고속도로의 낡은 고가도로와
알수없는 한자로 출구를 가리키는 각종표지판을 훑다가
그가 탄 비행기는 이윽고 일본을 떠납니다.


5.

그런데 이 둘은 '초밥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영어'로 떠들면서,
그곳의 종업원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문을 막 해대더니,
나중에는 자신들의 권태를 일본인에게 풉니다.

'당신들은 왜 늘 그런 표정밖에 짓지 못하느냐'고,
당연하죠.
일본어를 못하는 미국넘과, 영어를 못알아듣는 일본넘이
대화를 하면 그런 떨떠름한 표정말고 뭘 바라는 걸까요.

게다가 남의 나라에 와서 태연히 영어로 주문하면서,
오히려 못알아듣는 종업원에게 화를 내는 오만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영화에 나오는 일본인들은
화면을 쭈욱 지켜보면 모두 우스꽝 스럽게 나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가득찬 도시하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가 없는 수많은 군중들은 또 뭔가.
게다가 영어로 통역하는 사람도 어리버리 한데다가,
해리스에게 연기를 주문하는 감독도 짜증을 냅니다.
해리스가 텔레비젼을 트니, 한 사무라이는 할복이나 하고 있고 ㅎㅎㅎ
(정말 할복 좀 그만 하시지....칼을 배에 꽂고 쓰러짐)

무슨 쇼 프로그램은 그렇게도 소란스럽고 시끄러운지
게다가,
몇번이고 메뉴의 그림을 손으로 가리켜야 알아듣는 일본인 종업원들.
답답해 미칠 지경이겠죠.

그 둘이 유일하게 토쿄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란,
그들이 머문 호텔 바 뿐입니다.
그곳은 자신들과 같은 미국인들이 많이 찾고, 또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있기 때문이죠.
유일하게 모국어로 실컷 수다를 떨고, 분위기도 잡을 수 있는 곳.

6.

 해리스 와 샬롯은 정작 토쿄는 그들에게 아주 낯선 땅으로 남지만,
제가 보기에 정작 그들은 일본과 소통하려고 노력도 안합니다.
애써 일본어로 무언가를 묻거나,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원숭이일 뿐입니다.
그리고나서, 넘쳐나는 시간과 지루한 일상에 대한 짜증만 얼굴에 비칩니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대체 저들의 짜증이나 권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기껏, 해리스가 '살롯'에게 알려주는 결혼생활의 진실은
애가 생기면 인생 쫑난다...이런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도 이런 양넘들 쌔고 쌨습니다.
영어권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그 나라에 가서도 당당히 영어로 이야기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은 원숭이 보듯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제3세계에서 오거나,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에게 저들의 권태는 배부른 돼지들의 합창일뿐입니다.
그들은 학비를 벌기위해 새벽잠을 쫒고, 보급소의 조그만 방에서 쪼그려 자며,
신문을 돌리거나,
좀더 많은 보수를 위해서 불법 영업 전단지(섹스산업 관련)를 눈치봐가며 돌리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보냅니다.
설령 조금 유복한 돈으로 일본에 왔다 하더라도 필사적으로 일본어를 배워서, 되도록 발음이 틀리지 않게 노력하며 어렵게 주문해야 그나마 대접받습니다.

초고층 빌딩의 높은 호텔에서 따분한 하루를 보내는 그 둘의 일상 뒷편에는,
또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다니는 일본인들의 밑바닥에는,
같은 외국인이면서, 전혀 다른 대접을 받으며 이 도시를 뛰어다는 모습도 있습니다.


7.

영화는 다시,
서양에서 바라 본 현대 아시아의 풍경을 자기들의 시선으로 담아내면서도
정작,
현지인들이 꾸려가는 진지한 삶에는 관심도 없이,
무표정하고, 뭔가 서양과 다른 아시아인의 얼굴에 담긴 이중성을 담아냅니다.

해리스가 짜증내고 답답해 하는
스시집 종업원인 일본인의 삶에도,
하루 하루의 진한 노동이 있고,
그들이 돌아가는 가정에는 아이가 자라며,
주말에는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일상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질 구레한 일상은
아름다운 서양인들의 권태와 나른함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이 너무나도 익숙해 있는
카우보이 목장과, 널찍한 정원과 지겨운 파티문화와 달리,
알수없는 언어로 가득한 동양의 한 도시의 이미지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들을 알 수 없는 익명의 땅으로 도피한 그들이
벌이는 애정행각이란,
정작 자신들을 둘러싼 가족문제조차 제대로 해결 못하는 두 팔푼이의 숨바꼭질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아시아 중에서,
그나마 깔끔하고, 백인의 입맛에 맞게 잘 정리된 토쿄는
최고의 무대일 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시선은 무력으로 굴복시킨 자신들의 영광이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땅에서,
여전히 주인의 언어인 영어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명령하듯 지껄입니다.

'왜 그렇게 생겨 먹었냐'고



8.

그런데,
내가 정말이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말이죠.
'대체 왜 자신들의 권태와 무력감을 남의 땅에 와서 푸냐' 이 말입니다.
(이쯤에서 한마디 해야겠죠. 너꺼덜 우리가 홍어 거시기로 보이냐 이넘덜아)

 

사랑이 통역이 될리가 없습니다^^ 

                                                                                      ⓒ 당그니

---------------------------------------

신쥬쿠 고층 빌딩가. - 이 빌딩군 뒤편 어딘가의 호텔에 그들이 묵었죠.

 

 

 

 

 

 

 

 

 

 

 

 

 

 

 

 

 

 

 

 

 

 

 

 

 

 

 

 

 

 

 

 

 

 

                                                                                                          ⓒ 당그니

토쿄 최대(?)의 유흥가 가부키쵸 앞 상점들 - 영화속에서는 택시타고 요기 왔다리 갔다리 했지요

 

 

 

 

 

 

 

 

 

 

 

 

 

 

 

 

 

 

 

 

 

 

 

                                                                                                                     ⓒ 당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