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렌즈속 일본

메이지 신궁과 경복궁

dangunee 2005. 7. 7. 00:55

1.

한국에서 누군가 일본에 찾아오면,
난 늘 그들을 '메이지신궁'으로 데려간다.

메이지신궁.
새해가 되면 100만명이 넘게 '하츠모우데'(새해 처음 신에게 축복을 비는것)를 하러, 참배하는 곳.
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먹고 사는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
그가 신으로 모셔져 있는 이곳은 조금 특별한 구역이다.

토쿄의 젊은이들이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하고, 찾아드는 하라쥬쿠, 구석에는
오늘도 커다란 나무숲 속으로 둘러쌓여있는 메이지 신궁이 있다.

내가 처음 혼자 이곳을 찾았을때,
내가 느낀 아찔함.
그것은 이곳이 너무나 잘 꾸며져 있었고, 너무나 커다란 나무를 본 순간이었다.
그 느낌은 또한 일본에 대한 강한 혐오와 함께 같이 느껴지는 어떤 것이었다.

경복궁의 정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던 사람들.
그리고, 한때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예'를 주고받던 관계의 왕조의 궁을
한낮 동물원으로 전락시킨 사람들,
그리고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갈라, 도로를 내고 여전히 자동차소리에 신음하는 오래된 역사를 떠올리며 나는 곱씹었다.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이렇게 소중히 아낀 만큼 남의것도 아껴야하는것 아닌가'하는,
야만성에 치를 떨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친구들을 혹은 부모를 이곳으로 데려온다.
자갈이 길게 깔린 길에는 커다란 나무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도리이'(신사앞에 세워두는 경계)를 몇차례 지나면, 신사 본전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며, 우리의 아픈 역사와 이들의 무감한 역사에 대해서 토론한다.
이번 겨울에, 아버지가 오셨을때,
메이지 신궁에 만들어진 외원을 들어갔다.(500엔이나 쳐받는다. 콩알만한 땅에)
작은 호수가 딸린 별도의 정원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곳은 역시 광장의 정원이 아니다.
화사한 봄을 노래하는 정원이 아니라,
절대자를 위한, 무한권력을 위한 안식처이다.

세상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나누기 위한 곳이라기 보다
통치에 지친 음험한 권력자를 위로하는 곳이라고.....생각해본다.
숲으로 둘러쌓여있는 조그만 호수를 보면, 출구가 없이 막혀있는 일본을 응축해놓은 듯 하다.

순간 나는 우리네 고궁을 떠올려본다.

사생대회나 글짓기 때문에 어렸을때 지겹게도 다녔던 고궁.
곳곳이 물이 흐르는 연못이 있고 자그마한 호수는 다른 세계로 열려있다.
뒤에는 인왕산이 보이고,
때때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젊은 신혼부부의 기념 촬영이 시작된다.
이곳 메이지 신궁보다, 숲은 적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덜 드리워져 있고
봄이 되면,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던 곳.

그때....
십수년전 그날도 그랬다.



2.

십여년전 데이트신청에 성공한 나는 데이트할 장소로 고궁을 골랐다.

물론 고궁에 대한 역사적 깊이나 통찰은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때, 데이트 신청이 허락된 후에
오후 시간을 골라,
일부러, 종묘부터 창경궁을 혼자 한바퀴 돌며,
시간을 다 쟀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며, 걸었을 경우 걸리는 시간과
중간에 잠깐 앉을 수 있는 벤치에서 소요되는 시간까지 계산했다.

이 고궁을 다 돌고 나면,
다시 옆길로 빠져서 단성사쪽으로 가서 영화를 봐야지.
그렇게 답사했던 날 나는 고궁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에 맞춰 시작하는
'영화표 두장'을 서둘러 예매했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데이트가 이루어지던 날.
나는 지금도 그 조그만 호수가 보이던 자리에서
그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 지 기억할 수 가 없다.

단지 쏟아지던 햇살과
연못 안에서 느릿느릿 헤엄치던 잉어의 색깔이 기억나고,

애써 어색함을 감추려 했던 소년이 있었다는 사실뿐.
사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들떠있어서, 고궁이건, 어디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배경이었을텐데

그 화사한 이미지가 지금 이렇게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3.

3년전 쯤 일본사람과 함께 경복궁을 찾은 적이 있다.

일본의 건축은 단조롭고, 흑과 백의 정적인 조화라면,
한국의 건축은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정열이 느껴지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게다가 경복궁은 허허 벌판 같은 데서 혼자 멍청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저 멀리 한강을 내다 보고 있고,
뒤로는 또한 인왕산과 북한산을 병풍 처럼 두르고 있지 않은가.

빗방울이 우중충하게 쏟아지던 날이었음에도,
단청의 화려함에 그 일본인은 반쯤 넋나간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던것은
곳곳에 서 있는 안내 간판들이었다.

'이 건물은 언제 일본에 의해서 소실되었으며....'
거의 일본에 의해서 불에 타지 않은게 없었다.
그는 너무나도 부끄러워 했고, 그도 수업시간에 그런 역사를 배운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또 한번 부끄러워했다. 아니 당혹해했다는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그때에도,
'아! 저 단청이 참 곱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4.

때때로, 내가 아무 생각없이 스쳐지나 갔던 공간들은
이렇게 아무때나 화사한 햇빛과 함께 찾아온다.

별 대단하지도 않았던 시간들이었는데,
왜 갑자기
나는

조선왕조의 화려한 궁궐을 떠올리고,
그곳의 연못에 쏟아지던 햇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그때 그 자리에서 속삭이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문득 보고 싶은 것이다.

                                    ⓒ 당그니

 

 

----------------------------------------------------------

아래사진 : 메이지 신궁 입구, 토리이(鳥居):여기서부터는 신의 영역이라는 뜻

 

 

 

 

 

 

 

 

 

 

 

 

 

 

 

에마: 애마아님.(목판에 자신의 기원을 담아서 걸어놓는 것)

그래 독도는 한국땅이여...한국사람들이 다녀가면서 500엔이나 주고 이런 메세지를 적어놓았다.

 

 

 

 

 

 

 

 

 

 

 

 

 

 

 

 

 

 

 

 

 

 

 

ⓒ 당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