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벽 바다

dangunee 2005. 10. 14. 00:47
▲ Alex Teselsky - Last summer sunrise

1.

  촤아아아아.....

  새벽 동해에 닿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바다에는 달빛이 떠다니고 있었다. 파도소리를 삼키며 달겨드는 바람이 시원했다. 렌트한 그레이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삽살개처럼 바닷가 모래사장위를 뛰어다니거나 도둑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파도소리는 갇힌 자들의 절규와도 같았다.

  1년동안 나를 무겁게 옭매고 있던 그 무엇이 새벽 바닷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바다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무언가 꼬집어 증명해낼 수 없지만 바다는 마음속 깊게 억눌린 곳까지 손길을 내민다.

  죽음의 행군과 같던 대학 3학년 시절. 학점란은 F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믿고 견디자고 했던 그때, 남는 자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가을 시화전이 끝났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가 끝난 것이다. 떠난 사람들은 행사가 끝나자 엠티에 속속 합류했다. 난 쓴웃음을 머금고 같이 떠났다. 회장이니까. 

 한계령을 졸면서 구비구비 돌아서 도착한 동해바다.

 보조석에서 선배가 졸음운전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느라 한잠도 못잤다.

 

 뜬눈으로 밤을 새고 달려왔기 때문인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피로가 쏟아졌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새로운 노래가 들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는 이제 무언가를 더 잘 해낼 자신이 있을 거 같다.'

 

 

2.

  "너 지금 정말이니?"

  "네"

  "아..술깬다"

  추석 전날 할일 없는 나는 선배에게 이번 시화전 준비까지만 하고 나는 군대로 떠날꺼라고 했다. 선배는 기분좋게 취했다가 내가 한 말을 듣고는 술이 깬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가 던진 한마디.

 "나는 화장실 가서 밑도 안닦고 나가는 놈들이 제일 싫어"

 

 1년의 임기를 채 마치지도 않고, 군대로 도피하려는 나를 빗댄 말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정의감이나 사물의 이치를 설파이기 이전에, 내가 이 쯤에서 사라진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선배들에게 다시 넘겨진다는게 소름 끼치게 싫었을 것이다. 군대를 두번 가라면? 이런 물음처럼 후배들을 챙기고 어쩌고 하는 그 뒷치닥거리를 졸업을 1년 앞둔 그들이 다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해 10월, 동아리를 맡은 지 7개월이 지났다.

 내안의 열정은 완전히 바닥이 났고, 내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입영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화전이 시작되기 전날이 입영일이었다. 입영 일주일을 앞두고 모든 걸 밝히기로 하고, 그전까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렇게 다짐했다. 최악의 도피처였던 군대도 이곳을 떠날 수만 있다면,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선배의 '화장지'론 때문에 난 그해 군대를 연기 해야했다. 그리고 시화전까지 꾸역꾸역 끝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설악산 단풍 겸 동해바다를 보러 가기로 하고 MT를 결정했다. 이미 남자 동기들은 다 군대에 가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적을 옮겼고, 집행부도 해체된지 오래였다. 동아리 운영에 부담을 갖지 않고 가끔 시간나면 올라와서 농이나 까던 애들이 MT에 속속 참가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인원이 모였다.

 그러나 알맹이를 까보면 올해 들어온 새내기와 나,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복학생이 다였다. 이 인원으로 내년을 또 나야 한다. 그게 운영이니까.

 

▲ 모든 것이 죽기 전에는 너무 아름답다. 이 붉은 단풍처럼!!

   Hans Anderson Brendekilde / A Wooded Path In Autumn

 

3.

 설악산의 등산로는 너무 아름다웠다. 뚝뚝 떨어진 단풍은 내가 흘린 눈물 같았다. 이렇게도 산을 오르는 구나. 가을은 너무 쓸쓸했다. 그렇지만 그 쓸쓸함은 나에게 꼭 맞는 옷 같은 것이었다. 눈부신 여름햇살보다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는 가을이 너무나 좋았다. 들떠있는 모든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들이 똑똑 노크도 없이 들어와 앉는다.

 

 MT 마지막날. 나뒹구는 소주병과 너절한 안주들 사이로 콘도 여기저기 다들 뻗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담배 한모금을 잠시 품고 있다가 이윽고 세상에 날려보냈다. 다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아아아..............................

 

 

4.

 2002년 가을.

 회사 총무인 그는 내가 준비한 서류를 집어 던졌다. 나는 아무말 없이 다시 그걸 주웠다.

 한번도 외국인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일본회사에서 취업비자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주는 것은 귀찮은 일이긴 했다. 이제 겨우 학교를 마치고 취업을 앞둔 내가 그가 화낸다고 해서 같이 대들 수는 없었다. 여기서 민족감정 이런 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싸가지 없는 XX가 총무자리를 꿰어차고 있다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비자를 받아냈다.

 

 바다를 건너기전에 했던 다짐과, 불안했던 가계가 이제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참았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3년짜리 비자를 받고, 모든 수속이 끝난 지금, 올해 가을은 나에게 조금 특별하다. 이제 나는 그런 그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힘을 갖게 되었다.

 

 10년전 새벽 바닷바람과 함께 날려보냈던 삶의 무게가 생각났다. 그때 새벽에 느꼈던 표현 못할시원함이 일본생활 5년만에 나에게도 조금씩 밀려오고 있다. 지난 5년간 낯선 이곳에 적응하느라 견디어야 했던 시간의 껍질이 조금씩 벗겨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도피처 조차 없었던 이곳 생활. 이 가을이 지나면, 아니 올 겨울이 지나면 나는 탈피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이 죽기 시작하는 이 가을에 지난 세월에 쌓였던 외로움, 견딤, 쓸쓸함들도 같이 묻어주자. 올 가을엔. 그래야만 내년이 아주 멀리, 높게 날 수 있다.

 

  나는 오늘, 문득 파도가 절규하는 새벽바다에 가보고 싶다.

 

 촤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