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돌하루방과 함께 딸려온 쪽지.

dangunee 2006. 6. 4. 23:14


1.
어제부로 일단 근 한달간의 강행군이 끝났다.
4월말 싸인회 공지를 한후 5월 20일 한국에 갈때까지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고,
너무나 짧은 2박3일의 일정으로 번개처럼 한국을 다녀온 뒤
어제 동경에서도 모임을 한 번 더 가졌다.

저녁 6시에 시작해서, 록뽕기에서 1차를 끝낸후
신쥬쿠로 이동, 도쿄내에 코리아타운이라 일컬어지는 신오오쿠보의 한 술집에서 날밤을 샜다.
신쥬쿠로 간 것은 특별히 한류붐 이런게 아니라,
신쥬쿠가 동경 동쪽에 사는 사람과 북쪽, 남쪽에 사는 사람의 중간지점이기 때문이다.

2차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 유학생들과 애니업계 동기들.
앞으로 일본 생활 하면서,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 자리이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혹은 학생이라면 꿈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 보따리가 너무나 많았지만, 짧은 시간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는 무리였다. 훗날을 또 기약하는 수 밖에(특히 김동은 선생님과 메론님)

채현이와 하테나님 딸의 만남. 아이들만 신났다.
     

새벽 5시 신쥬쿠 한국식당, 가게가 몰려있는 신오오쿠보 거리.

2.
새벽 6시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난 근 한달간 밀린 잠을 자고 말았다.

12시간.
단지 옆에 초등학교에서는 하루종일 확성기를 타고 운동회를 하고 있었지만,
밀린 피로를 풀어야한다는 생각에, 저녁 6시까지 꼼짝않고 자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잤다기 보다는 '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스퍼트를 해야할 시기라는 것.
작년 한해동안 그려낸 결과물을 가지고 올 초여름 그 과실을 따먹었다면,
앞으로 반년동안 남은 52화까지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견뎌내며 그려야한다는 명제만 덜렁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족들과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한뒤,
돌아와 포토샵을 켰지만, 그림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축제는 끝났으나, 앞으로 그려야할 분량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3.
방금 전, 가방에서 금요일날 받은 선물을 뒤늦게 꺼냈다.

'후니마미'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분)
남편분께서 교환교수로 일본에 오셔서 현재 하치오지에 계시는데, 동경에는 올해 8월까지 계신다고 한다. 집 근처 교류회관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도,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토요일 록뽕기 모임에는 못오지만, 금요일에 근처 긴자에 오신다고 해서 퇴근후 따로 만났다.

내 가방속에는 '출판사에서 받은 표류기'한권이 들어있었다.
식사라도 같이 하게 되면 책을 드릴까 해서 집에서 들고 나온 것.

만나자마자, 나는 멀리 하찌오지에서 오셨으니, 책이라도 드려야겠다며
싸인을 해서 건내드렸는데, '후니마미'님께서도 준비해오신 선물을 꺼냈다.

하얀 종이 박스 옆에 쪽지가 딸린 선물.

"집에서 나올때 뭐 드릴께 없나 해서, 찾아보니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 중 하나를 가지고 왔어요.
쪽지는 나중에 집에 가서 읽으세요"

(당)"뭐 이런 것까지 준비해오셨어요!"

  그날 이야기는 1시간 반정도 진행이 되었고, 10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야기를 들으니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전철 내내 생각해보았지만, 최근에 나는 내내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4.
  이틀만에 잊고 있었던 선물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깜찍한 '돌하루방 메모묶음'이 나왔고, 옆에 딸린 쪽지를 펴 보았다.

  '세상에....'
 
  그 쪽지안에 오롯이 1500엔의 책값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책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싸인을 해드렸는데, 그 분께서는 몰래 책값까지 담아서 선물과 함께 건내주신 것이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분들과의 만남.
  파티가 끝나고 지독한 피로에 시달렸는 나는, 그분들이 보내주신 성원과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서울에 갔을때도 호두과자를 직접 사가지고 오신 분, 샘터 책자를 선물해주신분, 그리고 꽃.

  퍼득, 내가 앞으로 그려야할 분량에 대해서 지겨워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해본다.
  블로그 방문자 각 카운터 1 속에는 수많은 분들의 넓은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올해말까지 3권을 마무리해야하는 나로서는 이제, 힘이 들고 피곤해서 그리기 싫어질때마다
  보내주신 선물을 손위에 놓고 한번씩 생각해봐야겠다.

  그분들께서 보내준 마음이 '당그니 만화'를 밀어간다. 다시 펜을 들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힘을 내자.

  다시 첫걸음.

      분명 후니마미님 추억이 담겨있는 하루방일텐데...앞으로 창작 메모는 이 집게에 매달아둬야겠다.

         
  그날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아마 1500엔은 영영 못쓸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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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일본사회를 읽는다. 


당그니의 일본표류기 (http://blog.daum.net/dangu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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